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의 유희를 꿈꾸다

위성웅展 / WISUNGWONG / 魏聖雄 / mixed media   2009_0513 ▶ 2009_0519

위성웅_꿈꾸는풍경_유리구슬, 혼합재료_91×91cm_2008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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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513_수요일_06:00pm

갤러리이즈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_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판타지의 유희를 꿈꾸다 ● 빛이 있어 세상이 존재하였고, 빛으로 어두움을 인식할 수 있듯이 위성웅의 작품 은 빛으로 환하게 실체를 드러낸다. 화려한 배경과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이미지 위에 글라스비드를 얹은 작품은 빛과 함께 마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시각을 자극할 정도로 화려하고 몽환적이다. 하늘에 닿을 듯한 높은 천장과 창문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에 빛이 비추면 그 빛은 세상 것이 아닌 천상의 것으로 변한다. 그 빛이 비추는 곳은 세속의 세계가 아닌 천상의 세계로 변하듯이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마치 꿈의 세계에 와있는 듯한 환상을 갖는다. ● 그런데 작가가 매체로 사용하고 있는 글라스비드는 투명하고 반사하는 특성을 가진 유리로 만든 것이다. 유리라는 매체는 판타지나 꿈 혹은 점성술 등과 관련을 맺으며 비물질의 세계와 비현실의 세계를 표현하는 소재로 사용되어왔다. 이렇게 작품의 주요 매체로 쓰인 유리로 만든 글라스비드는 위성웅의 작품에서 상상력을 매개로 하여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꿈과 환상을 표현하는 미학적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글라스 비드(Glass Beads)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말 그대로 유리구슬이다. 유리구슬이라고 하면 흔히 여성들의 장신구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재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성의 아름다움을 빛나게 하는 장식용 유리구슬이 산업용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위성웅_꿈꾸는풍경_유리구슬, 혼합재료_122×122cm_2008
위성웅_꿈꾸는풍경_유리구슬, 혼합재료_180×244cm_2009

글라스비드의 크기는 마이크론에서 밀리미터까지 매우 다양하며 그 활용범위 역시 폭넓다. 예를 들어, 원자력 폐기물의 처리, 로케트 부품과 항공기체의 표면가공 등에 주요 소재로 쓰인다. 특히 일상에서 글라스비드의 쓰임새를 쉽게 파악 수 있는 것은 도로의 차선이나 교통 표지판이다. 밤이나 악천후 속에서 도로의 차선이나 교통 표지판에 사용된 글라스비드가 재귀 반사를 제공하여 운전자들이 도로에 있는 차선 및 표지를 보다 쉽게 알아보도록 해 주어 운전자의 안전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 이렇게 일상적인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글라스비드는 작가의 작품에서 예술적인 전용을 통해서 정체성이 변화되었다. 즉, 앙드레 브르통이 예술가의 선택에 의해 예술작품의 지위로까지 고양된 기성품을 일컬었던 '꿈의 오브제'가 된 것이다. 작가는 이 '꿈의 오브제'의 이면에 잠재해 있는 꿈과 환상을 대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였고 이를 극대화하여 작품의 주요매체로 사용함으로써 작품 속에서 이 오브제는 또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글라스비드는 일상의 맥락으로부터 심미적 맥락으로 옮아가서 현실로부터 비현실적인 꿈의 세계로 옮아갔고 결국,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꿈으로서 존재한다.

위성웅_꿈꾸는풍경_유리구슬, 혼합재료_122×122cm_2009_부분
위성웅_꿈꾸는풍경_유리구슬, 혼합재료_122×122cm_2009

위성웅의 작품에서는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를 엿볼 수 있다. 상상은 일종의 '정신의 놀이'이다. 왜냐하면 상상을 할 때 정신은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놀이를 할 때 결과나 성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과정에 몰두하듯이 작가 역시 작업 과정 동안 놀이의 기쁨과 유희를 즐겼기 때문에 작가의 작품 속에는 유년시절에 우리가 꿈꾸었을 법한 풍부한 판타지가 가득한 서정적인 이미지가 범람한다. ● 작품의 배경은 수많은 행성들이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 천체 혹은 구름바다를 연상시킨다. 이 천체와 운해에는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꿈을 꾸는 사물과 자연이 자유롭게 유영하면서 공존한다. 사람은 무지개와 양탄자를 타고 공기처럼 가볍게 하늘을 날으며 꿈을 꾼다. 그리고 나무는 햇빛과 조우하고 비에 목을 축일 꿈을 꾸며 꽃은 만개를 꿈꾼다. 이렇게 작가의 그림 속에서 주체와 객체의 경계는 무의미해지며 주체가 꿈을 꾸기도 하지만 사물과 자연 역시 꿈을 꾼다. ● 「꿈꾸는 풍경」 시리즈에 담긴 작가의 시선은 유쾌하며 삶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내밀한 시선은 그림 속에서 날아다닐 듯한 공기적 이미지들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유쾌한 이미지들은 역설적지만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세상과 사물에 대한 작가의 사색과 명상 즉, 작가의 '진정성'을 대변하는 자서전적인 이미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밝은 이미지의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작가의 실존적인 고뇌와 인고를 우리들이 그림을 보면서 유추해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위성웅_꿈꾸는풍경_유리구슬, 혼합재료_91×91cm_2008
위성웅_꿈꾸는풍경_유리구슬, 혼합재료_122×122cm_2009

작가는 이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아마도 삶과 그림, 자신과 그림 사이의 무거운 관계의 중압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정신의 가벼움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이전의 작품이 엥포르멜이나 신표현주의 양식의 그림이었다고 한다면 「꿈꾸는 풍경」 시리즈는 이전의 엄숙주의 그림에서 일탈하여 그 어떤 종류의 권위나 금기, 중량감에 얽매이지 않고 상상력의 분방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작가 자신 역시 지금껏 작품을 이렇게 경쾌하고 재미있게 했던 적은 없다고 말했듯이 이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들도 작품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인간, 사물이 꿈꾸는 판타지의 세계를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결국 이전의 작품은 삶과 인간 실존의 무거움을 무거움 그 자체 그대로 수락하여 표현했다고 한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가벼운 무거움, 무거운 가벼움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꿈꾸는 풍경」 시리즈는 작가의 이전 작품에서 느껴졌던 무거움을 전혀 느낄 수 없으며 서정적인 시처럼 혹은 재미있는 동화처럼 읽힌다. ● 작가의 이전 작품을 보았던 이들은 이번에 전시된 작품이 동일한 작가에 의해서 제작된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작가의 작품은 크게 변화하였다. 현재의 작품을 이전 작품과 비교해본다면 표현양식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작가가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이야기는 우리 인간과 삶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작품은 이전 작품에서 보다는 더욱 더 인간과 삶의 현실로 회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선으로 단순하게 표현한 형상에서는 리얼리즘에 대한 작가의 욕구가 표출되어 있다. 이러한 회귀와 욕구의 표출은 단순한 리얼리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작가의 일상사와 꿈, 이상 등을 리얼리즘이라는 미술의 문법으로 해석하고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작가에게 일상의 삶이란 '꿈이 만들어내는 풍경'이기에 이 삶의 이야기를 「꿈꾸는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화면에 고스란히 담아 낸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형상의 면면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작가의 일상과 그가 꿈꾸는 판타지,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살아있다. 작가가 발을 딛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의 삶의 의미를 생성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형상들을 작품에 담아내는 행위는 일상사의 아름다운 반영이며 예술의 본질적인 속성인 작가만의 나르시즘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무미건조한 일상의 풍경을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풍경으로 탈바꿈시키는 신성한 행위라고 감히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 박주영

Vol.20090513b | 위성웅展 / WISUNGWONG / 魏聖雄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