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_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기억의 박물학 ● 기억이란 본래 감각적인 것이다. 미지근한 일상에 몸을 담근 채 보편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기억이란 감각의 촉수를 예민하게 다듬게 하는 힘을 안겨준다. 현재에 묶여 있는 인간에게 기억이란 과거를 복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다. 인간이 사진과 영상이라는 복제 이미지에 몰두하는 모습만 보아도 기억이 갖는 위력을 느낄 수 있다. 기억이란 본래 개인적이자 집단적인 것이다. 개인적인 기억은 한 인간의 삶의 경계를 규정하고, 집단적인 기억은 특정 집단 혹은 인류의 경계를 그어준다. 어떤 기억은 인간을 확장시키지만, 어떤 기억은 같은 이유로 인간을 구속한다. 어떤 기억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치환되지만, 어떤 기억은 다시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어떤 기억은 또렷이 기억될수록 그 가치가 두드러지지만, 어떤 기억은 희석될수록 더욱 아름답다. 분명한 것은 기억이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에 희미하게 존재하는 미묘한 대상이라는 것이다. 기억은 만져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극히 추상적이다. 제아무리 구체성을 띤 기억이라고 해도 그것은 어린아이가 조각그림을 맞추는 것처럼 한 인간 혹은 한 집단의 과거를 불완전하게 재현해주는 정보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뚜렷한 기억일지라도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기억이 갖는 추상성은 더욱 도드라진다.
그래서일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존재에 눈에 보이는, 손에 만져지는 무언가를 대입시키는 데 능한 예술가를 찾는 까닭은.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감각적인 체취를 동원해 기억이라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가시화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베틀에 촘촘히 배어 있는 하얀 실처럼 다가오는 무수한 와이어에 '육각형'의 오브제를 설치하는 작가 이주영도 그런 존재이다. 이주영에게 육각형의 자개는 유년 시절 엄마와의 행복한 기억을 더듬는 매개물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공기놀이의 공깃돌이 작가에겐 엄마와 자신 사이의 '기억'을 이어주는 특별한 도구가 된 것이다. 기억을 더듬는 작가의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육각형의 오브제에 옻칠을 입혀 '반짝반짝' 빛나게 만든다. '빛'이라는 감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선택은 뿌연 빛을 입힌 영상으로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트렌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클리셰를 반복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갖는 철저한 '수공예적'인 성질로 인해 아우라를 획득하는 비범함을 보여준다.
수공예성. 이주영의 작품이 갖는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극대화된다. 물론 입체설치라는 작품의 틀 안에 나비와 소나무 등 동양적 요소를 연상케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점도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한눈에 보아도 엄청난 시간을 들여 와이어에 옻칠을 입힌 육각형 자개를 하나하나 꿰매야 하는 작품의 구조적인 특징이야말로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힘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녀의 작품이 자칫 일상, 즉 삶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이미지를 창조하는 흔하디흔한 보편적인 작업에 갇히지 않은 데에는 자칫 아둔해 보이기까지 하는 수공예적인 고집을 고수하고, 동시에 평면과 입체를 동시에 수용하는 조형적인 긴장감을 자아낸 데서 찾을 수 있다.
언젠가 인간의 감각을 예찬한 어느 작가의 에세이에서 '빛의 두레박'이라는 단어를 만난 적이 있다. 작가의 말대로 삶은 과거가 된다. 현재가 빛이라면 과거는 어두움을 지닌 그늘과 같다. 하지만 누군가 "그늘 속에 빛의 두레박을 던질 때 과거는 삶을 새롭게 만드는 터전"이 되는 법이다. 이주영이 만들어낸 각양각색의 이미지가 '꿈꾸기(dreaming)'라는 제목으로 보는 이의 감각을 적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빛의 기억, 그리고 꿈꾸기. 이주영이 길어 올린 기억이 우리의 눈을 통해 들어올 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기억이란 어딘가에서 잘그락거리며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을. ■ 윤동희
Vol.20090321f | 이주영展 / LEEJOOYOUNG / 李宙鈴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