線은 숨쉬다

박영주展 / PARKYOUNGJU / 朴榮珠 / photography   2009_0318 ▶ 2009_0324

박영주_칼은 선이다_디지털 C 프린트_123.7×92.8cm_2007

초대일시_2009_031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_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3층 Tel. +82.2.734.1333 www.ganaart.com

線은 숨쉬다_Line is breathing ● 박영주의 시선이 책 옆구리에 꽂혔다. '책'은 하지만 수단에 지나지 않아서, 그가 책에서 추출한 이미지에서 '책'을 보려는 시도는 무모하고 무의미하다. 책갈피 사이로 종종 인쇄된 글자가 보이긴 하나 그건 틀(parergon)에 지나지 않는다. 핵심은 '책'이 아니다. 그 점에서 베일리(V.Bailey)의 '읽을거리(reading materials)'와 초점이 다르다. 박영주는 수많은 낱장들로 구성된 '어떤 것'의 구조적 혹은 물리적 특성에 착안할 따름이다. 바슐라르가 주목하던 '물질적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책 옆구리에 숨겨진, 실은 누구에게나 이미 드러나 있었지만 주목받지 않았던 낱장들의 선/결에서 사물의 낯선 율동을 감지한다. '옆구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에게도 간지럽고 은밀한 부위여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함부로 그곳에 시선을 돌리기에도 껄끄럽다. '측면'은 모든 사태의 필수적인 요소지만 또한 방치된 잉여지대다. 박영주는 사태의 허(虛)를 찌른다. 사태의 허점을 노려 한 방 먹인다(shooting). 그 순간 옆구리는 스스로 고백한다. '나는 책의 부속이지만 책 그 이상이다.' 책 옆구리는 이제 단순히 책장을 넘기는 데 필요한 주변적인 요소가 아니라 독자적인 생명체로 부각된다. 그늘에서 양지로 나온다. 그러면서 옆구리 선들은 예기치 않은 신호를 발신한다. 그들이 호흡하기 시작한다. 춤추기 시작한다.

박영주_리듬의 출처_디지털 C 프린트_92.8×123.7cm_2007

선들의 호흡과 춤을 어떻게 이미지화 할 것인가? 어떤 호흡과 어떤 춤을 클로즈업시킬 것인가? 작가는 먼저 책을 구성하는 '낱장들'의 구조적인 특징에 주목한다. 작업의 방향은 우선 외부에서 힘을 가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하는 대상의 변형여부가 관건이며, 다음으로 외부에서 힘을 가할 경우 어떻게 가할 것인지가 관건이 되면서, 작업은 크게 세 방향으로 나뉘게 된다. 대상을 변형시킬 경우 책의 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변형시킬 것인지 아니면 선 자체를 변형시킬 것인지가 여기서 초점이다. 작품 가운데 「모든 직선은 오류다」와 「검은 선의 무게」 등은 선을 변형시키지 않았으며, 「그대의 머릿결에 잠들다」와 「리듬의 출처」 등은 책의 곧은 선을 유지한 채 외부의 힘을 통해 곡선으로 변형시켰고, 「고목의 비명」과 「펠리컨의 산란」 등은 책을 수차례 물에 적셔 말림으로써 선 자체를 변형시켜 산출한 작품들이다. 다음으로 '책'의 구조적/물질적인 특성이 고려되어 다양한 형태미가 출현한다. 책의 하단이 묶여 있다는 특성이나 책의 재료인 종이가 '습기에 뒤틀림'이라는 속성을 지닌다는 점이 고려되어 '피어나는 출현'의 효과와 '경련하는 율동'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박영주_그대의 머릿결에 잠들다_디지털 C프린트_92.8×123.7cm_2008
박영주_포도주빛 환상_디지털 C 프린트_92.8×123.7cm_2008

선의 이미지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곧바르고, 휘고, 뒤틀린 선들이 자아내는 화음은 때로는 깊고 강하게, 때로는 얕고 부드럽게 표현된다. 누워있는 선도 있지만 대개는 움직이는 선들이다. 작품 가운데 유독 「칼은 線이다」만이 '선 하나', 정확히 말하면 '낱장'을 오브제로 택하고 있다. '선들의 율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소 생뚱맞지만 실은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종이 선의 전형적인 특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종이 날에 손을 베기도 한다. 경계(警戒)의 대상일 수 없는 것에도 날이 숨어 있다. 종이 선의 예리함은 위태롭다. 위태로운 것만이 아름다움을 유발한다. 美는 線에서 나온다. 線들의 관계가 美의 출처이다. 낱장의 종이 선이 함축하는 간결(簡潔)과 예리(銳利)를 출발점으로 이제 다양한 변형들이 생겨난다. 낱장이 겹겹으로 도열하면서 선들의 독자적인 활동공간이 확보된다. 선들은 결이 되어 흔들거리고 결들은 한 올 한 올 살아서 서로 조응한다. 결들이 빚어내는 펼침(depli)과 접힘(pli)의 이중주 속에서 생명의 주름이 잉태된다. 이러한 주름의 최종적인 형태를 작품 「우주라는 책」에서 만난다.

박영주_펠리컨의 산란_디지털 C 프린트_92.8×123.7cm_2008

박영주는 사진 이미지에서 부분적인 섬세한 터치보다는 전체적인 굵은 흐름에 주목한다. 그의 사진이 책이라는 오브제를 모티프로 하여 접안렌즈로 근접 촬영한 결과물이긴 하지만, 이를테면 렝거-파취(A. Renger-Patsch)가 오브제의 전형을 드러내기 위해 섬세한 감각으로 초(超)육안적인 세계를 시각화한 것과 달리, 오브제 자체의 의미와 형태에서 벗어나 그 숨겨진 단면이 발산하는 호흡 또는 율동에서 새로운 추상적 형상을 시각화한다. 더욱이 전체적으로 선들이 곡선화 되면서 펼치는 선율은 붉은 색조 위주의 배경과 어울려 민감하기(sensitive)보다는 감각적(sensual)으로 다가온다. 포도주 빛, 노을 빛, 자수정 빛, 낙엽 빛의 배경색은 환상적인 밀월의 세계를 함축하여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결국 그의 작품들은 '책'이라는 의미체 밖으로 얽히는 '선들의 기호'로서 - 오브제의 의미 밖으로 나간다는 점을 괄호에 묶는다면 - 캘러한(H.Callahan)과 비슷하게 조형주의의 원리에 서정적인 감성을 이입함으로써 새로운 사진적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셈이다.

박영주_우주라는 책_디지털 C 프린트_92.8×123.7cm_2008

하지만 박영주는 사진을 의미전달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그는 단지 표현할 따름이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의도를 갖지 않기 때문에 그의 사진 앞에서 우리는 자유롭고 편안해진다. 읽어주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미지 속에 빠지면 그만이다. 미적인 표현과 감상의 자유가 보장된다. 가벼움을 지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지는 이미지로서만 승부한다. 조형적 이미지는 그 자체가 목적이지 다른 것의 수단일 수 없다. 이미지의 도구화는 반역이다. 그렇다고 신즉물주의 혹은 객관주의에서처럼 사물의 전형적인 측면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려는 시도도 아니다. 그의 관심은 오히려 대상에 대한 일상적인 통념에 반하여 그 감추어진 측면에서 드러나는 이미지의 순수한 조형적 형태미를 향한다. 그 점에서 작품에 형상화된 '선들의 유희'는 데리다(J.Derrida)가 말하는 '직물(texture)'처럼 존재발생론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다양한 결들이 독자적으로 살아 숨 쉬며 서로 호응하는 데에서 생기는 형태구조론적인 현상이다. 그러면서도 박영주는 사태의 냉정한 재현이 아니라 인간적인 온기가 배어 있는 의미를 구현하고자 한다. 이미지의 순수한 형태와 휴머니즘의 결합이다. ■ 유리

박영주_자유의 날개에는 끝이 있다_디지털 C 프린트_92.8×123.7cm_2008

예술로 보는 것은 단순히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에 의해 새로운 시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물을 보고 느낀 바를 자신의 예술의지와 독자적 표현의지로 자유롭고 새로운 시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본인의 작업은 조형적인 원리의 지적이고 즉물적인 추구에 서정적인 감정이입을 꾀한 것이다. 사진에서 예술적인 표현의 구축적인 작업은 단순히 대상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분석을 하고 다시 통합적인 재구성을 해서 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작업이며 이러한 종합적인 의미 해석이 사진에서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종이류나 인쇄물들이 본인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재료의 형식으로 다가와 흥미 있는 미적 인식문제로서 관찰과 시선을 두고, 사물로 본 시각적 접근을 한 것이다. 외형적인 형상을 통해 카메라 렌즈의 광학적인 특성이 묘하게 조화되어 새로운 구성으로 표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물로서의 형태미, 상징의 개념 작품의 조형적 특성을 시각화하려고 하였다. 책에 왜곡을 가함으로써 책의 존재감이 점점 사라지고 새로운 피사체처럼 보이도록 촬영을 하였고, 구체적 이미지가 아닌 추상적 이미지로 대상의 상징적 의미를 더욱 확장시켜 표현하고자 하였다. ■ 박영주

Vol.20090318g | 박영주展 / PARKYOUNGJU / 朴榮珠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