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다: 은평 뉴타운에 관한 어떤 기록

또 다른 현실의 기록 ● "사진이란 결국 대상을 통해 자신을 보는 것이다. 은평 뉴타운을 통해 우리, 우리의 욕망을."-강홍구 스캐너를 이용한 디지털 합성사진을 선보였던 강홍구의 1990년대 작업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그의 입장을 드러내는데 있어 상당히 노골적이었다. "나는 지극히 무의미한 가짜 사진들을 만들고 싶었다. 미술 작품을 둘러싼 제도와 말과 이론들이 너무 짜증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사진들이 무의미하고, 공허하고, 황당무계하기를 바랐다" _강홍구_『드라마 세트/파편/위장, 드라마 세트(전시도록)』_대안공간 풀_2003(발췌) 는 그의 언급대로, 「나는 누구인가」 시리즈(1996)와 「도망자」 시리즈(1997)가 그랬고, 「행복한 우리 집」 시리즈(1997)가 그러했으며, 「전쟁공포」 시리즈(1997-1998) 역시 이러한 의도를 일말의 오해도 없이 풀어냈었다.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풍경이 등장하기 시작한 그의 화면은 좀 더 현실의 모습에 다가선 때문인지, 합성과 연출로 인해 드러나던 작가의 목소리보다는 사진, 더 정확하게는 현실의 풍경 그 자체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로 관람자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동시에,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보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듯한 강홍구의 태도는 그의 초기 작업에 익숙한 관람자에게는 다소 낯선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시 말해, 「그린벨트」 시리즈(1999-2000)와 「오쇠리 풍경」 시리즈(2004) 등 일련의 풍경 시리즈는 작업 방식과 대상의 변화와 더불어 작가의 태도, 작가와 대상의 관계 혹은 거리 두기 등에 있어 변화를 드러내며 다소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듯이 보인다.

강홍구_Hanyang Mansion 한양주택_디지털 프린트_90×220cm_2009

강홍구_White Dogs 흰 개_디지털 프린트_90×220cm_2009

은평 뉴타운 지역을 찍은 작업들 역시 이러한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2001년 새로 이사한 동네를 산보하듯 둘러보면서 시작된 일련의 사진 작업들은 작가의 의지와는 별개로 어떤 우연한 마주침들의 기록으로 발전되었고, 마침내 『사라지다: 은평 뉴타운에 관한 어떤 기록』展이라는 전시의 형태로 마무리되었다. 작가 자신의 일상을 이루는 주변지역을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가볍게 관망하던 그의 작업은 2002년 발표된 '뉴타운 시범사업 선정 계획'으로 인해 새로운 맥락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강홍구는 도시화의 필연적 과정, 혹은 개발 열풍에 대한 다큐멘터리적 기록에 집중하여 현실의 모순에 대한 작가 자신의 입장을 맥락화하기 보다는 오히려 어느 순간 작가 개인의 일상에 개입해버린 폭력적 풍경을 바라보며 사라져가는 것들, 혹은 이제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뒤쫓는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과 향수는 은평 뉴타운 개발 과정을 디지털 카메라로 포착하고 길게 이어 붙여 재구성한 풍경 사진과 개발의 과정을 400여장의 슬라이드 쇼로 돌아보는 「은평 뉴타운 연대기」,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지나간 자리를 사적(私的)인 기억에 의존해 따라가는 「은평 뉴타운 안내도」 위로 펼쳐진다.

강홍구_I Love My House 내 집 사랑_디지털 프린트_100×200cm_2009

작가의 언급을 염두에 둔다면, 이 작업은 뉴타운과 재개발을 둘러싼 상황을 포착하고는 있지만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맥락을 비껴가고 있다. 즉, 은평 뉴타운 주변의 맥락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다큐멘터리를 구성하기 보다는 사소하고 구체적인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거 시 가장 먼저 사라지게 되는 화단의 꽃, 그리고 나무와 유기견은 제일 마지막까지 잔존하고 재개발과 더불어 가장 먼저 자리잡는 전신주나 길과 대비되며 작가의 시선을 잡아둔다. 하찮은 것으로 취급 당하며 뿌리 뽑힌 이 모든 대상들은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그들이 존재했었음을 증언하는 풍경 위로 어딘지 모르게 주저하는 듯한 작가의 감정을 실어낸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의 속도에서 한번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유사하게 재개발 지역을 대상으로 했던 「오쇠리 풍경」 시리즈의 경우,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다소 급박한 호흡을 자아내는데, 이것은 순식간에 폭력적으로 일상에 개입해버리는 철거와 재개발의 속성이 숨가쁜 흐름 속에서 증폭되어 화면 위에 현실화된 때문이다. 그러나 은평 뉴타운의 풍경은 이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으로 보이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을 걷는 속도로 잡아낸 다소 긴 호흡의 이 풍경 사진들에서는 결코 객관화될 수 없는 작가의 심리상태가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폐허가 된 풍경 앞에 벌거벗은 현실을 두고 가까이 다가서지도, 외면하지도 못하는 작가는 그 압도적인 현실을 그저 '풍경'으로 바라보기로 마음먹는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작업의 대상을 직시하기 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혹은 비껴 서서 곁눈질하듯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러한 작업을 결국 과거 속의 현실일 뿐이며, 과거이면서 동시에 실재인 어떤 것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이며, '기록 아닌 기록'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강홍구_Nonsangip 논산집_디지털 프린트_100×200cm_2009

그러나 강홍구가 사진의 표면으로 끄집어낸 기억과 향수의 밑바닥에는 그가 바라봤던 그 대상들 하나하나를 목격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인식한 자만이 감지할 수 있는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고민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낙담한 듯, 포기한 듯 느껴지는 그 미묘한 감정의 상태가, 그 어떤 연출보다도 강력하게 상황을 맥락화하는 현실 앞에서 무력해지는 작가의 어찌할 수 없음이 현실의 모습을 오히려 더 예리하게 드러낸 까닭이다. 결국, 그의 작업은 재개발을 둘러싼 첨예한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 즉 무엇이 사라지는지, 무엇이 이러한 것들을 사라지게 만드는지, 결국에 누가 이것을 보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여전히 남겨준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한 듯 보이는 강홍구의 태도와 작업 앞에서도 여전히 힘겨운 현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 김윤경

강홍구_Lookout Shed 원두막_디지털 프린트_100×200cm_2009

강홍구_Demolition 철거_디지털 프린트_100×200cm_2009

A Record of another Reality ● "In photography, we look at ourselves through objects. We see us, our worldly desire with Eunpyeong New Town." _From the Artist Note / Hong-goo Kang's works with digital composite photos using a scanner in the 1990s were fairly explicit in exposing his stance in any context. He said, "I wanted to make extremely meaningless fake photos, because I was so sick and tired of institutions, words and theories surrounding artworks. So, I intended my photo works to be meaningless, empty and preposterous."_ Hong-goo Kang, "Drama Set/Fragment/Disguise," Drama Set [catalogue], Alternative Space Pool, 2003. ● Like he said, his 「Home Sweet Home」 series (1997) and 「Warphobia」 series (1997-1998) as well as 「Who Am I」 series (1996) were very much so, and 「Fugitive」 series (1997) undoubtedly unraveled such an intent of his. However, his picture plane started to show a landscape taken with digital camera, which, maybe because it has taken a step closer to the reality, brings in the attention to the voice coming from the landscape of the reality itself in an accurate sense, instead of his own voice which used to be exposed through composition and plot. At the same time, he took a step back in observing the reality, which seems rather unfamiliar to the observers familiar with his earlier works. In other words, a series of landscape works including 「Greenbelt」 series (1999-2000) and 「Scene of Ohsoi-ri」 series (2004) seem to unfold a story in a somewhat different angle by exposing the changes in his work style and objects, artist attitudes, the artist-object relations, or spacing himself from objects. ● His photos of Eunpyeong New Town share the similar context. His series of photo works were casually shot while looking around the neighborhood he moved to in 2001. They developed as records of happenstances, regardless of his own will, and ended up as an exhibition titled 「Vanish Away: A Record of Eunpyeong New Town』. Then, as the government announced its master plan titled "Eunpyeong New Town Project" in 2002, his works confronted a new context. However, he refused to contextualize his stance on paradoxical reality, staying away from a documentary-type record on inevitable process of urbanization or development frenzy. Rather, upon viewing the violent landscape that happened to intervene in his own daily life, he chose to trace back on the memories and nostalgia on what is passing by, or what is gone now. And such memories and nostalgia capture the redevelopment process of Eunpyeong New Town with digital camera. They unravel themselves in two works: a series of the landscape photos by re-configuring the scenes of the redevelopment process attached on a long horizontal level; and 「Chronology on Eunpyeong New Town」 that looks back on the development process in a 400-page slide show. The memories and nostalgia also expose themselves in 「Guide of Eunpyeong New Town」 that traces back on the spots he passed while photo-taking according to his personal memories. ● Given the artist's comment, this work has captured the circumstances surrounding the new town and its redevelopment process, but stays away from an ordinary documentary-style context. That is, instead of forming an objective documentary based on the context surrounding Eunpyeong New Town, the focus is on trivial and specific circumstances. Flowers on a flower bed, trees and abandoned dogs―the ones that go up in smoke or vanish away before everything else―catch the artist's attention in comparison with light poles and roads that remain till the end of the demolition and first come into the redevelopment scene. All these objects regarded trivial and so eradicated trigger the nostalgia for what is gone now. On the landscape that resonates their having existed there once, the artist's sentiments with some elusive reluctance are seen. Such attitudes are, once more, clearer in the pace of his views towards the landscape. As for 「Scene of Ohsoi-ri」 similarly targeting a redevelopment district, the artist's view towards the object brings about rather tight breaths. This is because the attributes of demolition and redevelopment that instantly and violently intervene in daily life become the reality on the picture plane as they intensify in a rapid flow. However, the landscape of Eunpyeong New Town is in stark contrast from this: in these landscape photos with somewhat long breaths that have been captured at a walking pace in his neighborhood, his psychological status that cannot be shown objective are implicitly exposed. The artist cannot either come close to or disregard a stark reality amid the landscape of wasteland, so decides to view the overwhelming reality as a mere "landscape." As a result, he seems to look at the object from a step back, or from the corner of his eyes. So, he calls the work of his, a reality in the middle of the past, his personal memories on something that is of the past and the present alike, and also "seemingly unintentional record." ● Underneath the memories and nostalgia he brought onto the photo surface remain inevitable concerns and worries that can be felt only by those who witnessed each object, and sensed by those who perceived them. The reality is made even more stark and acute because of the artist's subtle mindset―seemingly depressed and despaired―and sense of futility before the reality that contextualizes a given circumstance to a greater extent than any other plots. At the end of the day, his works did not unequivocally deal with contentious issues on redevelopment. However, they still leave some fundamental questions to mull over: what goes up in smoke; what makes them to vanish like that; and who comes to see them at the end. As such, we inevitably think of a still challenging reality even before Hong-goo Kang's attitudes and works that seem to have changed. ■ KIMYUNKYOUNG

Vol.20090313e | 강홍구展 / KANGHONGGOO / 姜洪求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