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522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브레송_GALLERY BRESSON 서울 중구 충무로2가 고려빌딩 B1 Tel. +82.2.2269.2613 cafe.daum.net/gallerybresson
내성적인 피사체(被寫體) ● 나는 앵글이 보내는 눈짓을 잘 알아먹지 못한다. 찰칵, 소리 내는 순간에 느껴지는 차가움, 그것이 어떤 마음을 담았는지, 왜 말을 걸어오는지. 앵글은 대부분 내성적인 피사체 앞에서 전투적이다. 웃으세요, 긴장을 풀고…, 할 때면 포로가 되는 기분. 도대체 어떻게 웃으라는지, 아무리 친근감을 보이고 달래어도, 사진은 생애에 한 번뿐인 동작들을 훔친다. 찰나를 영원 앞에 폭로하는 것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아니 최경자 선생이 바다와 마주선 것을 깨닫는 순간, 거대한 피사체도 내성적일 수 있다는 것을, 저 고독하고 과묵한 생물도, 최경자 선생이 소리 없이 신체의 외부를 스치듯이 인격의 은밀한 내부를 훔치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언젠가 공유한 적이 있는 저 그리운 물에 대한 기억을 말하고 싶었다.
물에 대한 기억들 ● 1993년에 내가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탐사한 강 하나를, 그 10년 후 최경자 선생이 종단하며 앵글에 담았다. 그러고 나누던 담화는 바다 앞에서 잘렸다. 내가 이 사진들을 '정지된 서사'가 아니라고 보는 까닭이다. 물…. 이것은 오직 세상의 낮은 곳을 향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며, 늘 길을 잃지 않고, 집결하고 부서지고, 가다가 돌멩이 하나와만 부딪혀도 수천, 수만의 작은 공이 되어 튀어 오르고, 또 물보라 속에서 끝없이 꺼져 내린다. 그러나 가끔 인간과 갈등한다. 누구나 댐에 이르면 한 무리 '물의 대열'이 삼엄하게 무장을 한 철갑의 진압군에 막혀 웅성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쿠데타와 맞서는 시민들을 연상한다. 물샐 틈 없는 장벽을 뛰어넘어 수문을 빠져나가는 물들을 보면, 쏜살같이 나아가면서 내지르는 소리. 억눌렸던 자들의 성난 함성이 들린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물방울이 얼마나 많은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충만한지 알 수 있다.
그 눈의 기슭에서 다시 태어나다 ● 나는 지금 보고 있다. 한반도의 어느 산골짜기에서 솟아난 물방울이 바다로 빠져들기까지, 강의 기나긴 생애를 아는 한 어머니가 끝없이 망망한 물방울들의 대집합, 수억 겁의 생명체들이 결속되어 꿈틀대는 거대한 화엄 앞에 서 있다. 아침과 낮과 저녁,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겪으며 어느 순간 그것이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임을 깨닫듯이 바다가 한 개의 영혼임을 보았을 때, 얼마나 벅찰 것인가? 그 옆구리, 파도의 갈비뼈, 뒤쫓아 오는 물방울 군중들의 아우성, 하늘과 볼을 부비는 바다, 육지를 향해서 밀려오는 거친 숨결들, 수줍게 물들어서 서쪽으로 떠내려가는 수평선 두 장. 이것들은 모두 무엇을 은유하는가? 그 앞에서 우리는 왜 슬픔에 잠기는가? 밑 모를 그리움에 사무치는가? ■ 김형수
Vol.20090522f | 최경자展 / CHOIKYUNGJA / 崔庚子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