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거울

2009_0515 ▶ 2009_0524 / 월요일 휴관

김다인_masquerad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펜_26×18cm_2009

초대일시_2009_0515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다인_박민지_손금림_이선옥_이혜진_지민경

관림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_SPACE BANDEE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82.51.756.3313 www.spacebandee.com

거울을 보고 있지만 그 곳에 진짜 '나'는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신체'를 벗어나서 온전한 내가 반대편에 놓여 있는데도 여전히 '나'는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캔버스 위에 '나'를 그리려 하지만 온전히 그리지 못하는 것처럼 결코 나의 욕망과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매번 좌절하게 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매번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혹은 도달할 수 없는.

박민지_호접지몽_디지털 프린트_60×80cm_2009
손금림_beautiful 30_캔버스에 유채_180×130cm_2009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 다시 말해 사회적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은 여러 단계를 지나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과정들을 겪은 후, 우리는 사회적 관계망에 안착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주체'라는 기표를 얻게 된다. 그런데 사회적 주체가 되었지만 여전히 자아에 함몰되어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예술작품에서 사회적인 주체를 버리고 여전히 아이로 남아 있으려는 작업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적 주체 혹은 상징적인 질서로의 진입을 포기하는 작업들이 여성 작가들의 작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과잉된 자아를 보여주거나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작업들이 눈에 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선옥_자화상_종이 판넬에 아크릴채색_130×96cm_2008
이혜진_밝고 노란 그림자_캔버스에 유채_53×45cm_2007

물론 에고 혹은 나르시시즘을 벗어나는 것은 타자와 혹은 공동체와 만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렇지만 예술 작품에서 이렇게 에고에 머물려는 여성작가들의 작업이 퇴행한 것인지 혹은 상징적인 질서로의 진입을 거부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여전히 모호함으로 가득하지만 적어도 세계를 거부하는 눈 혹은 분절되거나 늘어진 신체들, 비록 이러한 것들이 전복적인 힘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질서로의 진입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될 수 있다.

지민경_퇴적된 시간_장지에 압화, 수묵채색_130×90cm_2009

그럼에도 에고, 나르시시즘을 극대화하는 것은 소극적인 몸짓이다. 적극적으로 나를 표현하고 있다고 믿지만 '보여지는 나'를 거부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나의 욕망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아니,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한 발도 물러 설 수 없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다. 자아를 적극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거울 혹은 캔버스 밖을 걸어 나오는 것은 힘겹다. 그러한 이유에서 캔버스에 그려진 '나'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다면 더욱 더 침잠해 들어가거나 혹은 거울을 깨뜨리고 캔버스를 찢으며 바깥을 바라 볼 수 있는 순간들, 그러한 계기들을 마주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바라보는 일. 그리고 타자의 고통을 바라보고, 그들의 고통과 함께 '나'의 외로움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 볼 수 있을지도. ■ 신양희

Vol.20090517f | 외로운 거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