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Here, Nowhere-어디에나, 어디에도

이인이각_異人異覺展 1부   2009_0325 ▶ 2009_0421

이인이각_異人異覺展_2009

초대일시_2009_0325_수요일_01:00pm

1부 참여작가 김호준_박노진_성지_양혜진_오영은_이경하_장보윤_장유경

관람시간 / 10:00am~05:00pm

샘표스페이스_SEMPIO SPACE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매곡리 231번지 샘표식품 이천공장 Tel. +82.31.644.4615 www.sempiospace.com

Now Here, Nowhere-어디에나, 어디에도 ●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시선은 거리를 전제로 한다. 시선이 시작된 지점, 그리고 그 시선이 머무는 자리 간엔 거리가 존재한다. 이 거리는 상대적이고 또한 임의적이다. 보고자 하는 면이 무엇인가에 따라 시선이 마땅히 지닐 거리는 달라진다. 물리적인 시각에 그 범위를 한정할 경우, 적용되는 법칙은 꽤나 단순하다. 누군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려면 대상에 가깝게 다가갈 것이며 그의 전신을 한 눈에 담기 위해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 된다. 그러나 바라보는 시선에는 종종 주관이 스민다. 주관이 깃든 시선은 물리적 법칙과 무관하게 거리에 대한 감각-혹은 감흥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낯설고도 먼 인상을 받을 수 있고 가장 멀리 있기에 오히려 가까운 느낌의 애틋함을 간직하기도 하는 것이다. ● 바라보는 시선이 무언가를 그려낸다. 지금 여기, '나'라는 주체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내려는 듯, 그린다. 옮겨낸 화면 속에는 정작 시선의 주체가 시각화되어 있지 않다. 오직 시선만이 남아 주체의 생각과 느낌을 대변할 뿐이다. 시선은, 당장은 유보한다 하더라도 결국 일정한 판단을 유도해낼 것이며, 단순히 보이는 현상 너머에까지 미칠 것이다. 효과가 있다면, 스스로를 감춤으로써 그 존재감을 더욱 드러내는 고도의 '숨김의 기술'이 될 수도 있다. ● 『Now Here, Nowhere』展에는 가깝거나 먼 거리에 머무는,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다. 가깝고도 낯설기만 한 인상을, 그리고 저 멀리 위치하면서도 가장 익숙하고 근원적인 바램을 담은 시선들이 말이다. 그 시선들은 사적이고도 은밀한 삶의 모습을 비밀스럽게 들춰내기도 하고(박노진) '사적'이라는 성격이 형성되고 간직되는 공간으로서의 '집', 혹은 그 '집'을 배경으로 한 기억과 감정들을 살피면서 과연 전적으로 '사적인' 성격이 가능한지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사적인 공간 안에 또다시 개인용 은신처를 만들어 가족이라는 애매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동시에 그들에게 무심한 시선을 보내며(오영은), 주인 모를 오래된 필름을 현상하거나 버려진 '빈 집'의 구석구석을 파편적으로 잘라내 조합해낸 시선으로써 가장 사적인, 내면의 영역인 본인의 기억조차 타인의 과거와 중첩되어 변질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장보윤). 한편, 사적 생활에서 비중 있는 미디어의 하나인 텔레비전 상의 이미지, 즉 TV 카메라의 시선을 좇는 동시에 그 걸러진 현실이 실제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작용을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TV 드라마 속 가족의 모습이 '바람직한' 전형이라는 사회적 강요로 이어지는 구조에 대한 비판적 눈(성지), 그리고 익명을 띤 채 잠입하여 엿보는 시사프로그램의 시선과 동일시되어 이젠 의심만 할 뿐인 수동적 눈(양혜진)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미디어 등의 일조로 이미 문명의 속성이 되어버린 각종 규범과 삶의 잣대에 충실한 사람들, 그리고 그와 공존하는 야생의 자연을 함께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장유경). 마지막으로, 실생활에서 쉬이 접하는 인공의 콘크리트 건물과 대조되어 시각적이고도 감성적인 여운과 울림을 남기는 물, 풀, 숲의 자연을 담은 시선(김호준), 그리고 전혀 비일상적인 공간인 차가운 얼음산과 무인도,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바다 한 가운데로 일상의 사람들을 데려다 놓는 시선(이경하)은 현상 저편에 있는 것에 대한 상상, 너머의 것에 대한 동경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 장유경

김호준_영도해안도로에서 바라본 언덕_캔버스에 파라핀, 안료, 사진_97×130cm_2008

동일한 풍경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풍경에는 인간사의 질곡과 애환이 담겨있고 이야기가 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길 건너 숲 속의 공동묘지와 도깨비불 이야기, 그리고 집 옆의 저수지와 죽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뒷 언덕 위의 커다란 느티나무에 관한 이야기는 그 곳의 풍경을 더 각인시켜 준다. 하지만 현재 도로와 아파트, 비닐하우스로 덮여있는 땅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다 묻혀버렸고, 더 이상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오늘 한국의 풍경에 대한 이미지화가 본인의 작업이다. ■ 김호준

박노진_돌아보다_캔버스 먹, 유채_91×72cm_2007

현상의 이면에 있는 또 다른 현상들을 직감하며 거대한 세상을 움직여가는 수많은 이야기 이면의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사회적 감성이 아직 닿아있지 못하기에 이야기化되지 못하고 순간순간 잊혀져가는 내면의 이미지-그 이야기에 시선을 두어 보았다. 개개인의 그 보잘것없는 이야기들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며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 이야기들의 시작점이 아닐까. ■ 박노진

성지_"그 아이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_캔버스에 유채_112.2×194cm_2007

나는 대중매체에 드러난 사회 구조에 주목한다. 한국의 TV 드라마는 화목한 가족의 스테레오 타입을 반복적으로 생산하며, 시청자들이 그것을 바람직한 가족의 전형으로 받아들이게끔 만든다. 나의 회화는 TV 속 가족이 등장하는 장면을 정지된 화면으로 제시하면서, 드라마와 드라마를 생산하고 향유하는 한국 사회에 대해 거리를 가지게 한다. ■ 성지

양혜진_숨어서 보다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6

본인에게 TV화면은 외부세계를 바라보는 窓의 하나로 광범위한 시각적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통로이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현실을 고발하는 시사프로그램들은 개인적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을 사적인 공간에서 몰래 지켜보는 관음증마저 자극하는 듯 하다. 하지만 사실과 허구의 혼재 속에서 수동적으로 TV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 위치에서 벗어나고자 의심하는 태도로 TV화면을 차용하여 회화로 표현하였다. ■ 양혜진

오영은_은신용 박스 Ⅱ_울트라크롬 프린트_150×100cm_2007

사진 속에 놓인 사물들을 잘 살펴보면 그 사물을 이루고 있는 공간이 뒤틀려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뒤틀림은 주변 공간과의 연속성으로부터 분리된 새로운 공간을 암시하고 있다. 얼핏 보면 공간의 연장으로 보이는 은신용 박스는 물리적 공간과의 단절을 꿈꾸며 심리적 독립을 호소하고 있다. 이는 소극적이고 냉소적이지만 '함께 살기'를 위한 새로운 관계의 제안이며 평화로운 방식의 공존을 의미한다. ■ 오영은

이경하_바다로 나가다_캔버스에 목탄, 유채_130×130cm_2008

현실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그 배경을 삭제하고 내가 만들어낸 공간 속에 데려다 놓음으로 화면 안에 충돌을 만든다. 배경의 공간은 현실과 먼, 이상적이며 무한한 공간이다. 이 배경과 사실적이고 원색적으로 표현된 인물들과의 괴리감이 언제나 현실과 이상의 사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못하고 중간 길을 걸어가는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림 안에서 멀고 다가갈 수 없는 '저곳'과, 가깝고 현실적인 '이곳'의 중간지점을 만들어 내고자 하였다. ■ 이경하

장보윤_기억 보조 장치_혼합재료_42×29cm_2009

타인의 과거와 기억들이 담긴 버려진 일기장을 모아 나는 그들의 일기를 나의 '글쓰기'행위로 다시 쓴다. 타인의 기억은 나의 글쓰기 행위로 인해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 일기들로 변형된다. 이것은 타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날짜, 그들의 주변 상황, 친구들과의 일들이 뒤엉켜서 오히려 나의 현재의 글쓰기 행위를 통해 소멸되고 사라져 가는 것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나'라는 인칭 대명사는 내가 주운 일기장 주인을 가리킴과 동시에 그들과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각자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 장보윤

장유경_바라보는 사람들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09

분주하기만 한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은 어디며, 얻고자 하는 것은 무얼까. 그리고 결국 얻는 것은 또 무얼까. 이들의 분주함은 과연 어디서 온 걸까. 이런저런 궁금증들이 나로 하여금 사람들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나는 그린다. 종종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살피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거리를 두는 것이 아직은 편하다. 나의 어지러운 생각들로써 정돈되어 보이는 사람들의 삶, 그 모습들을 흩뜨리기에도 이 편이 아직은 낫다. ■ 장유경

Vol.20090324a | Now Here, Nowhere-異人異覺展 1부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