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시대 속의 회화

민경숙_박강원_임진세展   2009_0521 ▶ 2009_0617 / 일요일 휴관

민경숙_10 pm in Maine-1_종이에 파스텔_36×43cm_200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요일_10:00am~05:00pm / 일요일 휴관

이목화랑_YEEMOCK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62-35번지 B1 Tel. +82.2.514.8888 www.yeemockgallery.co.kr

이번 전시는 영화와 아무런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영화의 시대를 지나면서 현대에는 어떤 예술장르도 영화, 영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회화가 단순히 영화의 부속물이 되지 않기 위해 회화 고유의 언어와 힘은 어떤 것인가를 고민하며 만든 자리입니다. 이 세분의 작가는 아직 회화가 유효함을 보여줍니다. ■ 임태훈

민경숙_grey sofa_종이에 파스텔_48.3×61cm_2006

민경숙 작가 / 아름다움과 잃어버림 / 시간과 기억 / 텅 빔과 감사함 / 온기와 친밀감 / 이야기와 상징 / 공간과 거리 / 멜랑콜리와 고독감 / 침묵과 평온 / 유머와 위로 / 정직함과 유일성 / 인생과 신비 / 은근함과 깊이 / 다침과 상처 / 단순함과 시적인 집약성 / 이러한 요소들이 내 가슴에서 내 그림으로 전달되기를 원한다. 이를 위한 그림의 소재로 음식, 가구, 빛, 공간, 건물, 나무를 선택한다. 나는 무엇이든지 시각적, 감정적, 심리적으로 내 관심을 끄는 것을 그리려고 한다. (작가노트에서 발췌)

박강원_알함브라의 길10_캔버스에 유채_27×35cm_2008
박강원_톨리도의 길1_캔버스에 유채_31.8×40.9cm_2008

박강원 작가는 작품을 하는 과정을 작가 자신의 새로운 변화라고 본다. 그림을 그려가면서 말로 내어놓지 않고도, 화를 내지 않아도, 작가 자신의 부정적인 마음이 정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혼란스런 마음들과 수 없는 감각의 붓 자국들이 쌓여,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는 색과 형태들 속에서 그 흐름이 부드러워지며 일치를 향한 작업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의 작업과정을 하나의 종교적 과정이라고도 생각한다. 파티마의 너른 광장에서 마주친,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철조 십자고상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는 중년인생의 집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깊고 힘든 경험을 했다고 한다. 새로운 자기를 찾기 위한 자신의 위기는 내적인 양극을 통합하기 위해 의지로 겪어내야 했던 여정이 되어, 나와 상대방을 알아가는 새로운 연결을 의미하는 화해이다. 마음에서 나오는, 힘이 실린 붓 자국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임진세_분수를 바라보는 사람들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07
임진세_분수를 바라보는 사람들2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07

임진세 작가는 훌륭한 직관력을 가진 작가다. 여기서 직관력이란 두뇌에 관계된 것보다 감각, 신체의 감각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작가는 고정된 카메라의 눈이 아닌 움직이는 신체의 눈으로 바라보고, 움직이는 신체의 감각으로 새로운 회화의 사실을 캔버스에 펼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산만하고 감각적이며 상투적으로 갖고 있는 일목요연한 완성에 대한 관념도 거부한다. 작가는 그것이 세계이며 실제의 지각(감각)이라 믿고 있는듯하다. ● 오늘 날 회화는 재현해야 할 대상도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도 없다. 임진세의 작품은 추상과 비구상 사이에 있다. 그의 작품이 눈(구상)과 머리(추상)만으로 느껴지기보단 온 신체감각으로 느껴지길 바라는 의도 때문일 것이다. 시각적이기 보다 촉각적인 것이 되길 원한다. 그래서 추상과 구상 어느 쪽에도 머무르기를 원치 않는다. 차용된 외부대상과 추상적인 감각의 덩어리가 같이 있다. 그의 그림에 표현된 대상은 고독하고 건조하며 폭력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재현된 것이라기 보다는 작가에 의해 화면에 표현된 회화적 사실이라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

Vol.20090521b | 영화시대 속의 회화-민경숙_박강원_임진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