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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훈展 / KWONDAEHUN / 權大訓 / sculpture.installation   2009_0303 ▶ 2009_0404 / 일~화요일 휴관

권대훈_still in the forest I_혼합재료_124×234×23cm_2009

초대일시_2009_0303_화요일_06:00pm

후원_KTF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화요일 휴관

라흐마니노프스 갤러리 Rachmaninoff's Gallery Unit 106, 301 Kingsland Road, London, E8 4DS, UK Tel. +44.20.7275.0757 www.rachmaninoffs.com

촘촘히 금속 조각을 박은 나무판 위에 빛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를 만드는 권대훈 작업의 새 주제는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의 흥미를 끌게 된 것은 그들의 유독 무표정하며 정지된 동작이 주변의 걷고 있는 활발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과 대조되어 독특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서 관찰하는 동안 무표정하고 정지되어 있고 비생산적인 듯한 인간의 태도를 다채롭고 흥미 있는 순간들로 묘사하고자 하는 충동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권대훈_still in the forest I_혼합재료_124×234×23cm_2009

기다리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빛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들의 외모의 무표정한 모습과 달리 그들의 정신은 매우 복잡하며 활발하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시간 동안 다가올 사건을 상상해 보고 만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갖거나 기대에 부풀거나, 혹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곱씹어 보기도 하고, 사무엘 베켓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의 기다림 속에 끝없는 대화를 창조해 내기도 한다. 표면적으로는 육체의 휴식 같은 기다림이 실은 복잡한 정신적 내면 세계를 품고 있는 활시위 같은 긴장된 상태라는 것을 작가는 빛의 움직임으로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권대훈_still in the forest II_혼합재료_124×234×23cm_2009
권대훈_still in the forest II_혼합재료_124×234×23cm_2009

빛과 함께 기다리는 모습을 표현해 보고자 했던 또 다른 이유는 그 정지된 행동이 일시적인 중지이며 곧 일어날 활발한 활동을 빛으로 암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잠깐 동안의 중지, 혹은 천천히 흐르는 시간처럼 다음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삶의 잠시 동안, 일시적인 중지는 해롭지 않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삶은 계속해서 웃음의 연속이 아니며 혹은 어느 누구도 슬픔만으로 삶이 내내 채워지지 않듯이 웃음은 중지되고 눈물도 곧 다른 사건을 위해 중지될 것이다. 작가에게 기다림은 일시적인 중지이며 또한 그 중지 속에서 서서히 변화해 가는 시간이다. 그의 작업 속에서 정지된 듯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서히 빛 속에 변화해 가며 그것은 관객이 즐기는 대상이 된다.

권대훈_untitled_드로잉_a4사이즈×35_2009

그의 작업은 빛의 강약, 속도의 변화 속에 마치 마술처럼 관객의 감수성으로 스며든다. 빛이라는 매체는 실체를 감추면서 마술과 같이 어떤 사람, 혹은 순간을 아름답게 기억하게 한다. 그래서 빛은 어떤 기억의 가장 강한 메타포가 될 수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변화를 주는 빛을 통해 관객에게 기억됨으로서 그들은 더 이상 지루하거나 아무 가치가 없어 보이는 정지 상태의 사람들이 아니고 기다림 자체가 어떤 인연을 낳을 과정 자체로 혹은 어떤 결과에도 상관없이 그 자체가 중요한 목적으로서 의미 있게 보여지고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빛은 어떤 진실,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은 절박한 진실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무표정하고 정지된 태도가 어떤 진실, 가혹한 진실을 맞닥뜨려야 하던 순간처럼 우리들은 연극의 극적인 클라이막스를 기억하게 될 수도 있다.

권대훈_희노애락_드로잉_각 43×35cm_2009

한편 작가로서 관객의 기다림에 대한 요구와, 바쁜 관객의 시간은 서로 충돌한다. 대상에 대한 그의 관심은 어떤 서서히 변화해 가는 것들, 오래된 성당의 돌계단의 마모된 부분, 조금씩 자라는 나무, 세월에 변화되어가는 사람들의 얼굴, 시계의 시침과 같은 것들이다. 어떤 것을 끊임없이 오랜 시간 기다리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한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경우를 알고 있다. 전쟁을 할 수도 있고 농구 경기를 할 수도 있고 바다를 가로지를 수도 있는데, 느리게 변화하는 것에 시간을 들이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더군다나 오랜시간을 들여 예술 작품 하나를 감상하기를 요구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발할 것인가. 그렇지만 길에서 할일 없는 듯이 무언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그의 작품을 보고 또 무언가를 그 기다림 속에서 발견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과 관객의 현실적인 기다림의 한계는 그의 작품 속에서 빛의 움직이는 속도 속에 교차된다. 현재 그의 작품은 다행히 일년에 걸쳐 변하지는 않고 1분 혹은 몇십초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변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몇십초, 일분을 그의 작품 앞에서 기다려 주기를 요구된다.

권대훈_another forest_60×100×20cm_2008

작가 권대훈의 기다림은 작업의 시작단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고, 작업에 임하는 태도이고, 관객에게 작가의 작업을 보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이다. 서서히 변해가는 관심이라고 하면 한 인간처럼 좋은 재료가 없을 것이다. 서서히 세월 속에 육체와 정신이 변화되어 가지만, 우리는 아무도 그 목적을 알지 못한다. 왜 우리가 늙어가는지 왜 한정된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기다린다는 것에 조바심이 나게 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다. 때문에 한정된 시간 속에 어떤 변화를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어떤 구도자와 같은 성질을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구도자처럼 작품을 기다리고,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참을성 있게 만날 사람들을 기다려야 한다. 그 끝에 무엇을 만날 것인가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의 일생 자체가 궁극적인 기다림으로 조건과 목적이 지워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종교적인 생각일까. ■ 유은복

Vol.20090308f | 권대훈展 / KWONDAEHUN / 權大訓 / sculpture.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