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32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00am~6:00pm
정독갤러리_JEONGDOK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길 19(화동 2번지) 정독도서관 본관 3층 Tel. +82.2.2011.5774 www.jeongdoklib.go.kr
초등학교시절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를 주문처럼 외웠다. 그 내용의 면면을 알 수 없는 어려운 말들의 배열이었다. 그렇기에 어린 나이였던 우리들 입에서 주문이 되어 흘러 나오기에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선생님의 호명에 자리에서 일어서 그 어렵고 긴 문장을 줄줄 외워내면, 뭔가 모르게 뿌듯했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고 노래 부르며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몇 소절 부르면 콧마루가 시큰해지고 이내 가슴이 벅차서는 꿈에도 소원은 통일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매일 오후 5시30분이면 가던 길을 멈추고, 트럼펫으로 연주되는 반주와 함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며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선생님 몰래 극장엘 갔다. 물론, 학교에서 보여주곤 했던 반공영화가 아닌 성인물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기 전 애국가가 흘러나왔고, 극장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전원 기립하여 애국가를 불렀다. 극장의자에 앉은 채로 그 광경들을 지켜보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불문율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스스로에게도 매우 생경스런 감정이 되곤 한다.
공자는 배우고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느냐고 했다. 우리에게는 배우고 익히는 기쁨보다 정해진 양을 재빠르게 축적하고, 축적된 것들의 내용이나 그 내용의 진위를 따질 겨를 역시 허락되지 않았다. 시대를 조율하던 이데올로기는 어린 우리들에게는 학습의 방법으로 입력되었다. 우리를 고취시켰던 어휘와 음률들은 십수년, 혹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내 몸 어딘가를 맴돌고 있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읊조려보면, 잔잔히 트럼펫 연주가 들리는 듯하다. 동방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은 반만년 역사위에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노래하면서 내가 이 노래를 아직껏 기억하고 불러내고 있는 사실을 놀라워하기도 한다. 내 기억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잊고 있던 어휘나 노랫말의 선명한 귀환. 우리들 기억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이 기억들은 아마도 현재를 이루고 있는 우리에게도 적지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 리금홍
Vol.20090327d | 리금홍展 / LEEGEUMHONG / 李琴鴻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