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규展 / SONGYOUNGKYU / 宋英圭 / painting   2009_0417 ▶ 2009_0426

송영규_섦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53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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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417_금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_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 www.noamgallery.com

'섦'의 풍경 ● 몇 해 전의 가을로부터 시작된 이 그림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결국 그 이전의 작업들과의 미세한 차이를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겠다. 지난 몇 해 동안 그림들이 일관해온 이야기는, 타인과의 관계가 한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결정적인 조건중 하나일 것이라는 전제에 대한 확인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작업들의 시작에서, 내가 진심으로 관찰하고 묘사할 수 있었던 인간은 단지 나 하나뿐이었으므로, 더욱이 관계에 대한 불안과 결핍으로 충만했던 시기가 작업의 시작과 공교롭게 맞닿아 있었던 이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림은 타인과의 관계가 나의 존재를 황폐화시켰음에 대한 치기어린 토로에서부터 시작되어, 시간과 함께 상처가 치유되거나 매몰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서술일 듯하다.

송영규_화분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08

전작들을 진행시키는 과정에서의 심리적 정황에 대한 이 진술들로 인해 나는, '관계'를 이야기하는 그림속의 주인공들이 '나'아닌 '타인'들로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림 속에서 유폐되기를 자청하고, 짐짓 냉소하거나 혹은 슬퍼하고, 관계 맺기를 열망하거나 후회하는 등의 갖가지 모습들로 변주되던 타인들의 모습은 결국 그림을 그리는 '나'였다. 그림 그리는 나의 내밀한 경험과 그로인한 심리적 정황을 회화 안에서 용해 시켰을 때, 보는 이의 정서에 흡수되거나 충돌하거나, 혹은 어떤 식으로든 공명할 수 있는 보편의 어떤 요소가 추출될 거라는 믿음은, 늘상 그림 속에 그려진 타인의 모습과 그들의 상황이 결국 나의 그것들임을 번번이 확인한 이후에 스스로 되 뇌이던 위안의 결과인 듯하다. '그림을 그리는 나'는 언제나 타인의 모습을 빌어 '그려지는 나'로 그림 속에 들어 앉아 있었다. 그림의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주, 객의 역할을 번갈아 맴돌던 내가, 온전히 그림의 밖으로 빠져나와 주위의 세계와 타인들을 그림 속에 담으려한 시도의 결과물이 이 그림들이다.

송영규_섦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cm_2008
송영규_섦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53cm_2008

그림 속에 들어앉아 '나'의 어떤 정황들을 구구절절 읊조리는 일을 그만두고자 하는 것은, 그로인해 그림이 지니게 되는 어떤 결핍이나 미덕에 대한 불만과 만족과는 전혀 무관하다. 다만, 그림이 담아내는 대상들의 지평이 그 외연을 조금 넓힐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며, 나에 대한 고백의 여지가 (다행이거나 혹은 불행하게도) 스스로는 잠시 소진된 상태라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근작과 이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할애한 이 지면의 많은 부분을, 전작들로부터 이행되어 온 그리는 자의 심리적 정황의 추이로 이렇듯 채워 넣는 것은, 그것이 이 그림들에 대해 내가 정확히, 혹은 절실하게 진술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송영규_오정일의 방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5×91cm_2009
송영규_김윤수의 방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07

전작들과의 이 '미세한 차이'로 인해 진행되고 있는 이 전시 『섦』의 외연과 몇 가지의 내포는 다음과 같다. 우선,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고백이 마감되고 풍경이 등장하였다. 고백이, 빛이 사라진 어두운 방안의 인물들을 통해 토로되어왔던 피안(彼岸)이었다면, 풍경은, 세계 안에서 실재하는 인간관계들의 진경이다. 무심한 관찰자의 먼 시선으로 채집된 누군가의 방과, 거리와, 화분은, 관계의 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무대로 그림 안에서 현상한다. 그곳은 어느 순간 낯설고 외딴 섬처럼, 무심하지만 완고한 풍경이 되어 그들을 가두기도 한다. 타자들의 욕망으로 소란스럽기 그지없는 자아의 위치를, 어떻게든 정초(定礎)해보고자 했던 그림속의 주인공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무기력한 틀인 것이다. 그곳은 가구와 일상의 집기들로 채워진 말 그대로의 방이기도 하며, 인사동의 어느 거리 한복판일 수도, 검푸른 한강 물 속일 수도, 동물원의 사자 우리일 수도 있으며, 어찌할 바 모르고 갇혀 있는 어떤 식물들의 화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섬' 안의 그들은 타인과의 화해를 모색하기도 하며, 출구를 찾기도 하지만, 옆자리의 사자에게도 무심할 뿐이거나, 인파 가득한 거리 한 복판에서도 망연자실한 거인으로 혼자 남기도 하고, 대지를 공유하며 뿌리를 섞고 있어야 할 어떤 식물들은 각자의 화분 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쩌면 일체의 주변으로부터 벗어나, 그들의 몸에 애초에 내장되어 있었는지 모를 천부의 자아가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송영규_화분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60.6cm_2009

인간관계의 진경을 채록하려 한 이 일련의 그림들을 통해 나는, '타인'에게 한 인간이 대체 그 존재의 얼마만큼을 빚지고 있는 것인지, 또한 그들에게 타인은 굴레인지 축복인지, 혹은 그저 무미건조한 삶의 조건일 뿐인지를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이 전시 『섦』은 관객에게 있어, 자신의 방에 둥지를 틀고 있던 타인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아마도 타인을 발견한 관객은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화해를 모색하거나, 혹은 대치하거나, 짐짓 모른 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송영규

Vol.20090417a | 송영규展 / SONGYOUNGKYU / 宋英圭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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