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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528_목요일_06:00pm
2009_0528 ▶ 2009_0618 관람시간 / 11:00am~06:30pm / 일요일_12:00pm~05: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담_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안국동 7-1번지 Tel. +82.2.738.2745 cafe.daum.net/gallerydam
2009_0625 ▶ 2009_0708 관람시간 / 11:00am~12:00am
리하갤러리_LEEHAGALLERY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95-21번지 Tel. +82.42.861.9830
돼지의 꿈에 나타난 '달콤한 유혹' ● 임성희의 그림을 볼 때 우선 생각나는 것이 해학(諧謔)적 익살이다. 해학과 익살은 우리 민족의 전래되어온 그림들에 많이 나타났던 주제이다. 민화(民畵)에서 보였던 치기어린 그림들은 당대의 정신구조를 잘 보여주는 예이며, 신윤복에서 해학의 세련된 감각이 완성되었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풍류를 몸소 체험하고 즐기던 성향과 민초들의 애달픈 생활을 극복하고자하는 의지의 표현에서 여러 유형의 생활그림으로 발현된 것이다. 대외적으로 밀려온 서양그림의 이미지 속성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두고 그 씀씀이부터 양상을 달리해 온 것이다. 우선 말하자면 임성희의 그림은 사회적 익살을 포함한 민화적 양상을 가지고 있다. ● 해학은 사전에 의하면 "익살스럽고도 품위가 있는 말이나 행동"을 지칭한다. 해학을 위해서는 익살이 필요하다. 여기에 정치적 현실과 세상풍토, 그리고 일반적인 인간생활의 결함이나 불합리, 또는 악습에서 오는 불평등과 허위적인 요소, 우열 등에 가해지는 기지 넘치는 비판이나 이죽거림, 비아냥거리는 풍자가 가미되기도 한다. 이처럼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일정 품위가 지켜지는 일이니 직설적이고 폭로적인 표출방법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비판과 풍자가 섞여있어도 의젓한 품위를 갖춘 문법이나 화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경계점이 중요하다. 풍자의 신랄함뿐이라면 속은 후련할지 모르나 재미가 없어지며 너무 진지해 진다. 매사 진지함만 가득하면 현대생활에서는 공포의 대상이다. 따라서 기지 넘치는 화법(畵法)이 중요하다. 적절한 곳에서 한번쯤 웃을 수 있도록 진행하는 화법(話法)은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끈다. 웃음에는 깔깔거림에서부터 비웃음까지 다양하며 쓰임새 또한 여러 가지가 있다. 웃음에는 장소성과 시간성도 포함한다. 때와 장소에 따른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일상의 관념에 젖어있는 사회요인이 시시각각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웃음은 중요하다. ● 십몇 년 사이 그림 그리는 일도 진지함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아닌 것 같다. 가벼운 소재를 통한 일상 돌아보기, 진지함으로 인해 버려졌던 소소한 일들, 잔잔한 정서를 일깨우는 주제들이 많아졌다. 그림판이 재기 발랄해진 것이다. 예전의 어느 미술양식처럼 선하나 그어놓고 철학을 만들어 오려붙이고, 조합하여 심오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가볍다는 이유로 걱정의 목소리도 있지만 다원적인 기류는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걱정의 시선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한없이 가벼운 것 또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임성희는 상상을 구체화 시키는 재미에 빠져있다. 상상력의 발휘란 장소의 변형이나 대소(大小)의 치환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상상해 내기'는 A를 B로 B를 C로 전이시키는 것이다. 거기에 시각적 창의성을 가미하면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상상의 표현중 하나는 의인화가 예로부터 많이 사용되었다. 신화나 우화는 의인화에서 이루어진 전래적인 이야기들이다. 사람을 직접 표현하는 것보다 동물이나 사물을 의인화 시킬 때 재미있으며 기억에 잘 남는다. 이는 알레고리기법 중 한가지이다. 알레고리의 표현은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 전달방법이다.
동물을 대상으로 의인화하여 구성하는 세계는 언제나 재미있다. 돼지를 아시아에서 가축화한 시기는 4800년 전이라 한다. 그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예로 그 긴 기간만큼이나 인간사와 관련된 이야기도 많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복(福)과 다산의 상징이다. 전통적으로 길상(吉祥)의 의미로 돼지를 그려 걸어놓는 민예적인 풍토가 있다. 또는 그 반대의 상징으로 탐욕과 게으름의 상징도 있으며 금기시하거나 멸시하는 지역도 있다. 임성희는 이 두 가지의 뜻을 포함하는 상징으로 돼지를 선택했다. 길상으로서의 사회적인 바람이나 풍자의 대상인 것이다. 작품에 따라 때로는 복을 상징하기도하고 현실의 비유에서 오는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화면구성은 그 형태를 크고 작게 치환하여 이야기를 만든다. 따라서 「뒤샹의 Never Land」처럼 뒤샹을 염두에 둔 '변기'가 풀장이 되기도 하고 푸른 초원으로 변하기도 한다. 변기가 변한 '이상향의 놀이터'에서 회색의 무리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도록 즐거운 놀이와 운동을 한다. 작가의 지난 그림에 나타난 논과 밭, 그리고 관념적인 정원에서 사람들은 수영을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산책을 한다. 이 시기에는 풍경을 또 다른 공간으로 변형시키고 작가는 그것을 바라보며 즐긴다. 이때 작가는 작은 카메라로 전이된 정경을 담는 상황을 그린다. 상상공간을 만들어놓고 또 한 번 관객의 입장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작가는 의인화를 통해 현대인의 그 어떤 모습을 발견하고자하는 것일까. 「미스 진」이나 「바나나 걸」에서 돼지의 천박한 섹시함이 유머를 배경으로 교교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표정들은 뇌쇄적이다. 돼지가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그동안 감추고 있었다니 놀라움과 동시에 웃음이 일게 한다. 「뮤직고고」나 「원샷과 설정샷」에서는 천박함을 벗어나려는 돼지의 태도가 실소를 자아낸다. 보랏빛 아이섀도와 하늘색 매니큐어로 장식하고, 갖은 우아함과 고고함을 연출한다. 그러나 셀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돼지의 마음과는 달리 그녀의 애완견은 세워놓은 카메라에 일침(오줌 누기)을 가한다. 여기에 재미가 있다. 「뮤직고고」에서는 열심히 음악을 들으며 고상한 포즈를 취하지만 이어폰은 그 어느 음악 기기에도 연결되어있지 않다. 한마디로 폼과 허풍인 것이다. 「마트에 갔더니」의 카트에 실려 있는 새끼돼지들은 차곡차곡 쌓여 순순히 상품처럼 순응하며 눈치를 살핀다. 대형 마트의 넘치는 쇼핑을 풍자한 것인가. 「욕심 많은 거인」에서는 리어카에 잔뜩 실려 있는 새끼 돼지들 때문에 어미는 공중에 떠 방향을 잃는다. 너무 많은 복을 요구하는 것일까? 자신의 몸무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욕심을 부리는 돼지는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닐는지!
근작들에도 일련의 주제들이 소개된다. 「미스 진」의 변형들이 달밤에 유혹되어 청색의 공기를 호흡하고, 트럭의 뒤 칸에 여유로운 자세로 음악에 심취해 있다. 때로는 수조에 드러누워 독서삼매경에 빠져있으며, 「Sunday」에서는 음료수를 마시며 마음껏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돼지는 본래 먹고 자는 것이 본 업무(?)임을 증명하듯, 한층 더 게으름을 피우고 휴식을 취하는 「비타민 충전」의 일광욕을 하는 돼지는 그 느긋함의 극대를 이룬다. 이번 발표되는 드로잉 작품들은 경쾌함이 한층 더한다. 전신(轉身Metamorphose)의 과정을 보여주는 「변치 않는 미의 조건」은 유리관 속에 넣어진 미의 개념을 보여준다. 빌렌도로프 비너스에서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3단계로 보여주는 작품은 기념물 같은 미의 대표성이 내포되어있지만 한결같이 뚱뚱한 육체를 벗어나지 못한다. 미란 그 시대의 척도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돼지가 등장하지 않지만 페미니스트적인 연유성이 돼지와 연관되어 읽혀진다. 미(美)〓상품〓허영 등이 붉은 칠을 한 진열대에 나란히 놓여짐으로써 진부하지만 여성성의 상품에 대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마술램프의 「지니」로 나타나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며 카드형식구도로 나타나고, 「또 다른 운명」에서는 돼지 본연의 '고기'로 돌아간다. 실재크기의 입체 돼지머리는 분홍과 녹색의 물감으로 분장하고 '돼지임'을 넘어 '도도함'으로 아름다운 눈매와 웃음 띤 입으로 설치되기도 한다. 이는 복을 비는 '고사머리'를 상기하며 울긋불긋 미술 판에도 복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대략난감」, 「돼지꿈」, 「대결구도」, 「인류대홍수」 등의 드로잉은 대략 카툰 화법에 의한 인간을 빗댄 돼지의 이모저모를 표현한다. 그러나 막연한 깔깔거림 정도의 가벼운 웃음만을 주기위해 제작한 것 같지 않다. 미소를 짓게 하는 화면의 구성 속에 일상의 의욕과 욕망, 갈등, 삶의 모순을 나타내며, 동시에 사회에 대한 작가의 애잔하고 순박한 시선이 포함됨을 느낀다. 꿈이란 미래적인 상상력이기도 하지만 한편에는 허황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류사에 어디 철저한 논리적 근거의 이익만을 추구 할 수 있으랴. 때로는 허황됨이 그 상상력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만든다. 이러한 상상력의 발로가 화가에게 주어진 특권이며 즐길 수 있고 창작할 수 있는 원천이리라.
여기서 요즈음 일부작가들의 특성을 예기해 보자(임성희와 관련이 있거나 혹은 없거나). 모든 화면구성이 제거되고, 주제만 뚜렷하게 배치되는 풍토들과 가볍고 경쾌한 소제들의 개별적인 나열이 전적으로 나타난다. 젊은 작가들에게 사실적인 내면의 이슈가 담겨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현시대는 자원전쟁, 종교분쟁, 기아, 자연고갈, 기후 등의 거대 이슈와 국지적으로는 남북분단 등의 이슈가 있으나 미술의 현실적인 담론으로 끌어내기에는 머나먼 일처럼 느껴진다. 다원화 시대의 특성도 있겠지만 한국미술에서 이슈를 이끌어 내 특별히 뚜렷한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었던 결과 때문이라 생각해본다. 또 한 부류는 컴퓨터 칩과 같은 죽기살기형의 노동 집약형 작가들이다. 과거 머리카락 모아 가발 만들어 팔던 노동집약형, 그것이 미술형태의 전부 인양하는 이 숨참도 문제이다. 물론 글로벌시대이다. 그러나 혼동과 정체성은 구별할 감각은 있어야한다. 그대로 과거의 선배들처럼 따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사진을 그대로 베끼는 수준도 넘어야한다. 또 하나는 일방적으로 대중성의 구미에 무작정 맞출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자기 것 보다는 유행에 너무 민감한 나머지 '우선 드러내기'에 급급한 상태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오히려 다중 매체에 의한 혼성시대에 소소하고 너무 쉬워 그동안 뒤로 밀어놓았던 저변에 깔린 감성들을 하나씩 들추어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현상도 감지하는 바이다. 하지만 너무 한편으로 치우치는 감성, 한 가지가 좋다하면 우르르 몰려가는 함몰된 미의식은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제 그림, 한번 재미있게 그려보자.
임성희의 출발은 매우 건전하다. 오히려 너무 건전하여 어느 부분에선 약간 허함을 느낀다. 그러나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재미있게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다. 물안경을 쓰고 비키니를 빼입은 핑크빛 돼지가. 거친 터럭과 붉은 코의 요염한 검은 돼지가 인성(人性)의 피부를 이식한 체 삶을 즐기거나, 비판의 칼날을 내밀어도 복은 굴러올 것이다. 그 방법이 회화이든 민화이든 분류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그녀의 그림 앞에서 웃음 짖는 모든 이에게 살금살금 다가와 넉넉한 여유로 한 리어카 가득실어다 주는 복(福)됨은 어찌할 것인가. 이 그림을 보고 많이많이 복 받아 가시길... ■ 이순구
Vol.20090528g | 임성희展 / LIMSUNGHEE / 任晟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