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319_목요일_06:00pm
갤러리 정미소 기획초대展
갤러리 정미소 뉴페이스 아티스트 단기 입주 프로그램 전채강 입주기간 / 2009_0106 ▶ 2009_0411
후원 운생동건축사무소_월간객석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서울문화재단 www.a-act.net_(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_(사)스페이스코디네이터
관람시간 / 01:00pm~08: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정미소_GALLERY JUNGMISO 서울 종로구 동숭동 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82.2.743.5378 www.galleryjungmiso.com
잔인한 관람 또 다른 관찰자 ● 전채강의 이번 갤러리 정미소에서의 개인전은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그녀에게 첫 번째 개인전이다. 그녀는 지난 1월부터 갤러리 정미소를 작업실처럼 사용하였다. 거의 매일 갤러리에 나와서 작품들을 그렸고, 그러는 동안 다른 작가들과의 현대미술과 작가,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할 시간도 가졌고, 또한 가끔씩 들르는 관람객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즐거움으로 대하기도 하였다. 나는 단지 그녀가 열정적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본 관찰자에 불과하다. 몇 년 전부터 대안공간인 갤러리 정미소에서 신예작가 발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다소 모험적인 개인전을 몇 차례 기획해오는 동안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약간의 설렘과 약간의 호기심과 그리고 약간의 의구심들을 갖고 그녀의 짧은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때로 전채강과 나는 이메일을 통해서, 짧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고, 지금껏 그녀와 작품들에 대한 질문들은 이어지고 있다. 질문들에는 그녀는 어떤 작가일까. 어떤 미술작가로 성장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기대도 포함된다. 더불어 이 작품들은 또 어떤 관람성을 유발할 것이며,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것인가. 훗날 다시 그녀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 소개한 이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는 또 무슨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등의 수많은 질문들이 내포된다. 그 중 몇몇 그녀와 나눈 대화 속에서, 그녀가 작업을 시작했던 지점을 추적해볼 기회도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회화라는 매체의 특성에 대한 연구들과 더불어, 오늘날 이미지가 소비되는 양상들을 같이 연구해 오고 있는 것일 것이다. 여하튼 그것은 틀림없이 매우 흥미로운 관찰의 기회였다.
위장된 무감각 혹은 잔인함 ● 전채강이 갤러리 정미소에서 열심히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우연찮게도 나는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를 다시 꺼내들고 지난 1월 마감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고전(영국 테이트 갤러리)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여전히 들뢰즈로부터 놀라운 점은 유효하였다. 나는 다시금 베이컨의 형식실험들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이컨의 "자신은 공포를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고함을 그리려 했다"는 말과, 들뢰즈의 "베이컨의 그림에는 (주관화 될 수 있는) 감정feelings이 없다. 오로지 (주관화 될 수 없는) 정서affects, 즉 감각sensation과 본능instincts만이 있다"는 이야기는 공명한다. 글쎄, 그것은, 베이컨의 회화의 소재들이 인간형상을 참혹하게 일그러뜨린 것일지라도, 그의 반복되는 연구 속에서 골몰했던 지점은 인간에 대한 윤리적 잣대를 겨누는 것은 아니었다는 말일까. 무엇보다 지금 우리는 베이컨의 형상들로부터 오늘날의 텅 빈 주체상을 그대로 직시하게 된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베이컨의 그림들이 '잔인하다'라고밖에 지칭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들뢰즈 말대로 베이컨의 그림은 아무런 (주관적) 감정이입이랄까 동일시를 허용치 않는다. 한번은 전채강과의 대화 속에서도, 그러한 잔인함에 대해서 운을 띄워봤다. '구경꾼'들의 무관심함으로 유지되는 오늘날의 풍경이, 바로 전채강이 그린 풍경이라면, 그것은 당연 우리들로부터 그 어떠한 감정적 동일시도 유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베이컨의 인물형상들, 즉 반복되고 있는 왜상들이 오늘날의 텅 빈 주체상을 지목하고 있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보자면 말이다.
물론 전채강의 작품들은 주로 100호가 넘는 큰 화면에 그려진 스펙타클성이 그 특징이다. 게다가 요즘 흔히 인터넷에서나 여러 매체들에서 보는 사건, 사고들의 장면들이 이리저리 조합되어있기 때문에, 그 스펙타클성은 배가된다. 일련의 사건, 사고들의 장면들은 전채강의 매끈한 손놀림에 의해서, 새로운 어떤 풍경을 연출한다. 작품들의 소재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인터넷이나 여러 뉴스 매체, 이미지들, 광고들 등에서 흔히 접하는 현대의 수많은 사건, 사고들의 장면이다. 그것을 작가는 한 화면에서 자르고, 조합하는 식의 페스티쉬(혼성 모방)의 방식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현대인의 향유방식을 반영하는 스크린과 같다. 혼성모방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현대인의 태도를 반영하듯, 작가는 작품에 대해서 일정정도 작가 스스로가 객관적, 제 3자적, 방관자적 위치를 취하고자 한다. 가령 어떤 사건의 피해자의 입장에 동일시하는 연민을 갖는다거나, 가해자를 처단해야하는 윤리적 판단과 같은 것을 유보(혹은 무시)한다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화면 속에 동일시되지 않고, 단지 감각들만이 유희되도록 내버려두는 셈이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오늘날의 스펙타클을 소비하는 메카니즘이다. 거기서 우리는 단지 일종의 구경꾼과도 같은 위치를 점유할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구경꾼의 위치는 현대인이 처한 어떤 무기력한 지점, 불능의 지점, 거세당한 지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구경'은 현대주체의 무기력함이랄까, 거세된 빈 욕망으로 유지되는 메카니즘 자체를 지탱하는 근원이기도 하다. 이는 이미 보드리아르가 지적했던 시뮬라크르 소비사회의 바로 그 정확한 상태이기도 하며, 들뢰즈가 프란시스 베이컨을 빌어서 탁월하게 묘사했던 감각의 층위들만이 부유하는 회화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회화작품들을 어떻게 유희하고 있단 말인가.
제거되는 흔적들, 그리고 안전한 소비 ● 2008년 전채강이 그린 「오늘날의 사건 사고」 연작의 작품들을 보면, 포크레인으로 철거중인 건물, 투하되는 분쟁지역의 낙하산, 자욱한 연기들, 폐허화된 전쟁터와 같은 장면들이 있다. 2009년 정미소에서 새롭게 그린 그림들에서는 자동차사고, 비행기 사고 등의 장면들이 또한 추가된다. 사실상 현실에서 이런 사건, 사고의 장면들은 무궁무진하다. 이들은 실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들이고, 우리가 도저히 구체적으로 무슨 사건인지 조차 구분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된 바로 그 장면들이다. 그리고 전채강의 작품 또한 바로 이렇듯 구분이 애매한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2008년도의 그림에서는 그 조합들은 어긋난 듯, 약간은 초현실적인 듯, 미완성인 듯 보인다. 조합된 이미지의 가공된 풍경이라는 의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업들이다. 그런데 보다 최근의 그림들은 그 조합을 좀처럼 눈치 채기 어렵고, 새로운 하나의 단일한 풍경처럼 보인다. 공통점이라면 이들이 언뜻 보기엔 어색한 조합들이건, 익숙한 하나의 사건 장면이건 간에, 우리는 그 장면들에 전혀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끔찍해 하지도 않고, 낯설어 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 장면들은 항상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이들이 서로 다른 장면으로부터 조합된 것인지, 하나의 풍경인지는 상관이 없을 지도 모른다. 전채강의 「구경꾼들 Lookers-on」 전시에는 이러한 일련의 2008-2009년 사이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조합의 흔적들은 점차로 그림들에서 가려지고, 보다 최근 그림들로부터 우리는 하나의 특정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조합된 것이지만 그 이질성들은 관람에 있어서 더 이상 상관이 없어지고 있다. 현실 자체가 이질성이랄까 낯섦, 놀라움, 새로움 등의 경계가 애매하며, 현대의 주체들은 마치 불능처럼 무감각한 관람을 반복하고 있는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이미지의 윤리적 경계가 무너진 지금, 분명 존재하는 경계들로부터, 스펙타클들로부터 우리의 감정을 지극히 안전하게 지키고, 소비를 유지하고 있다는 자체가 초점이 된다. 따라서 이 전시는 스펙타클에 익숙한 우리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전시인 것이다. 전채강은 이야기한다. 마치 우리가 길을 가면서 보게 되는 여러 낯선 간판들, 풍경들이 사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들이 이질적인지 모르듯이, 자신의 그림도 경계가 없는 듯 보이는 것뿐이라고... 구경꾼들에게 말이다. ■ 이병희
Cruel Spectators ● Chae-Gang Jeon's first solo show is opened immediately after her university graduation. She used the Gallery Jungmiso' exhibition space as her studio from January. She has since worked in this space everyday; she had a chance to talk with other artists about contemporary painting, artists, and aesthetics. Also she met some guests with curiosity about contemporary art. I am also the one of those curious spectators. While talking with her, I could guess her starting point was questions about artistic media and predominant ways of consuming images today. It was also hilarious experience to me. ● While Jeon was working in the gallery, I had a chance to read a book called 『Logique de la sensation』 by Gilles Deleuze (translated in Korean). What surprised me, among others, is the ways in which Deleuze analyzes Francis Bacon's paintings (and art history) without reference to socio-historical changes. He asserts that Bacon's experiments are very cruel in the sense that his images, especially his distorted human figures are exactly the same as those of contemporary subjects who are impotent, castrated, or impassioned. S/he is just like "a refugee from unconcerted affairs," as Tom Waits sings in his 「eggs and sausage」. "There are no feelings in Bacon," Deleuze says, "nothing but affects, that is, "sensation" and "instincts". It means the images do not provide anything for spectators to identify with even though they are distorted with numerous cuts, pastes, and twists. While talking with Jeon, I had a chance to ask her whether this kind of cruelty is found at her paintings. We didn't arrive at any clear conclusion, but I think we will someday share similar ideas just as we agree that the Bacon's distorted figures reflect contemporary empty subjects. ● Her paintings could be a kind of screen reflecting contemporary spectatorship. Pastiche-like images are no longer surprising today. We tend to witness catastrophic events as if they were simply lookers-on. We are helpless, impotent in front of the events. We cannot find any identifiable position with respect to the images of those events. This viewing can therefore be said to be extremely cruel but nonetheless epitomizes contemporary spectatorship. ● Jeon left some traces of pastiches on her paintings in 2008. But we can hardly find those kinds of traces in her paintings in 2009. I think her images are becoming more familiar to us, much closer to those of our ordinary lives. We are all familiar with all these kinds of tragic events today. It means we are reduced to helpless subjects and this mechanism can repeat itself continually through this helplessness, not strangeness. The spectacular images seem to provide us with no shock and strangeness but some pleasure. Is that pleasure real? It is a fake one. Regardless of whether the images are real or not, we know all kinds of social changes and catastrophic images can be simply accepted as pleasurable. Jeon once said, "We can't get any difference between signs on a street. We can't get how they are strange, either. Similarly my recent paintings could also be familiar (to lookers-on)". ■ LEEBYUNGHEE
Vol.20090319b | 전채강展 / JEONCHAEGANG / 全彩江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