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질서 Unstable Order

인효진展 / INHYOJIN / 印孝眞 / photography   2009_0410 ▶ 2009_0505 / 월요일 휴관

인효진_High School Lovers-Romance#01_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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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410_금요일_05:00pm

성곡미술관 2009 내일의 작가展

관람료 / 대인_4,000원 소인_3,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목요일 10: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성곡미술관_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82.2.737.7650 www.sungkokmuseum.com

그들의 로망스는 현실이지만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그들의 로망스는 낭만적인 환타지와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서성인다. 그들의 로망스는 행복하기에 불안정하고, 소소하기에 애처롭다. 그들의 로망스는 회색 지대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7년 '스틸레토'에 이어 새로 발표하는 신작 「High School Lovers _ ROMANCE」 시리즈와 더불어 앞으로 할 작업 「열혈남아 프로젝트」 일부와 기존 작업들까지, 여태까지 해왔던 내 작업의 흐름을 조금은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전시의 전체 제목은 '불안정한 질서' .... 질서라는 것이 원래 겉으로는 견고해 보이지만 사실은 늘 균열의 틈새에서 허덕이는 허약한 시스템이 아닌가. 인간의 욕망을 억압해야 유지되는 질서의 속성 상, 억압을 뚫고 나오려는 욕구들을 억누르면서 유지시킬 수 밖에 없는 질서는 태생적으로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 ●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그 질서 바깥으로 발을 내딛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저절로 눈이 가고, 관심이 간다. 그래서일까. 내 작업들은 늘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자들의 경계에 선 초상처럼 보인다. 욕망과 불안을 가득 안은 채, 일탈을 꿈꾸지만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그저 소심한 일탈로 발만 한쪽 담그다 슬그머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그런 평범한 인간들 말이다. 사회적 지위는 물론, 나이와도 상관없이 어리면 어린대로, 나이들면 나이든 대로 매순간, 질서에 순응하면서도 끊임없이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꿈꾸는 우리는 분명 내적으로 불안하며, 결핍을 안고사는 애달픈 초상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인효진

인효진_오감도_디지털 프린트_60×400cm_2008

불안정한 질서 ● 인효진의 이번 전시는 초기작에서 근작에 이르는 그간의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다른 소재/대상을 찍었는가 하면 우리 삶에서 광범위하게 서식하는 이미지(오브제사진)를 채집해서 설치한 것 등이지만 생각해보면 그것들은 한결같은 관심 아래 길어 올려진 것들이다. 우선 그녀가 찍은 피사체는 거의 여자들이다. 어린 소녀에서 여고생 그리고 성인여성들로 확산된다. '인형의 소꼽놀이'와 'My Lovely Kitty'는 나이 어린 소녀들이 대상이고 '오감도'와 'High School Lovers'는 여고생(고등학생 연인들이지만 여학생이 중심이 되고 있다), '열혈남아 프로젝트'(Hot Punk Project)는 포르노 모델이나 성인잡지, 에로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이다. 여자로 태어나 자란다는 것은 이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남한 사회 안에서 아버지, 아저씨, 오빠들의 시선 속에 훈육되거나 길들여지거나 그 시선을 내재화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자유롭기는 참 힘들다. 어찌보면 인효진은 그 같은 우리 사회에서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틀 안에서 자신의 여성성을 연극, 연출하는 여자들의 초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그 안에는 강제되는 틀 속에서 위악적인 행복과 낭만을 꿈꾸거나 희구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길들여지거나 연극적으로 소모되는 생애에 대한 자조들이 비릿하게 뒤섞인 풍경이 동시에 겹쳐서 떠오른다. 그것은 현실 안으로 발을 들인 모습과 그 현실에서 발을 빼는 것이 동시에 조망된다는 뜻이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 인효진의 일련의 사진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자/여성이란 존재가 누구인가를 묻고 있는 다큐멘터리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한국 사회를 해부하고 들여다보는 임상적인 시선이 스며있다. 또한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성격을 무의식적으로 투영한다. 그 안에서 여성들은 주어진 현실적 제도에 갇혀 지내면서 소극적으로나마 그로부터의 이탈과 탈주를 꿈꾸는 그러나 실현될 수 없는 연극적이며 자기 모순적 측면을 악몽처럼 드러내기도 한다. (중략)

인효진_High School Lovers-Romance#06_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08

동일한 맥락에서 교복 입은 소녀들을 반복해서 찍은 「오감도」는 고등학생들이 한창 자살하던 시기에 떠올린 작업이라고 한다. 동일한 유니폼/교복을 입고 똑같은(너무 길고 커서 마치 족쇄처럼 보이는 불편한 의자) 의자에 건조하고 무료하게 앉아있지만 부분적으로 다리와 손의 배치, 가발, 핸드폰, 샌들 등 잘 보이지 않는 작고 미묘한 것에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얼핏 봐서는 그저 모두 똑같은 포즈에 똑같은 교복을 입고 앉아 있는 여학생들처럼 보이지만 각자 그 안에서 서로 다르게 조금씩 모종의 금기를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그 정도 일탈은 소심한 편이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여학생들은 치마 단의 높낮이와 몸을 조이는 교복 상의, 화장, 머리 염색이나 가발 등을 통해 성인여성을 모방하는 동시에 주어진 틀에 저항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 일탈은 좀 애교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교복에 저당 잡혀있는 자기 몸을 어떤 식으로든지 섹시한 여성의 몸으로 보여지기 위한 전략 역시 보이지 않는 남성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물론 자기 만족적이자 본능적이라고 말해질 수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듯 싶다.

인효진_High School Lovers-Romance#07_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08

역시 같은 측면에서 'High School Lovers'(로망스)는 이른바 여고생들의 사랑과 성을 보여준다. 교복 입은 남녀학생이 타인의 시선을 피해 서로 부등켜안고 애무하는 장면이다. 이들에게 성관계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닐 것이다. 성인 연인들의 일상적 포즈가 교복 입은 학생들에 의해 재현/모방되는 데서 순간 파열음이 일어난다. 육체적 성장이 과잉되고 성에 대한 욕구와 환타지가 너무 강렬하고 쎄서 주체할 수 없이 막무가내로 방출되는 성적 에너지를 적절히 조율하기가 어려운 이들에게 사랑과 섹스를 대학 이후로 보류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청소년들은 한 사회가 강제하는 성적 금기를 이반하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떳떳이/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이 사진 속 고등학생 연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한 그들의 성적 로망스를 연출하면서 건전하고 착한 청소년이란 통념을 전복시킨다.

인효진_High School Lovers-Romance#09_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08

최근작인 '열혈남아 프로젝트'(Hot Punk Project)는 여성의 육체를 상품화하는 선전용 카드를 수집, 배열한 작품이다. 그 작은 종이 안에는 현대 남성들의 온갖 성적 환타지와 지형도가 모두 들어있다. 명함 크기만한 작은 카드에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통한 정보가 흥미롭게 인쇄되어 있다. 작가는 그것을 다시 보고 읽게 하려는 의도에 따라 전시장에 수 천개의 카드를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 전시한다. 멀리서 보면 잘 알 수 없는 이미지, 색 면의 가로 줄무늬인 추상적 패턴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작은 카드에 담긴 정보들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시간과 거리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들이 다가오고 사라지는 기이한 경험을 제공하는 셈인데, 그것들이 반복해서 보여지는 순간 강력한 힘, 이미지가 된다. 시각적으로 엄청난 양이 과잉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인효진_열혈남아 프로젝트 (Hot Punk Project)_디지털 프린트_170×280cm_2009

이미 우리 현실은 그 같은 이미지가 시각적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 작은 카드는 포스터나 상품 디스플레이의 홍보 전략처럼 이미지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설치된다. 온갖 포즈의 나체 혹은 일부만을 가린 채, 유혹하는 포즈의 여성들의 몸이 수놓아져 있다. 키치적인 색감과 그녀들이 취하고 있는 유형적 포즈들은 일반적인 포르노의 시선을 따르고 있다. 사진 속 여성들은 익명의 존재이면서 매춘의 기호들이다. 이 완전한 상품들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홍보 방식에 따라 배치, 산포된다. 그것은 주차된 차의 창 사이에 혹은 거리의 아스팔트 위에서 뒹군다. 누군가 집어서 전화를 걸면 그 여성의 육체(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몸)를 소유한다. 마치 상점에 진열된 물건을 골라 사듯이 말이다.

인효진_열혈남아 프로젝트 Private Collection-Red Corset_피그먼트 프린트_66×60cm_2009

어쩌면 이 카드 속 여성들의 몸과 시선 역시 주어진 현실 속에서 꿈꾸는 턱없는 환상, 소비로 인해 획득한 찰나적인 행복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이 한 장의 카드 안에서 비근한 일상의 탈주를 꿈꾸는 남성들의 환타지는 그러나 결코 충족되지 못하고 불안함과 소심한 탈주 속에서 매번 낙담으로 끝날 것이다. 그 사진 속 여성들은 사실 어디에도 없기에 그렇다. 그럼 카드 속 여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 박영택

Vol.20090410d | 인효진展 / INHYOJIN / 印孝眞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