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위치 The Location of Sensation

이정민展 / YIJOUNGMIN / 李庭旼 / painting   2009_0403 ▶ 2009_0420

이정민_권태 Boredom_캔버스에 먹, 아크릴채색_27.5×45.5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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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403_금요일_06:00pm

후원 서울문화재단_서울시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01:00pm~09:00pm

예술공간 헛_HUT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8-13번지 Tel. +82.2.6401.3613 club.cyworld.com/hut368 www.hut368.com

이정민은 이번 개인전을 통해 우리에게 '감각의 위치(The Location of Sensation)'를 질문한다. 여기서 '감각의 위치'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는데, 첫 번째는 '빈지-퍼지 신드롬(이상식욕항진증)'이라는 일상의 병리적 증상을 '존재론적 배고픔'의 은유로 다루었던 지난 전시에서 알 수 있듯이 '신체적 감각과 정신의 작용'에 대한 것이다. 작가는 다양한 회화적 장면들을 통해서 현대인들이 당면한 최대의 난제인 정신과 신체의 불협에서 파생된 우울증, 거식증 등 각종 정신적 질병들에 대해, 개인적 결핍을 넘어 사회적인 결핍이라는 비판적 시각과 초월의 의지를 보다 심도 깊게 다룬다. ● 두 번째는 구상과 추상으로는 분류될 수 없는 작가의 회화가 지향하는 '감각'의 회화를 뜻한다. 이는 들뢰즈가 베이컨의 회화를 설명할 때 사용했던 '감각'이나 동양화의 '사의(寫意)'와도 유사한 개념이다. 동양화의 재료인 먹과 아크릴 물감의 비친화성을 조화시키는 재료적 실험을 바탕으로 호흡과도 같은 준법(峻法)의 운용을 성숙시킴으로써 작가는 촉지적 회화, 즉 머리로 인지(perception)하는 것이 아닌 신체로 '감각(sensation)'케 하는 회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 예술공간 헛

이정민_섬광 A Flash_캔버스에 먹, 아크릴채색_116.5×80cm_2009
이정민_모두 나누었습니까? Do you finish to share?_캔버스에 먹, 아크릴, 유채_130×162cm_2009

Yi Joungmin questions us on 'The Location of Sensation' in this show. 'The Location of Sensation' has two meanings roughly. The first is about the operation of physical senses and soul as we have already known from her last show entitled 'Binge-purge syndrome': it is a medical term to denote a symptom in which a person has an overwhelming desire of particular food or can't feel fullness after meal and abnormal appetite continues. Yi Joungmin used this term as a strong metaphor to symbolize 'ontological hunger'. At this time, she shows her critical sight that various mental diseases like Melancholia, Anorexia etc. come from social deficiency as well as personal deficiency, and expresses the will for transcendence at the same time more profoundly in her planes. ● The Second is about the painting of 'Sensation'. It means that her paintings can't be classified under two heads: figurative and abstract. The 'Sensation' is akin to Gilles Deleuze's term used when he analyzed paintings of Francis Bacon. And also it is very similar to 'xie yi(寫意)': a notion of Oriental painting theory. By her brushstrokes like respiration affected by the way of brushstrokes of Oriental 'Shan shui(山水)' painting and her experiment on the insoluble traits between Indian ink and acrylic colours attaining maturity, She extends the possibility of 'haptique' painting, i.e., not the painting perceived by brain but the painting of 'Sensation' felt by body. ■ HUT

이정민_Threesome_캔버스에 먹, 아크릴, 유채_112×145.5cm_2008
이정민_준법(峻法)연구-Congressmen(2)_A study on Oriental Brushstrokes-Congressmen_ 캔버스에 유채_72.5×90.5cm_2009

『감각의 위치 The Location of Sensation』이정민展 대담 장지이 ● 먼저 개인전 축하한다. 작년 초 「빈지-퍼지 신드롬(Binge-purge Syndrome)」이후 어떻게 작업을 이어갈지 궁금했는데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 「감각의 위치(The Location of Sensation)」인 것이 흥미로웠다. 제목만으로는 회화 자체의 문제에 더욱 집중하게 된 듯한 느낌이다. 전시 타이틀에서부터 먼저 이야기를 풀어보자. 이정민 ● 사실 그리기에 관한 문제는 지난 전시에서도 중요했다. 그런데 빈지-퍼지 신드롬(이상식욕항진증)이 더 직접적으로 부각되어서인지 아니면 케익, 햄버거 등의 소재가 상대적으로 많아서였는지 그 부분을 읽어주는 사람은 드물더라. 덕분에 음식 소재의 전시 섭외가 진짜 많았다.(웃음) 장지이 ● (웃음) 빈지-퍼지 신드롬은 존재론적 배고픔의 은유일 뿐이고! 이정민 ● 그렇다.(웃음) 먹과 아크릴의 혼용이라는 재료적인 부분을 관심 있게 보거나 반대로 의심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 그것 역시 나에게는 일부일 뿐이다. 장지이 ● 재료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그렇다면 이번 「감각의 위치」는 작정을 하고 나온 제목이겠다. 나에게 가장 먼저 연상된 것은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민음사刊)』였다. 이번 전시에서 말하는 '감각'이 세잔이 명명하고 들뢰즈가 집요하게 다루었던 그 '감각'을 뜻하는 것인가? 이정민 ●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 『감각의 제국』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던데...(웃음) 사실 「감각의 위치」에 대해 크게 두 가지의 질문을 생각했다. 하나는 지난 전시에서도 다루었던 신체적 감각과 정신의 작용에 대한 것이다. 식욕이 더 이상 식욕이 아닌 것처럼. 불교에서는 눈, 귀, 코, 혀, 피부라는 감각기관이 객관적인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 작용을 각각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이라고 해서 5식(五識)이라 한다. 여기에 의식(意識)을 더해 6식이 있는데, 유식(唯識)불교에서는 더 나아가서 자기애나 잠재의식, 유전자에 기억된 인류 경험의 전체 같은 제7 말라식, 제8 야뢰야식까지 마음의 심층을 나누어 탐구한다. 이것은 정신과 육체의 괴리, 장애라고 규정되는 현대의 참으로 다종다양한 정신병리적 현상들을 보다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물론 그 해결 방법이야 쉽지 않지만. 두 번째는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나의 그림이 생산되는 원리로서 감각의 위치를 묻는 질문이었다. 장지이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섬세한 구분 모두가 공(空)하다는 반야심경의 오온개공(五蘊皆空)은 정말 시원한 대반전이지 않나? 이전 그림들 전반에 드리워진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존재론적인 아우라는 첫 번째 질문으로 설명될 것 같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말해보자. 들뢰즈는 베이컨의 회화를 논하면서 구상적, 삽화적인 것과 형상적(figure)인 것을 대립시켜 구분했다. 구상적이지 않으면서 추상회화와도 다른, 더욱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회화의 길. 이정민의 회화 역시 그 길을 가고 있다는 의미인가? 이정민 ● 들뢰즈의 텍스트는 반야심경을 읽을 때만큼이나 정신적 환희를 주었다. 그림에 대해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것을 누가 대신 말해주는 것 같더라. 들뢰즈의 텍스트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태도를 스스로에게도 좀더 명확하게 해줄 텍스트를 발견했으니 반가울 수밖에. 세잔과 베이컨의 회화가 서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듯이 드러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감각'의 회화를 추구한다는 점은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감각'이란 것이 전통 동양화의 '사의(寫意)'와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이다. 장지이 ● 재미있는 비교다. 뜻을 그리는 '사의'는 D. H. 로렌스가 표현한 세잔의 '사과성'(appleyness)을 연상케 한다. 이번 전시작 중 「Cluster; 끊이지 않는 생각」은 이미 그것을 염두에 둔 것 같기도 하고. 본인의 회화에서 구상적인 것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아까 언급했던 재료의 혼용인가? 이정민 ●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준법(峻法)이다. 사실 나의 그림은 선에 의존하는 부분이 크다. 촉발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최초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캔버스에 직접 그리는 과정에서 필선(筆線)에 의해 최초의 이미지들은 깨져나간다. 먹과 아크릴이 서로 완전히 섞이지 못하고 만들어내는 효과는 또 그 선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고. 그래서 결국 그림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그 과정은 때로는 정말 매혹적이다. 장지이 ● 이정민의 회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불안정한 동시에 명확성을 가지고 일렁이는 선과 안료의 우연적 효과들이 이루어내는 화면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머리로 지각(perception)하게 만들기 보다는 신체로 감각(sensation)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지난 도록 평문에서 조동석씨가 쓴 '숨소리와 같은 필치'라는 표현은 매우 적절했다는 생각이다. 이미지의 수집이라면... 리히터의 아틀라스(Atlas)와 같은 데이터를 말하는가? 이정민 ● 뭐 비슷하다. 직접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인터넷, 잡지, 영화 등 출처가 무엇이든 나의 주관적인 정서를 건드리는 것은 일단 수집하고 본다. 하나의 도구다. 장지이 ● 한편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들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필선의 느낌은 상당히 절제된 듯 하다. 형상의 왜곡도 절제되어 있다. 포스트모던 이후에 도래한 공허감, 즉 미래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없이 냉정하게 스스로를 관망하는 시선으로 읽힌다. 이정민 ●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동양화의 영향이 아닐까. 동양화의 필법은 감정을 즉자적으로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정제되어야 한다. 파격도 그 이후에야 가능하다. 장지이 ● 그러고 보니 그림의 제목도 화제(畵題)를 쓰듯 공을 들이는 것 같다. 내적인 성찰이 우세했던 지난 전시에 비해(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화면에 포섭되는 대상의 범위가 상당히 넓어졌다. 「독서-맹인들」이나 이주 여성들을 그린 「The moment; migration」까지. '그리기 자체'에 집중하는 만큼 소재로부터는 조금씩 해방되는듯하다. 「준법(峻法)연구-Congressmen」연작과 같은 접근은 유머러스하고 개인, 사회, 미학적 상상력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리한 제목이다. 그런데 이 연작은 유화로 그려졌다. 재료를 확장할 필요가 있었나? 이정민 ● 지난 전시 이후 유화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먹, 아크릴 보다는 좋은 효과가 날 것이라든가 혹은 별 차이 없을 것이라든가... 학부 때 유화를 다뤄보긴 했지만 다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료에 대한 관심은 늘상 있는 것이고, 특별히 어떤 것을 고집할 생각은 없다. 장지이 ● 한지를 주로 쓰지 않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정민 ● 아까 말한 것처럼 내가 그리는 방식에서 수정이 거의 불가능한 한지는 종이의 낭비가 너무 컸다. 솔직하게 종이값이 진짜 많이 들었다.(웃음) 처음에는 재료비를 아끼려고 캔버스에 그려보기 시작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아크릴 물감을 많이 얻게 되어서 먹과 함께 써보니 재미있더라. 장지이 ● 인문대학을 졸업하고 그림을 늦게 시작한 것으로 안다. 전공을 동양화로 선택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이정민 ● 학생운동에 열중하던 시절을 지나 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개인적으로도 정신적 방황의 시기가 있었다. 혼자 무작정 네팔과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나서 돌아다니던 중에 동양사상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유물론적 사고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고나 할까.(웃음) 그림은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었고... 그런 과정들이 결합되어서 동양화를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당시에 읽었던 석도(石濤)의 화론도 영향을 주었는데 정말 그 때는 동양화에 대한 엄청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장지이 ●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겠다.(웃음) 이정민 ● 물론이다.(웃음) 장지이 ● 대화를 통해서 동양화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지만 이정민의 그림만을 보았을 때 필의 사용이나 비백(飛白)의 표현, 배경의 여백 등 기법적인 면을 섬세하게 보지 않고서는 동양화의 형식이랄까 동양적 정서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얼핏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했다. 동양예술의 형식적 요소들을 전략적으로 차용하는 작가들도 많은데... 오리엔탈리즘을 과도하게 의식한 때문은 아닌가? 이정민 ● 오리엔탈리즘을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도 있나?(웃음) 기형도의 시작(詩作)메모 중에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는 구절이 있다. 애정이 있었던 만큼 도식적인 차용이 무의미하게 느껴진 것 같다. 한편 근대 이전과는 이미 확연하게 달라진 사회 시스템에서 과거 예술의 순수한 가치를 계승하겠다는 태도에서도 필연성을 찾지 못했다. 장지이 ● 블로그에서 '이것은 동양화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보았다. 연재는 언제 계속되나?(웃음) 이정민 ● (웃음)동양화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아서 시작했는데 몇 가지 일을 같이 하다보니 정말 시간이 없더라. 전통 회화 안에서도 너무나 다른 장르와 외부의 영향이 유기적으로 공존하는데 한국 고유의 특성을 몇 가지로 추출해내려는 태도는 어불성설이다. 한편 강압적으로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근대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현재를 부정하는 것인 만큼 오히려 폭력적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담론으로부터가 아니라 토대에서부터 서서히 극복되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아카데미에서 전통회화의 이론과 기법들을 접할 기회가 충분하게 확대되어야 한다든가. 장지이 ● 동양화 작가 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이정민 ● 꽤 많은데... 요즘은 겸재를 많이 생각한다. 「박연폭도(朴淵瀑圖)」의 절벽, 「청풍계도(淸風溪圖)」나 「노백도(老柏圖)」 등의 준법은 짜릿하다. 장지이 ● 현재 활동하는 작가 중에서는? 이정민 ● 한 작가의 작업이 다 좋을 수는 없고... 정수진 씨의 뇌해 그림이 좋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서 관심이 간다. 장지이 ● 정수진 씨가 자신의 그림을 추상이라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정민 ●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장지이 ● (웃음) 어쨌든 자신의 창작 논리를 의식하며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은 것은 바람직하다. 개별적인 작품 분석에 시간을 더 할애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음을 기약하며... 앞으로도 신경시스템을 자극하는 이정민의 회화를 많이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 대담자_장지이, 이정민

Vol.20090403c | 이정민展 / YIJOUNGMIN / 李庭旼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