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그리다_I paint me

정철교展 / JEONGCHULKYO / 鄭哲敎 / painting   2009_0317 ▶ 2009_0330

정철교_I paint me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8

초대일시_2009_0317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듬_GALLERY IDM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 1511-12번지 1F Tel. +82.51.743.0059 www.galleryidm.com

눈으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통한 삶의 성찰은 가장 진솔하며 서정적이다. 그 관찰과 표현 끝에 드러난 작가 자신의 얼굴은 우리에게 작가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진정한 예술이 된다. 누군가 예술은 '삶의 비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 "인식한다고 믿는 모든 대상이 의심스러운 것이라 하더라도, 이 대상에 대한 나의 생각은 존재하며, 그 생각을 가지는 나도 존재한다."고 했던 데카르트처럼, 작가도 가장 확실한 앎, 즉 스스로가 존재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통찰하는 것에서 부터 당신을 포함한 세상을 통찰하는 데 까지 이른다. 그리고 작가의 이러한 인간성에 대한 통찰을 통해 바깥을 향해 있기만 했던 우리의 눈과 마음은 살며시 내면을 향한다. ● 이것은 예술과의 소박하지만, 가장 총체적인 동일시이다. 작가의 삶에서, 당신의 삶으로... 당신의 삶에서, 우리의 삶으로... ■ 강금주

정철교_I paint me_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_2007

정철교, 나는 너다. ● 작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리고 자신의 초상만으로 작품전을 연다. 참 어색하고 괜히 겸연쩍다. 그러나 자신의 얼굴 그리기에 자신이 열중할 때, 그것은 과연 자기 초상일 수 있을까. 자기가 아니라면 그 초상은 누구의 어떤 초상일까. 자기 눈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눈 속에 있는 자신은 언제나 자신 밖에 있지 않은가. 자기 밖에 있는 자기의 모습이 과연 자신의 초상일까. 보는 주체는 나이지만 보이는 그 얼굴은 정말 나인가. 자신의 얼굴을 지각할 수 있는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끝없이 변신해 온 자신의 얼굴에서 자신이라 할 수 있는 얼굴은 어떤 것인가. 언제나 자신 밖에 있어야만 보이는 이 잔혹한 사태를 두고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그의 얼굴은 거울을 보고 그리는 현재의 일이 아니다. 언젠가 찍었던 사진 속의 자신을 보고 이제 그림으로 다시 그리는 것이다. 다시가 아니라 이제 그 얼굴을 그리는 것이다.

정철교_I paint me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7

자신을 찍은 카메라를 의식하는 약간 어색한 표정이거나 무관한 듯한 표정, 때로 약간은 과장되었을 표정이나 기분이 느껴진다. 어색하지만 솔직하고 조금은 급조된 표정, 최대한 자신에게 자신이라고 생각한 표정에 충실한 모습이다. 자신을 의식하고 찍힌, 그 의식 앞에서 자신을 다시 본다. 그 차이를 의식하면서 지금 그 얼굴을 그린다. 지금의 얼굴과 시간적으로 다른 모습을, 찍히는 얼굴이 아니라 보는 얼굴로 그리는 것이다. 여러 겹으로 겹쳐지면서 차이를 가지는 정철교의 얼굴은 이런 시선의 층위 때문에 초상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한 물음이 아닐까 한다. ● 포토샵으로 뽀얗게 처리된 듯한, 확대기로 재현한 듯한 극사실적 인물들이 요즘 판을 친다. 유행처럼 사실적 묘사 방법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극사실적 묘사는 그 필연성보다 유희성이 강하다. 그러나 정철교의 작업은 도리어 구태의연한 태도로 대상을 바라보고 묘사한다. 끈적거리는 유채로 신중하게 묘사해가는 얼굴은 자신이기보다 하나의 대상/타자가 된다. 붓질의 행간을 읽게 한다. ● 그러나 막상 작가 자신의 얼굴, 혹은 한 남자의 얼굴을 곱씹어보지만 읽을 게 많지 않다.

정철교_I paint me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09

그저 적당히 나이 먹은 한 남자의 얼굴일 뿐이다. 하얗게 처리된 배경에는 어떤 풍경도, 사건의 정황도 없다. 그저 하얗게 지워버린 배경에 얼굴 하나가 느닷없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그 느닷없음도 반복되면서 익숙해지고 만다. 작가 얼굴만으로 이루어진 전시 자체의 생경함과 어색함은 어느덧 없어지고 느슨해진 일상의 한 순간으로 바뀐다. 스치듯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듯 그저 사람의 얼굴로 나타난다. 같은 얼굴이 반복되면서 한 인간으로서 얼굴이라는 구체성은 어느덧 익명의 얼굴, 개념이 되어버린다. 굳이 그가 이런 얼굴 그리기를 시도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의식 과잉일까. 아니면 자신에 대한 물음으로서 자신의 확인일까. 이제 어디에도 없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언제라도 확인되는 자신, 정체성에의 갈망일까, 아니면 의심일까. ● 남의 얼굴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흔히 알고 있거나 요즘 유행하는 극사실적 묘사는 아니다. 극사실적 묘사는 말 그대로 극사실적 접근에 의해 사실성을 잃고 비현실적 사태로 바뀐다. 현실의 구체성을 평면화 함으로 다른 의미를 표현하려는 것이다.

정철교_I paint me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08

그러나 정철교의 작업은 극사실이기보다 그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보려는 정도의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모습이라지만 여기저기, 여행지나 산책길에서 찍은 사진들에서 뽑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에는 여행지의 정경을 지워버리고 얼굴에 치중해서 묘사하고 있다. 얼굴 뒤에 있었을 정경은 단순히 풍경이기보다 시간이나 사건, 정황을 일러주고 기억을 환기시키고 자신을 자신이게 확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장소란 일상에서의 풍부한 추론의 근거지이다. 그리고 생각을 연결하고, 기억의 근원과 기억의 기술이 유래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역할과 기억을 휘발시켜버린 것이다. 자신의 시간, 자신이 있었던 공간을 지워버린 것이다. 배경이 없는, 특정한 공간과 시간이 배제된 자신의 모습을 따낸 것이다. 묘사를 통한 재현에 뜻이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그의 질문은 절박하다. ● 이번 그의 작업은 사진에 의존한 것이다. 그 사진들은 당연히 시간적 차이가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지난날의 사진을 본다는 것은 지금의 문제이다. 그 지난 시간이 지금이라는 새로운 시간으로 다가온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에 의해 드러나고 의미화 된다.

정철교_I paint me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7

당시의 사건과 풍경, 시간과 정황들은 기억일 뿐이지 없는 것이다. 그 기억조차 현재의 일이다. 과거는 현재에 와서 비로소 의미화 되고 현재의 문제가 된다. 과거는 과거가 아니라 언제나 현재다. 그런 면에서 그의 그림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거나 어떤 것을 환기시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일이다. 그림이라는 오브제로서 현재인 것이다. 그 얼굴은 현재의 자신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그림이 과거의 얼굴로 얼룩지거나, 과거가 현재의 지점에서 얼룩지면서 어정거리고 겹쳐진다. ● 자신을 본다는 것은 자신을 타자화 하는 것이다. 자신인 너를 들이다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신에게 배경이 없다, 하나의 서사일 수 있는 배경을 지운 것이다. 서사가 없는 한 개인의 초상은 무엇일까. 여기에 정철교의 표현과 담론의 독특한 형식이 있다. 기록이나 사건이 아닌 자신에 대한 응시이다. 모든 것을 배제하거나 괄호 속에 묶어버린 얼굴은 자신만을 만나자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다.

정철교_I paint me_캔버스에 유채_162.2×130cm_2008

"시선은 나에게 타자가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현전하는 사실을 설명해주는 개념인 것이다." 타자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면 정절교는 정철교를 바라보는 타자인 셈이다. ● 정철교의 인물화는 자신의 얼굴을 주제로 삼아, 보는 것, 그리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자기에 대한 질문이다. 자기에게 질문하므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비로소 자신을 타자와 구별하는 의미로서 자신을 보게 된다. 그 얼굴은 하나의 물음으로서 시선이다. 그의 시선은 나의 시선이자 우리의 시선이다. 그의 작업은 작가의 얼굴과 내 얼굴이 중첩되면서 과격하고 절박하게 그 질문 앞에 우리를 내몬다.● "당신들도 기억하겠지. 유황, 장작더미, 쇠꼬챙이...아! 다 쓸데없는 얘기야. 쇠꼬챙이 같은 것은 필요 없어. 지옥, 그것은 타인들이야." 사르트르의 말이다. 나는 나에게 타자이고 지옥인가? 정철교의 물음이다. ■ 강선학

Vol.20090316e | 정철교展 / JEONGCHULKYO / 鄭哲敎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