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한 풍경_privationscape

지현씨展 / JIHYUNS / 芝賢 / painting   2009_0414 ▶ 2009_0428 / 월요일 휴관

지현씨_풍경1(테이프들)_테이프, 비닐봉지_가변설치_2008

초대일시_2009_0414_화요일_08:00pm

관람시간 / 03:00pm~12:00am / 월요일 휴관

갤러리카페 캐러플 GALLERY CHARAPLE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8-46번지 5층 Tel. +82.2.334.1798 www.charaple.org

privation 1. (사는데 중요한 것의) 박탈, 몰수, 상실 / 2. (생활필수품 등의) 결핍, 궁핍

이것은 일종의 여행입니다. 여행지에서 얻는 경험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요. 여행은 결국 그 대상보다 여행자의 내적주관에 의해 기억되는 고로_지현씨로부터

이것은 테이프입니다. 반들반들하며 쩍쩍 달라붙는. 그 존재 자체가 본래 다른 것들을 위한 유용한일회용소모품. 어느 날, 작가는 직선을 긋기 위해 테이프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한번 사용되고서 떼어졌지요. 차곡차곡 직선이 그려져 갈수록 하나씩 떼어진 이 테이프들이 언젠가부터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 걸까요?

지현씨_풍경2(거세된 울트라 마린)_휴지, 오일_가변설치_2008

이것은 휴지입니다. 닦는다는 것은 행위자의 입장에서는 무엇인가를 없애는 것, 흔적을 지워버리는것, 거세하는 것. 그 대상의 입장에서는 없애지는 것, 지워지는 것, 거세되는 것일테지요. '핀란드 역에서'라는 책을 읽고 있던 중 작가는 청년의 맑스와 엥겔스가 편지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이상을 나누었던 대목에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때 떠오른 색깔이 바로 울트라 마린이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것을 그리다가 왠일인지 닦아내고 맙니다. 미처 마르지 않았던 울트라 마린은 닦여지고 나니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하얗게 표백된 이 휴지에 닦인 것, 이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삶의 여정에서 정말 푸르른 무언가를 떠낸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요?

지현씨_풍경3(삶은 달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사운드 설치_41×53cm_2009

딱딱한 껍질 속에 끈적하고 부드럽고 물컹거리는 속살. 그것은 작가가 그림으로 표현해내고 싶은 삶이었지요. 그러나 그 느낌은 그려지는 순간 더 이상 물컹거리지 않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작가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 느낌은 이미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전체를 그리기로 하였습니다. 그 속에는 끈적하고 부드럽고 물컹거리는 그것이 이미지로 왜곡되지 않으며 온전하게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삶은 달걀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삶은 달걀이라는 그림인 것입니다.

지현씨_풍경4(두개의 상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2×41cm_2009

이것은 상자를 그린 그림입니다. 상자는 존재 자체가 이미 다른 것들을 위한 유용한이삼회용소모품. 이런 상자들은 이 도시의 어딘가에서 종종 발견되지요. 아마 이 상자의 속에는 또 다른 모양의 거세된 울트라마린, 반짝였던 테이프, 끈적하며 부드럽고 물컹거리는 그것이 들어있는지도 모릅니다. 상자는 외부에만 존재할까요?

● 무엇이 닦여지고, 누가 닦아버린 것일까요? ● 각자의 테이프들은 어떤 모양으로 존재할까요? ● 달걀들은 잘 있나요? ● 소외된 상자들은? ● 거세된 푸르름은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 이미지는 과연 진실을 담을 수 있을까요?

지현씨에게 작업은 일상의 작은 경험을 통한 사유이다. 아파트베란다에서 키우던 토마토는 키가 천정까지 자란다. 그것이 기형적으로 자라게 된 까닭은 충분하지 못한 햇빛과 바람 때문이다. 기형토마토나무의 생장기를 통해 지현씨가 생각하게 된 것은 온전히 그 존재로 자라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사람에게 물, 햇빛, 바람, 땅은 무엇에 해당될까? ● 사유와 인식은 또 다른 삶의 여행을 시작하게 하는 동기가 된다. 그래서 이것은 빈곤하지 않음을 위한 풍경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예술도 삶도 결국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린다. 상품 논리의 허기짐에서 벗어나 온전한 삶의 여행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 지현씨

Vol.20090414c | 지현씨展 / JIHYUNS / 芝賢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