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에서 벗어나기

민경아展 / MINKYEONGAH / 閔庚娥 / printing   2009_0526 ▶ 2009_0604

민경아_Living with_리놀륨 판화_75×95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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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526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KEPCO PLAZA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서초동 1355번지) 한전아트센터 1층 Tel. +82.2.2105.8190 www.kepco.co.kr/gallery

패러디, 타자와 상호 작용하는 주체 ● 전작에서 민경아는 조개껍질이나 소라 등 특정 소재에 천착해왔다. 소라의 양식화된 문양과 패턴에 매료되는 한편(더러 콜라그래프 판법에 의한 이질적인 질감의 대비로 나타나기도 한), 서로 어우러져 있는 소라들을 통해 부분과 전체와의 유기적인 관계에 주목해왔다. 하나의 소라는 전체에 종속되는 부분으로서의 모나드(단위원소)이며, 특히 사회와 개인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메타포였다. 소재 자체는 비록 소라에 지나지 않지만, 정작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존재론적인 조건을 겨냥한 것이다. 하나하나의 소라가 딱딱한 껍질 속에 고립된 채 올망졸망 모여 있는 것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발견한 것은 아닌가 싶다.

민경아_Living with_리놀륨 판화_75×95cm_2008

소라의 이러한 비유적 의미는 「나 홀로족의 함께 살기」나 「껍데기와 알맹이」 같은 주제(2007)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소라의 생태를 통해 고립된 삶을 사는 개인들이 모여 만든 사회를 암시하는가 하면(나 홀로족의 함께 살기), 표면적이고 감각적인 삶과 본질적인 삶을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껍데기와 알맹이). 이때 작가가 주목하는 것이 껍질인 양 보이지만, 실상은 이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본질(알맹이)이다. 일종의 반어법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민경아_Ongoing Supper_리놀륨 판화_각 75×50cm_2008 민경아_A subset of "Ongoing Supper"_리놀륨 인각_75×95cm_2008

그 주제들은 외관상으론 근작의 주제인 '하나에서 벗어나기'와도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마침내 소라가 고립상태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유기적인 삶의 관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아니면 자신의 딱딱한 껍질을 벗고 자유자재로 변태를 일으키는 단계로 진입했다고나 할까. 소라를 소라이게 해주는 것은 껍질이 아닌, 그 속에 담겨진 잠재적인 꼴이며 몸이다. 그리고 그 몸은 비결정적이다. 일단 껍질에서 나온 몸은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상황, 전제, 문맥, 맥락이 달라지면서 그 꼴도 변하고 그 의미도 바뀐다. 하지만 그렇게 달라진 꼴과 의미가 모두 소라에게서 유래한 것인 만큼 소라에게 속한다. 껍질이라는 닫힌 체계와 결정적인 의미로 읽혀지던 것에서 벗어나 사방팔방으로 존재의 갈래를 퍼트리고 다변화했을 뿐. ● 이는 그대로 주체에 대한 달라진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주체란 하나의 통일된 전체로서 환원되지 않는다. 상황이 주체를 낳고 의미를 낳는다. 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내가 맞닥트리는 상황들로부터 매순간 새로이 태어나고 갱신된다. 나를 정의하게 해주는 의미 역시 그러하다. 나는 상호간 이질적인 타자들의 우연하고 무분별한 집합이다. 관습과 관례, 교육과 문화의 소산이며, 그 지층으로부터 건너온 온갖 차이 나는 타자들로써 구조화돼 있는 것이다. 민경아의 근작에선 패러디가 두드러져 보이는데, 바로 나, 주체, 자아를 형성시켜준 인문학적 타자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민경아_Ongoing supper_리놀륨 판화_45×240cm_2008 민경아_Ongoing supper_리놀륨 판화_45×240cm_2008_부분

민경아의 근작은 각각 「Ongoing Supper」, 「A subset of a group, Ongoing Supper」, 「Living with」, 그리고 「Mes」 연작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메인에 해당하는 작품이 「Ongoing Supper」로서, 총 세 가지 다른 종류의 버전이 제시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이 연작은 다 빈치의 만찬 그림이 과거형이나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암시한다. 이는 미술사를 결정적인 의미로 굳어진 닫힌 체계로 보기보다는, 이를 대면하는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이 갱신되고 수정되고 변형되는 열려진 체계로 본 것이다. ● 그림엔 원화에서의 예수와 12제자와 마찬가지로 총 13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모두 미술사에서 발췌해온 것이다. 이를테면 반 고흐와 폴 고갱 그리고 에곤 슐레의 자화상, 반 고흐의 부쉐 박사, 프란시스코 고야의 초상화, 파블로 피카소의 잠자는 여인과 우는 여인, 리히덴슈타인의 만화 풍의 여인, 보티첼리의 비너스, 신윤복의 미인도, 우끼요에 풍의 미인도, 아르침볼도의 나무인간, 그리고 시사 잡지에서 발췌한 흑인소년에 이르기까지. 이 캐릭터들이 모두 각각의 소라껍질 속에 담겨진 형태로 제시되는데, 13개의 초상화가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 동시에 저마다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개별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이나 주제에 맞춰 자유자재로 재구성할 수 있게 한 것이다. ● 비교적 원작에 충실한 또 다른 버전의 작품에서는 13명의 등장인물들을 원화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데, 다만 실루엣 형상으로써 인물들을 익명적인 주체들로 전환시켜놓고 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놓인 식탁 위의 만찬을 위해 신윤복과 김홍도의 풍속화를 차용하거나, 나아가 스타벅스와 바나나 우유 등 동시대적인 아이콘마저 끌어들인다. 종교적인 아이콘으로서의 만찬과 조선시대 풍속화 속 만찬 그리고 현대인의 만찬이 시공간을 초월해 공존하는가 하면,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의 문화적 지층이 충돌하고 삼투된다.

민경아_Mes[나들]_리놀륨 판화_45×60cm_2008

이외에도 작가는 미술사 속 캐릭터들을 그림의 전면에 배치한 후, 소라껍질의 패턴화된 문양으로써 배경화면을 대신하고 있다. 양식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고, 국적마저 다른 미술사에서 호출된 온갖 이질적인 캐릭터들이 카바레의 휘황한 불빛 아래 모여 있는 것 같다. 소라껍질의 크고 작은 원형의 문양이 변형된 그 불빛은 원작에서의 후광(성자의 표식으로서의 빛)을 동시대적 풍속에 맞춰 각색한 것이다. 더불어 그 빛은 성자들을 실루엣으로 대체한 그림에서 그림 뒤편의 여명이나 은하수처럼 표현되기도 한다. ● 그리고 작가는 「Ongoing Supper」 연작에서 제안된 형식과 상황논리를 전제로 해서, 이를 「A subset of a group, Ongoing Supper」와 「Living with」 연작에서는 다른 형식으로 변주하고 다변화한다. 13개의 초상화 그림을 각각 따로 제작해 이를 두 쌍이나 네 쌍 등 짝짓기가 가능하도록 재구성한 것이다. 이를테면 반 고흐의 자화상과 폴 고갱의 자화상을 짝짓게 하거나,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신윤복의 미인도를 대비시키는 식이다. 그럼으로써 미술사와 관련한 전설적인 짝패로 알려진 두 화가의 관계를 엿보게 하고, 서양의 미인과 동양의 미인에 적용된 서로 다른 미적 기준을 비교해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민경아_Mes[나들]_리놀륨 판화_60×45cm_2008

한편으로 이러한 짝짓기나 대비 자체는 결정적이기보다는 비결정적이다.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논리와 주제 그리고 전제에 맞춰 언제든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끔 돼 있다. 이러한 작화방식이나 태도는 현대미술과 관련해서 패러디가 갖는 의미, 특히 배열과 배치가 갖는 주요한 의미기능에 대해서 말해준다. 그러니까 현대미술에서는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는 대신에 기존의 이미지를 재사용하는 것이 한 경향을 이루고 있는데, 이때 그 이미지가 본래 속해져 있던 문맥과 맥락에 변화를 줌으로써 그 의미 역시 달라지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 이러한 작화방식과 태도에는 의미가 이미지에 내재돼 있다기보다는 그 이미지가 놓여지는 관계의 망 즉 문맥과 맥락으로부터 생성되는 것임을 말해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체 역시 내재적이고 고유한 한 성질이기보다는 타자와의 유기적인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패러디는 이처럼 작가로 하여금 기존의 이미지를 재사용하게 하며, 의미의 생성원리를 엿보게 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체가 구조화되는 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 이렇게 재구성된 주체, 즉 타자들과 상호간섭하고 삼투되는 주체로서의 자의식이 극대화된 것이 「Mes」 연작이다. 각각 살바도르 달리와 그륀네발트의 책형상에다가 조선시대 풍속화를 중첩시킨 것이다. 조선시대의 저작거리에 출현한 서양신의 주검에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의 표정이 해학적이기도 하고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충돌하고 부닥치는 상황논리나 이를 지지하고 있는 이질적인 모티브들 모두가 나(자아)의 편린들이다. 나의 미술사적이고 인문학적인 배경을 형성시켜준 타자들인 것이다. 사실상 이 타자들의 범주는 다른 연작 그림들 모두를 아우른다. 주체란 타자와의 긴밀한 상호작용과 영향관계로부터 생성되고 수정되고 갱신된다는 존재론적 자의식이 민경아의 근작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민경아_Ongoing supper[아티스트북]_리놀륨 판화_22×120cm_2008

한편, 작가는 이 모든 그림들을 리놀륨 판화로 제작하는데, 회화로 그려진 원화를 일일이 판화로 옮겨 그린 것이다. 이를 위해선 회화적 표현, 이를테면 중첩된 터치와 입체적인 볼륨감 그리고 음영처리를 일일이 최소한의 면과 중첩된 선으로 옮기는 과정이 요구된다. 그 과정이 원화 그대로를 옮겨 놓는 것이 아닌 만큼 고도의 감각이 요구되며, 나아가 그 자체를 적극적인 해석행위로 볼 수 있다. 회화를 판화로 번역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단순한 복제가 아닌, 재창조의 계기로써 작용한 것이다. 이로써 민경아는 복수 제작된 오리지널 이미지를 재구성하고 재배열하는 과정과 방법을 통해서 하나의 이미지가 새로운 의미, 전혀 다른 의미로 생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고충환

Vol.20090527b | 민경아展 / MINKYEONGAH / 閔庚娥 / pr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