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522_금요일_05:30pm
참여작가 고창선_김보민_서윤희_신동원_신영미_윤병운 이강욱_이서준_이형욱_임자혁_차민영_최수환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INTERALIA ART COMPAN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7-17번지 레베쌍트빌딩 Tel. +82.2.3479.0114 www.interalia.co.kr
망막의 진실 Truth about retina ● ㅣ. 만약, 우리의 안구가 심하게 손상되어 복구가 불가능해졌다 치자. 하지만, 경이로운 자연과학의 발달로써 고성능 렌즈가 장착된 디지털 기계장치가 개발되었고, 그것을 눈에 삽입해 예전처럼 깨끗하게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렌즈에 포착된 대상이 기계장치를 통해 기호화 되고, 이것이 전선을 타고 뇌의 신경을 건드려 최종적으로 인지되는 매우 복잡한 프로세스는 차치하자. 이 상황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일까, 아니면 디지털 시각 장치일까. 전자라고 답을 했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인가. 우리 눈의 망막을 통해 비쳐지는 사물들은 실제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일까? 혹시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 고정되어 있는 관념이나 경험에 의해 왜곡되어 인지되는 것은 아닐까? 과연 눈에 보여지는 것들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수정체를 지나온 빛이 망막에 상을 맺으면, 시신경이 그 자극을 대뇌 피질의 시각 중추에 전달한다. 결국, 망막은 빛을 통해 들어온 상을 통과시켜주는 통로 역할을 할 뿐, 그것에 대해 인지하고 판단하는 것은 뇌라는 말이 된다. 실제로 정신맹증의 경우 시각 자체는 정상이어도 후두엽에 손상이 있으면 눈으로 본 것을 파악하거나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대상을 인지하여 판단하는 것은 시각이 아니라 우리의 뇌라는 것에 모두들 동의할 줄로 안다. 이제, 다시 다른 예를 한번 들어보겠다. 당신이 주말 드라마를 보며 펑펑 울고 있다. 우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의 눈인가, 대뇌 피질의 시각 중추인가, 아니면 그대의 그 마음인가.
Ⅱ. 지난 몇 해 간 한국 미술계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경매 거래량의 비정상적인 수직 상승과 함께 미술에 관심이 없던 일반 대중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쳤으며 그 결과는 상당히 괄목할 만 했다. 주말이면 연인이나 가족 단위로 갤러리를 찾는 일반인들을 쉽게 목격 할 수 있었으며, 패션지나 여성지에는 전시관련 소식에 꽤 많은 지면이 할애 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방송사에서는 미술품 경매 회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직접 미니시리즈로 제작한 경우도 있었으니 시각예술이 일반 대중을 위한 문화로 부각되었다는 사실에는 다들 아무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소수에게만 한정적으로 예술작품을 누리는 특권을 부여했던 과거 권위적이던 미술계와는 달리, 예술작품 주변에 설치되었던 모든 바리케이트를 철수하고 누구나 쉽게 다가올 수 있게 변한 건 정말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30여 년 만에 찾아온 한국 미술계의 호황은 부자들뿐 만 아니라 회사원과 가정주부, 심지어 학생들에게 까지도 미술품 구입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있었다. 아니, 매우 심각했다. 난생 처음으로 미술 작품에 접근하다 보니, 편하고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구상회화, 특히 잘 그린, 하이퍼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에만 열광하는 변칙적 작품 구매와 관람태도가 만연해 졌다는 점이다. ● 망막으로만 대상을 받아 들이는 태도는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을 발견하기엔 확실히 역부족이다. 사실, 일반 대중을 미술 판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어서의 구상회화의 노고는 분명히 인정한다. 하지만, 이를 새로운 사조의 출현이나 미술계 전반에 걸친 큰 운동의 형태로 간주하기엔 무리가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팝아트가 처음 출현했을 당시 추상회화 작가 들이 철학적 정체성을 향한 미술의 탐구는 종료되었다며 자포자기 한 것처럼, 지난 몇 년 간 우리나라의 비구상회화 작가들 역시 탄식했다. 나아가 그 여파는 한국화와 미디어, 설치 작가들에게 까지도 여실히 반영되었다. 팝아트의 출현으로 추상회화가 끝난 듯 보였으나, 예술가들은 특정한 내러티브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표현 하고자 하는 확장된 소재 영역으로 인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방되었다는 점에서 훗날의 미술사에는 이러한 사실이 대변혁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달랐다. 특히나 보수적인 성향의 미술계 인사들이 더더욱 불쾌하게 여겼던 부분은, 아직 확고한 자신의 작품세계가 채 성립도 안 된 어린 작가들이 이러한 순간적 유행에 편승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는 점이다. 이 시기의 한국 미술계에는 대상을 단순 재현하거나, 혹은 그것과의 정밀한 유사성의 표현만으로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한 작가들이 부지기수였다. 물론, 그들의 작업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호황이 미디어에서 앞다투어 보도하던 것과는 달리, 미술계의 전반적인 발전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한국 미술계의 기형적 수직 상승은, 시장에 있어서는 일정부분 성장을 가져왔을지는 몰라도, 미술계 전체를 놓고 판단 할 때는 오히려 눈에 띄는 퇴보를 보였다. 인사동 거리를 거닐면 세 곳 중 한곳은 반드시 자극적인 전시 제목을 동반한, 대체로 투자와 관련된 타이틀로 구상회화의 전시가 개최되고 있었다. 심지어, '캔버스에 오일로 그린 정물화' 이외의 작품을 보려면 홍대 근처까지 넘어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반드시 동반되었다.
Ⅳ. 단계별 예술작품 감상법을 굳이 나누어 보자면, 다음과 같이 3단계로 나눌 수가 있다. '무엇을 그린 것인가', '어떻게 그린 것인가', 그리고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린 것인가'가 그것이다. 처음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의 경우 소재적인 측면에서 스스로에게 납득이 되는 부분만을 가지고 가려는 것에 비해, 작품을 접하는 경험치가 높아질수록 다음 단계로 레벨이 높아지는 편이다. 그러나, 소위 미술계에서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작가의 설명 없이 3단계까지 모두 유추해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 『망막의 진실』展은 이 중에서도 특히, 3단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지 눈이 아니다'라는 예술작품에 접근하는 원론적이며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방법론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실 17세기 이후로 끊임없이 대두되었던,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한 데카르트의 고루한 담론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시점에서 다시금 끄집어 내야 하는 이유가 뭘까. 바로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진과 구분조차 하기 어려운 회화 작품에만 열광하는, 이제 막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대중들에게, '캔버스에 오일로 그린 정물화' 뒤편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고 있음을 인지시키기 위함이다. 작품의 본질적인 것을 보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 있는 이미지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Ⅴ.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12인의 작가들은 망막에 호소하는 현란함이 아닌, 또 다른 관점에서 사물이나 상황을 바라본다. 이들은 피사체의 표면이나 망막에 맺힌 이미지 자체 보다는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현상에 주목한다. 이들은 단지 '보이는 것'뿐 아니라 망막 너머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려 노력한다. 또한 이미지의 '재현'에 집착하기 보다는 자신의 철학이나 심리상태를 이입시켜 새롭게 '표현'하는데 주력한다. 그런 이유로 먼 발치서 결과물만 얼핏 봐서는 도저히 숨은 의미를 발견할 수가 없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들은 거창한 담론이나 어려운 기호와 상징을 교묘하게 삽입하여 우리를 난처하게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작가 개개인의 일상이나 주변 관심사에서 비롯된 작업들이며, 심지어는 작은 힌트 하나만으로도 쉽게 눈치 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Ⅵ. 이번 전시를 통해 현대 미술에 접근하는 우리의 올바른 방식에 대해 되짚어 보고자 한다. 동시에 관람객 각자가 담고 있는 기억의 편린들이 망막을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와 결합하여 본인 각자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정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길 기대한다. 다만, 한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모든 것들을 자신이 원하거나 보고 싶은 방향으로 환원시켜 함부로 규정해 버리지 말자.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상대방이 하려는 말을 배제해 버리지 말자. 그리고 부디, 실재하지도 않는 본질 추구와 관련해 고정되어 있는 관념으로부터 더 이상의 강요를 받지 말자. 미간에 힘을 빼고 큰 심호흡을 하며 느릿하게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12명의 작가들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분명 깨닫게 될 것이다. 굳이 힌트를 주자면, 시각의 전환과 새로운 인식의 접근을 노리라는 점이다.
Ⅶ. 어떤가. 작품 배경으로부터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느꼈는가? 미소를 지으며 전시장을 빠져 나가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당신의 레벨 업을 자축해도 좋다. ■ 윤상훈
Vol.20090522c | 망막의 진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