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여행

전영근展 / JUNYOUNGGEUN / 全榮根 / painting   2009_0521 ▶ 2009_0606

전영근_여행_캔버스에 유채_145.5×112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1022d | 전영근展 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521_목요일_05:00pm

청화랑_CHUNG ART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9-1번지 Tel. +82.2.543.1663 town.cyworld.com/ChungArtGallery

현대미술은 전통적으로 설정된 형식적 한계를 넘어서서 다양한 삶의 내용들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조형 언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순기능적인 측면이 있음은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오늘날의 미술에는 깊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미술이라는 것이 형식을 통한 승화(sublimation)임을 무시한 채 내용의 표출 그 자체로만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와 무의미한 형식 파괴 혹은 반미학적 파괴에서 끝나버리는 경우를 말한다. 마치 낯선 이미지 채집증 환자들처럼, 기발함을 찾아 떠나는 어설픈 발명가들처럼, 패러디(parody)와 패스티시(pastiche)의 가벼움, 모호한 이미지와 언어로 포장된 카오스(chaos)적 미술경향은 결국 현대미술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오늘날의 미술경향에서 전영근은 순수 회화가 제시 할 수 있는 시각적 가능성을 집요한 추궁하며, 그 의미를 탐미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영근이 탐미하는 작품세계를 견인하는 주요 개념은 레비나스가 말하는 "존재성과 타자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전영근_여행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09
전영근_여행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09
전영근_여행-시골Ⅰ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09
전영근_여행-겨울_캔버스에 유채_45.5×27.3cm_2009

레비나스의 존재성은 욕구(besoin-존재론적)와 욕망(desir-형이상학적)을 구분한다. 자기 자신에서 비롯된 존재론적 욕구는 존재의 주체인 자신의 존재 유지를 위한 이기적인 노력이지만, 형이상학적 욕망은 타자로부터 비롯되며, '나(ego)'에 의해 소유되고, 향유될 수 없는 것을 향한 갈망이다. 그리고 존재론이 끊임없이 '나'의 세계로 귀환하는 사고(思考)라면, 형이상학은 '나'의 세계에서 떠나 '나'의 바깥 또는 '나'와 절대적으로 다른 자를 향한다. 이러한 구분에 기초해 레비나스는 존재론에 대한 형이상학의 우위를 말하며, 존재론의 전체성에 대립되는 형이상학의 무한성을 강조한다. 타자가 누구든 혹은 무엇이든 관계없이 그의 존재를 존중하고 인연을 맺을 때 '나'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레비나스에게 '타자'는 단지 공존해야 할 '다른 자아'가 아니라, 주체인 '나'의 존재를 확장시킬 수 있는 무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비나스의 「윤리학적 존재론」에서)

전영근_의자Ⅲ_캔버스에 유채_123×91cm_2009
전영근_정물Ⅰ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09

"나는 나를 그린다." 고 그는 고백한다. 이 고백은 단순히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물건(정물)들의 의인화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물건들이 자신의 일상속에서 맺어진 인연에 기초한 타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장시키는 형이상학적 욕망의 도구가 됨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 김병호

Vol.20090521c | 전영근展 / JUNYOUNGGEUN / 全榮根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