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327_금요일_07:00pm
관람시간 / 09:00am~10:00pm
작은공간 이소 대구시 남구 대명3동 1891-3번지 B1 Tel. +82.10.2232.4674 cafe.naver.com/withiso
불편한 충돌 ● 우리가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할 때는 자신의 삶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강한 동기를 찾으려 할 때이다. 살아오면서 의연 중에 주입당한 수많은 의미를 걷어내고 진짜 의미를 찾기 위해 질문의 고리를 끊임없이 물고 가다보면, 그 끝에선 결국 의미 없음을 발견할 뿐이다. 물론 그것이 삶을 달관한 척하는 낭만적인 허무주의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의미의 형성은 어떤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 속에서 구성원 개개인에게 최면적 양상의 동기를 부여하고, 그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의 부흥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면 너무 과한 상상일까. 의미 없음에서 오는 허무와 좌절은 의미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전에 너무 많은 허구적 의미에 자신을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의미들이 우리 내면과의 '불편한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그녀 대부분의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불편함과 허무함은 말로 할 수 없는, 영원할 수 없는, 이어질 수 없는, 순간적이라는 의미들의 역설적이고 비논리적인 배합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작품 뒤에 숨은 작가자신의 경험, 작품을 구성하는 재료와 형태, 제목, 사진이라는 형식에까지 걸쳐져 있다.
작품 「look honey, I made you a new one」은 작가 자신이 겪었던 관계의 단절에서 출발하고 있다. 작가는 고기를 봉합해서 하나의 심장 형태를 만들고 있는데,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 심장은 과거 연인의 심장이다. 하지만 만들어진 심장은 절대 그의 심장이 될 수 없으며 갈망에 의해 생산된 허구적 산물일 뿐이다. 행위와 산물은 병적인 행위이자 비정상적인 갈망으로 그친다. 이처럼 작품에 나타난 바느질이라는 산물은 관계의 회복, 상처의 치유에 대한 의지로써 나타나지만 이면에 설정된 비논리적이고 역설적인 상황에 의해 무의미하고 무력한 행위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요소들은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데, 「the cruelty of waterfalls」에서는 작은 배의 사라짐으로, 「what you're doing is rash」에서는 귀여운 인형의 불안한 상황설정으로, 「untitled」에서는 치유의 의지를 검은 그림자로, 「Snowed In」에서는 낱말퍼즐 게임을 지루한 경험(캐나다에서는 폭설이 오면 집 안에서 며칠 동안 나오지 못하고 주로 이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작가는 그 시간이 미칠 정도로 견디기 힘든 지루함이라 말한다)으로 상반된 대비를 이루며 나타난다.
봉합에 의해 만들어진 고기심장이 단순히 의미와 상징으로 그치지 않는 것은 "look honey I made you a new one"이라는 대화조의 제목에 의해 누군가의 심리와 행위가 반영된 것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제목에 의해 작품은 비정상적인 절실함이 조성되며 다른 작품에서도 제목은 중요한 요소로써 작용한다.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방식과 재료에서는 품(品)으로써의 모습을 지닐 수 없는, 순간적이고 지속되기 힘든 재료와 형태가 대부분이다. 이는 작품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무의미함을 인식하는 다른 요소로써 작용하며 작가가 사진이라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한다는 게 조금은 불필요한 짓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해서는 안 될 짓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작가의 작품에 대한 설명은 결국 언어가 가지는 단편적 의미의 조합에 끼워 넣는 것이며, 해석이라는 이름아래 이해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작품 「Snowed In」에서 언어의 한계와 견디기 힘든 답답함을 말하듯, 작가의 작품을 대할 때 필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받아들이기다. 그것은 언어가 이해시킬 수 없는 저 너머의 인식체계이거나 체계라고 할 수 없는 혼란스런 과정이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단순히 의미 없음의 결론일까. 그 결론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대할 때 느꼈던 치유의 흔적은 무엇일까. 의미 없음에 대한 우리의 대응방식은 또 다른 허구적 의미를 찾아 자신을 지탱하거나 회피라는 형태로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끝없는 도망침일 뿐이다. 치유의 시작은 스스로의 내면을 멀찌감치 바라보는, 인지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그것이 의미 없음이라 할지라도 그 인지는 모든 것을 다르게 보고 새로운 길에 들어설 수 있는 내면적인 옹알이이자 다른 시작이다. 물론 의미 없음과 허무에 대한 인지는 인간을 보다 우월한 존재로 꾸미기 위한 역설적인 장치가 되기도 하지만... ■ 작은공간 이소
Vol.20090316g | 케이트 햄펠展 / Kate Hampel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