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평방미터의 집

안규철展 / AHNKYUCHUL / 安奎哲 / installation   2009_0311 ▶ 2009_0426

안규철_2.6평방미터의 집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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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311_수요일_05:00pm

공간화랑 재개관 프로젝트 - 담론의 구축 03

관람시간 / 10:00am~07:00pm

공간화랑_gallery SPACE 서울 종로구 원서 219 공간사옥 지하 Tel. +82.2.3670.3500 www.space-culture.com

후퇴의 역설을 말하다 ● 안규철은 일상적인 소재로서의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제기해 온 작가이다. 그는 미술과 비미술의 구분에 대한 특별한 관점을 가지고 소위 '고급예술'로서의 미술이 대중적 감수성의 영역에 닿을 수 있는 시도를 꾸준히 이어왔다. 개념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그의 많은 작품들은 그로 하여금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중견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하였다. 절제된 형식과 기발한 내용이 묘하게 혼합되는 안규철의 작품에는 몇 가지 특징이 일관되게 보여진다. 현실 비판적인 요소와 문학적 감수성, 자기 고백적인 명상성, 미니멀하면서도 형식미를 놓치지 않는 세련된 표현 등이 그것이다. ● 1980년대 초반, '현실과 발언'의 멤버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 젊은 안규철에게 현실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창작의욕을 고취하는 동인이었다. 그는 월간 '공간'과 '계간 미술' 등의 기자 생활을 하면서 당시 한국의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를 생생하게 목도하였고, 이후에도 사회적 이슈들이 격발(激發)하던 시절의 현대 미술의 현장에 있었다. 이러한 이력은 그로 하여금 사회 참여적 성향을 갖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표현 수단으로서의 글쓰기의 감수성을 자신의 작품으로 적극 활용하게 하는 주요한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안규철_2.6평방미터의 집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_부분
안규철_2.6평방미터의 집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_부분

안규철의 사회 비판적 성향은 주로 자기 고백과 반성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통해 나타났다. 이는 그가 다른 작가들과 차별되는 그만의 감성적 아우라를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했다. 안규철 작품의 정체성은 성격과 취향, 삶의 태도 등 안규철이라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재현된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미지 자체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절제하는 그의 태도는 자기 고백과 반성이 일종의 포장의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지점을 염려하는 그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작가노트들과 많은 드로잉 작품들이 그러한 면모들을 방증(傍證)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취하고 있는 형식적인 특징들이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건조한 느낌마저 들 만큼 장식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시각적 쾌를 놓치지 않는 특별한 형식미가 그것이다. ● 안규철의 작품들이 오롯이 작가로서의 존재를 투영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그는 확실히 모더니스트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작가의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스스로 모더니즘의 자기 혁신적 면모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삼십 여 년의 작품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자신의 판단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눈 앞에 펼쳐지는 다양한 현실들을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다는 고민이 있는 한, 행위의 후미가 자기 고백과 반성으로 귀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안규철_2.6평방미터의 집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_부분
안규철_2.6평방미터의 집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_부분

"모호한 선문답이 아닌 정교한 언어로 작업을 규정하려 했고, 그러면서도 논리의 사다리를 버리고 허공 속으로 날아오르기를 꿈꾸었다."(안규철, 2004) ● 결국 안규철은 모순과 부조리로 점철된 사회적 현실 앞에서 견고한 저자(著者)로서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는 모더니스트적인 면모와 함께, 영역간의 구분을 고수하지 않으며 단선적 선후관계를 초월하여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자아를 가진 포스트 모더니스트적인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다소 복합적인 개념의 층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안규철의 이러한 다중성은 이론과 합리성의 차원을 넘어 나약한 자아를 번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작가와 관자가 공유하는, 숨겨진 자아의 투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을 대하는 데에 있어 개념과 이론에 기반한 분석을 하기 보다는,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시각으로 작가의 정체성을 솔직하게 대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 2004년 로댕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이후 교육자와 도시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안규철이 5년 만에 갖는 개인전의 제목은 『2.6 평방미터의 집』이다. 그는 작품에는 그 작품이 존재하는 장소와의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로댕갤러리에서 전시한 「49개의 문이 있는 방」 역시 전시장 입구에 성엄(聖嚴)하게 자리잡은 로댕의 지옥문에 대한 조응의 성격이 있는 작품이었는데, 미술관 내부의 화이트 월이 갖는 권위에서 탈피하여 미술관이라는 제도를 하나의 장소로 간주함으로써 복합적인 장소 특정적 창작을 시도했던 것이다. ● 공간 화랑에서의 전시가 결정된 안규철의 생각은 도시와 건축물을 설계하는 전문가 집단이 위치한 공간 사옥 안에서 가장 아마추어적인 집을 설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는 작품과 장소가 상호작용하는 접점의 차원인 동시에 전보다 더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기로 한 작가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단 최근 용산 재개발 현장에서의 참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집이라는 소재는 여전히 거대 도시에 조밀하게 모여 사는 군중들의 폐부를 자극하는 가장 직접적인 삶의 이슈였고, 사회 전반에 난무하던 온갖 환상과 탐욕의 상징체이기 때문이다.

안규철_2.6평방미터의 집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_부분

집을 설계하는 데에 있어서 그는 가장 산업화된 방식으로 만들어지며 즉시 사용이 가능한 1인용 집, 디자인적으로 최소한의 기능성을 유지하는 공간, 소박한 명상과 은둔, 자신만의 몽상 등이 가능한 공간 등의 원칙을 세웠다. 이 원칙은 그 동안 자신의 작품이 주로 견지해온 '개념적 제안'의 입장에서 더 나아가,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어떤 행위를 시도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준다. 그가 생각하는 집은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수면과 식사 등의 본능적 욕구를 충족함과 동시에 내면의 명상과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개인의 몽상 등의 기능을 구현하는 곳이다. 기실 집을 둘러싸고 엄청난 자본이 움직이며, 세계 각지의 문화들이 어색하게 버무려진 초고층 유토피아를 끊임없이 건설하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풍찬노숙을 하는 인생의 패자들에게 이러한 가치를 배려한다는 것은 사치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집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한뎃잠을 면하고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장비를 배려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는 한국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일이다. 들고 다닐 수 있는 침낭은 물론, 접을 수 있는 서재에 만화책을 꽂아 놓고 공원에서 숙식하는 일본의 노숙자들을 보라. 잠들 집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생사의 극점을 맛보아야 하는 잔인한 곳은 지구상에 그리 많지 않다. 안규철의 작업은 도덕심의 고취가 아니라 상식의 환기에 가까운 것이다. ● 안규철은 이번 전시에서 실제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집 세 채와 다양한 프로토타입 및 십 여점의 드로잉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집은 산업 현장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저렴한 재료와 단순한 방법으로 구현된다. 목재 합판으로 된 박스 형태의 집 내부에는 침대와 책상 등 기본적인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고 정면은 개방되며 천창을 통해 햇빛을 받아 들일 수 있게 되어 있다. 실제 거주 가능한 이 집은 문을 모두 닫을 경우 하나의 박스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야외 공간에 놓여 있는 원뿔형의 집은 더 적극적으로 면적을 줄였으며, 그 자체로 어디든 이동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조금 확장된 의복 정도쯤 되는 원형의 집은 그야말로 개인이 걸치고 다닐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집이다.

안규철_2.6평방미터의 집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_부분

안규철의 집은 1인용 집이라는 것이 심지어 부유한 사람들이 철저하게 독립을 보장받기 위해 여분으로 소유하는 사적 공간으로 디자인 되어 판매되기도 하는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의 집은 모든 개인이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의 사적 세계를 지켜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후퇴할 수 있는 한계점'을 모색한 것으로, 최소의 면적으로 한 인간의 다양한 감각이 충족되는 공간이다. ● 안규철은 이번 전시에서 집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선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가 자신의 발언을 전보다 실천적인 방향으로 이동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수십년간의 절제된 표현이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형식의 영역에 국한되고, 그가 원하는 만큼의 사회적 실효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고백하는 자괴감은 자신의 작업이 갖는 현실적 무게 중심에 대한 것이지만, 동시에 철학과 개념은 무용하기 짝이 없는 것이고 현란하고 말초적인 시각적 자극만이 난무하는 근자의 현대미술에 대한 자성이기도 하다. 굽이치는 곡선의 느림과 가치를 외면하고 직선과 평면의 효용성을 중시하는 사회. 오랜 시간 자연이 형성한 언덕과 골짜기를 파헤치고 시멘트 길과 인공 호수를 조성해놓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회. 지상에는 더 낼 길이 없어 풍광명미(風光明媚)를 파괴하면서까지 육중한 구조물을 공중으로 올려 놓아 도로를 내는 것에 전체 문화예술 지원에 들어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돈을 쓰는 사회. 안규철이 이번 전시를 통하여 발언을 제기하는 대상은 바로 왜곡된 미학으로 점철된 오늘날 우리 사회이자, 동시에 그 사회의 내부에 무력하게 존재하는, 그 자신이 속해 있기도 한 한국의 현대미술인 것이다. ■ 고원석

나는 이 작업이 모든 개인에게 던져지는 보편적인 질문이 되기를 바란다. 단정하게 정돈된 소박한 책상 하나, 바람이 불고 해가 지고 별이 뜨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수 있는 창문 하나, 몸을 눕힐 수 있는 침대 하나면 충분한 최소화된 삶을 공간을 통해 구현하는데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 은둔자, 기도하는 사람, 참선 수행하는 사람,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게 이 작은 방들을 제안한다. 꿈꾸는 방, 시공간을 넘어 여행하는 방, 현실로부터 가상으로 넘어가기 위한 비상대피소. 그것은 요람이면서 무덤이기도 하다. ■ 안규철

Vol.20090309e | 안규철展 / AHNKYUCHUL / 安奎哲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