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al memories

서지형展 / SEOJIHYOUNG / 徐知亨 / sculpture   2009_0513 ▶ 2009_0531 / 월요일 휴관

서지형_tools-4_합성고무(지우개), 아크릴_50×30×27cm_2009

초대일시_2009_0513_수요일_05:00pm

가나아트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가나아트센터 미루 I_MIRU I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가나아트센터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감정의 기복들을 짓는다. 즐겁게 그리고 아프게 ●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느낌들이 있다. 가령 누군가에게서 처음 꽃을 받은 날, 나를 찔러왔던 어떤 느낌이 있다. 그 순간. 내 몸을 관통한 어떤 것, 그 표정, 그 목소리, 그 냄새, 그리고 그 연약함…. 미안함을 표현하는 누군가의 시선을 외면했을 때의 느낌은 또 어떤가.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과 그가 남기고 간 화해를 구하는 징표 앞에서 내가 느꼈던 어떤 감정. 그것은 안쓰러운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시원한 느낌인 것 같기도 하며, 비릿한 느낌인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 모두와 전혀 다른 감정일 수도 있을 게다. 이런 느낌들, 감정들은 어떤 방식으로도 명확히 표현될 수 없다. 달리 말해 그 느낌을 원래대로 다시 살려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 명확히 표현할 수 없고, 원래대로 표상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서지형_first love_합성고무(지우개), 랩, 유리병_50×25×30cm_2009
서지형_friends-4_합성고무(지우개), 아크릴_50×65.5×6cm_2009

서지형 근작들은 이렇게 명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엄연히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느낌들을 보듬고자 한다. 이 작가는 그것을 '감정적 기억들(emotional memories)'이라고 부른다. 그녀에게서 이런 감정적 기억들은 의식이 붙들고 있는 기억이라기보다는 몸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들이다. 의식이 붙들고 있는 기억이 아니기에 그것은 명확한 꼬리표-이름을 붙여 정리, 정돈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어떤 사물,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색채, 어떤 질감, 어떤 형태들에 몸이 정감적으로 반응하여 일어나는 어떤 떨림, 어떤 진동과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몸에 각인된 기억이다. 이렇게 몸에 각인된 기억은 명확한 꼬리표를 부여할 수 없기에 애매하고 모호하다. 항상 모든 것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이에게 이 애매모호한 것은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일 테지만, 좀 더 솔직하게, 좀 더 감정적으로 세계-나를 마주대하고 싶어하는 작가에게 그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이 작가는 애매하고 모호한 것을 명확하게 만드는 대신 그와 더불어 즐거워하거나 아파할 것이다. 서지형이 바로 그런 작가다.

서지형_so long farewell-2_합성고무(지우개), 아크릴, 나무, 실_110×165×95cm_2008
서지형_studio-1_합성고무(지우개), 아크릴_78×60.5×6cm_2009
서지형_want-2_합성고무(지우개), 아크릴_44.5×44.5×6cm_2009

그러면 서지형은 어떤 방식으로 감정적 기억들을 보듬는가? 그녀는 자신의 몸에 어떤 떨림, 어떤 감정의 기복을 가져왔던 사건과 연관된 사물, 색채, 질감, 형태들을 입체와 평면으로 빚어내는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가령 그녀는 사탕의 형태를 만들어 그 사탕과 연관된 달콤한 느낌을 불러내고 즐거워하거나 아파한다. 그 달콤한 기억이란 오래 전에 내 사탕 선물을 받고 어떤 선생님이 내게 던진 말-"너는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과 그 말이, 또는 그 순간이 내게 가져다 준 어떤 행복감, 어떤 포만감 같은 것이다. 그런 감정이 그녀를 즐겁게 하면서 또한 아프게 하는 건 그녀는 여전히 그것을 간직하고 있으나 그것은 이미 사라진 과거의 것, 부재하는 것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녀는 유년 시절 불현듯 그녀를 엄습했던(!) 무당개구리의 붉은 배에서 느꼈던 어떤 공포나 두려움을 불러오기도 하고, 신발과 의자, 오징어, 공구의 형태를 빚어 가족이나 친구, 또는 연인과의 어떤 미묘한 감정적 교류의 느낌을 되살리기도 한다. 또한 여행길에서 그녀를 잡아끌었던 어떤 장면에 대한 감정적 기억들을 되살리기도 한다. 즐거워하고 아파하면서. 또는 아파하고 즐거워하면서.

서지형_on my travels-6_합성고무(지우개), 아크릴_78×90×6cm_2009

이런 느낌들을 되살리고, 저런 감정들을 불러오는 그녀만의 재료가 바로 고무찰흙이다. 고무찰흙은 따뜻하게 데우면 말할 나위 없이 유연해져서 어떤 형태로든 만들 수 있다. 손으로 반죽해 나가다 체온과 거의 같은 온도가 되었을 때 특히 그렇다. 평면 위에 하늘색 고무찰흙 층을 올리고 그 옆에 좀 더 두껍게 자주색 고무찰흙의 층을 붙인다. 그 사이의 빈틈에는 분홍색 층을 (마치 도자기를 상감하듯, 어떤 감정이 내 몸에 각인되듯) 끼워 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매 순간, 따뜻한 체온을 불어넣고, 누르고, 두들기는 일이 오랜 시간 반복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최초의 형태는 자꾸만 변할 것이고 하나는 다른 하나와 불가분하게 뒤섞이게 된다. 마치 누군가에게서 처음 꽃을 받은 날, 나를 찔러왔던 어떤 느낌이 내게서 계속 간직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다른 느낌들과 불가분하게 뒤섞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놀라워라. 그 고무찰흙은 그렇게 굳어지면 결국 지우개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 즐거우면서 아프다. 또한 아프면서 즐겁다. 나는 서지형의 작품을 그렇게 느낀다. 그것은 내게도 서지형의 작품과 공명할 수 있는 어떤 감정적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느낌은 애매한 것이다. 이 애매한 것을 분명한 것으로 되돌리는 대신에 애매한 것 그 자체로 마주 대하는 것은 꽤나 곤혹스럽고 고통스런 일이다. 그러나 작품과 만나는 일, 관계를 맺는 일이 본래 그러할 것이다. 나는 이 작가가 애매한 것을 분명하게 만들라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애매함 자체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계속 그 감정의 기복들을 지어나갔으면 좋겠다. ■ 홍지석

Vol.20090513h | 서지형展 / SEOJIHYOUNG / 徐知亨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