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river flows through the people

표세권展 / PYOSEGWON / 表世權 / photography   2009_0311 ▶ 2009_0317

표세권_남여고등학생_잉크젯 프린트_50×50cm×2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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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31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p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_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3층 Tel. +82.2.734.1333 gana.insaartcenter.com

흘러도 흐르지 않는 강이 있다. 다양한 삶을 고이 담고 있는 한강이다. 한강은 일상 공간으로서 서로 다른 표정이 마주치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한강으로 온다. 때로는 낡은 지갑처럼 익숙해 보이고 때로는 처음 접하는 외국어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포개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어느덧 서로가 서로의 일상이 된 지금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 표세권

표세권_운동하는 여자_잉크젯 프린트_50×50cm×2_2009

서울의 한강 또는 삶 속의 한강 ● 표세권의 사진들은 한강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강을 주제화 하는 그의 사진 형식은 특별하다. 그의 사진들 안에서 한강은 두개의 오브제로 짝 지워져 재현된다. 우선 풍경과 인물이 짝 지워져 있고 인물들 또한 혼자가 아니라 쌍으로 복수화 되어 있다. 외적으로는 풍경사진과 인물사진의 장르가 중복되고 내적으로는 피사체 구성이 복수적이라는 점에서 표세권의 한강 사진들은 말하자면 짝 사진들(pair photos)이다. 물론 표세권의 짝 사진 형식은 사진적 의도와 표현 사이의 기술적 제한성을 벗어나려는 작가의 방법론적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풍경과 인물을 다 같이 한강의 테마로 삼고자 할 때, 그러나 피사체와의 거리 때문에 두 피사체의 동시적 주제화가 불가능할 때,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주제의 재현 방식은 동일한 이미지의 프레임 공간 안에서 개개의 피사체를 상호 교체적으로 테마화 하는 짝 구성 방식뿐일 것이다. 하지만 표세권의 짝 사진 구성을 다만 시각적인 표현 형식으로만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조금만 오래 들여다보면, 표세권의 짝 사진 형식은 그의 사진들이 보는 이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사진적 메시지와 더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표세권의 사진들은 어떤 특별한 짝 구성의 형식을 지니며 또 그 형식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일까?

표세권_회사원_잉크젯 프린트_50×50cm×2_2009
표세권_노부부_잉크젯 프린트_50×50cm×2_2009

내가 보기에 표세권의 짝 사진들은 세 가지 층위에서 그 형식적 특성과 메시지가 읽힌다. 우선 '풍경'의 층위가 있다. 표세권의 사진 안에서 한강은 두 개의 풍경으로 이원화 된다. 하나는 자연 풍경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 풍경이다. 예컨데 두 청년 악사들의 등 너머로 보이는 억새풀과 유모차와 함께 산책 나온 젊은 어머니가 서 있는 휜 눈밭의 풍경은 여전히 자연성을 간직한 한강의 얼굴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물들의 등 뒤로 보이는 아파트들과 스카이라인을 어지럽게 만드는 마천루들의 군집 이미지는 한강이 더는 자연이 아니라 대도시의 한 부분일 뿐임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한강은 말하자면 표세권의 사진 공간 안에서 화해할 수 없는 두 이질적 풍경들로 이원화되어 있고 그러한 풍경 이미지의 불연속성은 프레임 공간을 동질적 화해의 공간이 아니라 대립적 성격의 두 이미지가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갈등 공간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하지만 보다 주목해야 하는 건 풍경 이미지들의 표층적 대립성이 아니라 그 대립성이 보는 이에게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시각적 효과, 더 정확히 풍경의 이원 대립성이 시각적으로 야기하는 상호 충돌 효과이다. 예를 들어 두 여학생이 여름 워킹을 즐기는 햇빛 좋은 산책로와 두 그루의 푸른 나무는 등 뒤의 콘크리트 다리와 그 다리 건너 고층 건물들의 풍경으로 인해 그 자연성이 더더욱 부각된다. 마찬가지로 두 여고생을 더 없이 왜소하게 만드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은 그 아래 무성한 잡풀들의 진한 초록빛 때문에 그 건조한 물질감과 잿빛이 더더욱 강조되어 나타난다. 표세권이 보여주는 한강의 풍경은 이원 대립적이지만 그 이원적 대립성은 두 풍경의 대립성을 고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특성을 강조하고 부각 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표세권_아기와 엄마_잉크젯 프린트_50×50cm×2_2009

다음으로 '인물'의 층위가 있다. 표세권의 사진 안에서 한강의 풍경이 이원 대립적 성격을 지닌다면 한강을 테마화 하는 또 하나의 오브제인 인물들 역시 이원 대립적으로 구성된다. 표세권이 의도적으로 구성하고자 하는 인물들의 이원 대립성은 무엇보다 인물들을 단수가 아니라 쌍으로 촬영하여 프레임 안에 병렬 시키는 복수적 배치성에서 확인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인물의 복수적 병렬 구성이 인물들을 나이와 직업들에 따라 다양화함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높이고자 하는 의도의 소산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인물들의 복수 구성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인물들을 그들이 저마다 소속되어 있는 사회적 패러다임에 따라 분류하고 규범화 하고자 하는 표세권의 유형학적 시선이다. 유형학적 인물 사진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물을 그들이 속해 있는 역사적 동질성과 문화적 규범성 안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사진이며 그러한 사진적 의도 때문에 개개의 인물들을 고유한 퍼스낼러티를 지닌 개인이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내용을 지시하는 기호로 독해하기를 요청한다. 표세권의 복수적 인물 사진들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유형학적 시선으로 포착된 여고생들의 복수 사진 안에서 그 인물들이 입고 있는 교복과 헤어스타일을 기호 삼아 이 시대 교육의 제도적 속성들을 읽어 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관능적인 유니폼을 입고 버디라인을 만들고 있는 성숙한 여인의 자세와 표정을 통해서 이 시대 여성적 아름다움의 규범성과 신체적 욕망의 기호를 발견할 수 있으며, 함께 아침 산책을 나온 듯 보이는 노부부의 포즈와 표정을 통해 이 시대 중산층 노년들의 규범적인 부부애와 생활이 어떤 전형성을 지니는 것인지를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표세권의 유형학적 시선의 사진적 효과가 응시되는 인물들의 역사 문화적 유형성을 확인 시키는데서 끝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더 주목해야하는 건 그러한 유형학적 시선이 보는 이에게 모르는 사이에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효과이다. 작가의 주관성을 가능한 배제하면서 정면성으로 촬영하여 객관화 시킨 표세권의 인물들은 다름 아닌 그러한 객관적 유형성 때문에 유형학적 사진이 생략하고자 하는 인물의 개인성, 즉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물 개개인의 고유성과 내면성에 호기심과 관심을 보는 이에게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철저하게 객관화 된 모습으로 프레임 공간 한 가운데에서 묵묵히 그러나 집요하게 보는 이를 응시하는 인물들 앞에서 그 누가 이 사람은 누구일까? 라는 질문을 피할 수 있겠는가. 인물들을 응시하고 포착하는 표세권의 시선은 유형학적이지만 그러나 그 유형학적 시선은 동시에 비유형학적 사진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또한 역설적이다.

표세권_뮤지션_잉크젯 프린트_50×50cm×2_2009
표세권_트래킹_잉크젯 프린트_50×50cm×2_2009

마지막으로 '삶'의 층위가 있다. 표세권의 사진 안에서 풍경과 인물의 층위가 이원 대립적 성격을 지닌다면 삶의 층위는 그러한 불화성이 해소되는 층위이다. 표세권의 프레임 공간을 불화의 공간에서 화해의 공간으로 바꾸어 경험케 하는 삶의 층위는 무엇보다 대립적 성격을 지니는 풍경과 인물이 그 단절성을 극복하고 동시적으로 응시되면서 발견 된다. 풍경과 인물이 연속성과 동질성을 회복하면서 프레임 공간이 화해의 공간으로 바뀔 때 보는 이가 새삼 발견하게 되는 건 일상 공간으로서의 한강, 즉 우리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는 삶의 현장으로서의 한강이다. 하지만 삶의 공간으로 전환된 표세권의 사진 공간 안에서 만나는 한강이 다만 지리적 장소로의 한강, 즉 서울의 한강만은 아니다. 그 한강은 저마다의 일상 속에서 기억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너와 나의 삶 속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무의식적 소망의 한강, 더 정확히 소통이라는 이름의 한강이다. 예컨대 한강이 삶의 공간으로 응시될 때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되는 한강의 푸른 물결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긴 가교는 더 이상 자연성과 도시성의 이질적 기호가 아니라 다 같이 흐름과 소통을 지시하는 동일한 기표가 아닌가. 모든 경계들을 지우는 한강의 중단 없는 흐름과 모든 거리와 사이들을 잇기 위해 강 위에 길게 누운 콘크리트 가교는 대도시적 삶이 강요하는 불화와 불통을 거부하면서 너와 내가 서로 만나고자 하는 그 어떤 소통에의 욕망을 암묵적으로 지시하고 있지 않은가. 표세권의 사진이 보여주는 한강은 서울의 한강이지만 그 안에서 흐르고 있는 건 우리들 마음 속의 한강이다. 그리고 표세권의 한강 사진 앞에서 우리가 잠시 걸음을 멈춘다면 그 또한 너와 나의 마음 속을 흐르는 한강의 물소리에 귀를 기우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 김진영

Vol.20090308b | 표세권展 / PYOSEGWON / 表世權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