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307_토요일_06:00pm
참여작가 곽훈_김구림_김태호_서승원_안정숙_이강소_정보원_하종현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박영_GALLERY PAKYOUNG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526-6번지 파주출판단지 내 Tel. +82.31.955.4071 www.gallerypakyoung.com
곽훈과 김구림, 서승원, 하종현, 이강소, 김태호, 정보원, 안정숙 등은 한국의 현대미술을 각자 개성적으로 대표해온 원로, 중진 작가들이다. 이번 기획전은 이들 8인의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한자리에 모아 보여줌으로써 다양한 우리 현대미술의 한 면모를 확인 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곽훈은 오래 전에 미국으로 가서 활동하면서 명성을 얻은 화가다. 그는 항상 동양사상에 뿌리를 두고 세계인들에게 동방의 관조적 깊이가 어린 회화를 보여줌으로써 깊은 공감과 찬사를 받은 작가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삶의 체험으로부터 다가온 우주적 감흥을 무의식적 충동으로 그려나간 작품들인데, 고도의 지적 은유와 근원적 생명의 에너지가 혼연일체를 이루어 숨 쉬고 있다. 곽훈의 그림에 그려진 수많은 선과 색의 흔적들은 그의 숨결과 심장의 고동소리를 반영하는 생명의 흔적들이다. 그것들은 화면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유롭게 새로운 형상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뿜어내면서 감상자를 끝없는 상상의 우주로 인도한다.
김구림처럼 우리화단에서 그토록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인 작가는 매우 드물다. 한국 현대미술계에 진정한 아방가르드 정신이 무엇인가를 온 몸으로 보여 준 작가가 김구림인 것이다. 그는 한국과 일본과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숱한 화제를 낳고 주목을 받아왔다. 세계를 응시하는 폭넓은 시각과 유연한 상상력은 그의 작품에 끝없는 변화와 혁신을 불러일으키면서 우리의 일상적 시각과 관념들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협소한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인간은 원래 숙명적인 한계를 타고난 존재이다. 우리의 인식 구조는 결코 우주의 진리를 비추고 응시하는 객관적 지혜의 거울일 수가 없으며 감각과 감정, 지식도 지극히 편견에 찬 주관의 소산일 뿐이다. 그런데도 현대문명은 지적축적과 기술적 발전을 자만하며 마치 인간이 모든 것을 밝힐 수 있는 양 여기고 있다. 우주의 극히 일부인 표피만을 그것도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이해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오늘의 인류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어리석음으로 뒤덮여 살아가는가는 우리는 잠깐 우리의 삶과 세계의 사건들만 돌아보아도 느낄 수가 있다. 인간이 얼마나 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살아가는가를 알 수 있는 우리의 자화상인 것이다. 김구림의 작품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편견의 틀을 깨고 보다 넚은 사고의 지평에로 나아 갈 것을 유도하고 있다. 김구림에 의해 채집된 세계의 다앙한 형상과 흔적들은 독특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되고 결합되어 무한한 우주의 지평을 여는 시각적 암호로 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승원의 2000년대 이후 작품들은 명상적이면서 따듯한 감성적 울림이 느껴진다. 기하학적 구조에 예리한 긴장감이 지배하던 종래의 그림으로부터 벗어나와, 이제는 보다 단순하면서 조용히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밝은 그레이 계통의 배경에 큰 붓으로 회갈색의 네모진 색면이나 회청색 등 미묘한 회색조의 네모진 색면을 군데군데 그려나가 완성한 그림이 서승원의 최근 작품이다. 사실 그가 예전에 했던 작업도 우리의 전통 민화(民畵)인 책거리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었는데, 새로운 작품에서도 그는 한국적인 정취를 추상적인 화면에 보여 주고자 한다. 서승원은 근래의 작품에 대해 나에게 얘기하길 "산사의 종소리와 바람소리 같은 경지, 그리고 전통의 한지 창문을 통해 은은히 비쳐오는 아침의 밝은 기운"을 담고자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작품은 다양한 색들이 겹겹이 섞여 칠해져 있으면서도 요란하게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백색이나 회색으로 환원되어 무화(無化)되는 듯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데. 그 속에는 조용히 떠오르는 아름다움, 말하지 않고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내면적 기운이 감돈다.
하종현은 마대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내어 마대천의 올 사이로 삐져나온 물감에 일정한 도구나 손을 이용하여 흔적을 내어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다른 작가들이 화면의 앞에 물감을 칠해 나가는 것과 달리, 그는 화면의 뒷면에서부터 물감을 발라 압력을 가하여 화면의 앞쪽으로 삐져나오게 함으로써 그림을 그리는 특이한 방법의 작가인 것이다. 물감이 마대천의 올 사이를 통해 밀려 나옴으로써 화면은 우연의 효과가 부여된 독특하고 자연스런 표정을 지니게 되는데, 간혹 그는 이 표정을 그대로 살려 작품을 완성하거나 또는 거기에 그때그때의 무의식적 충동에 의거한 새로운 흔적을 가함으로써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하종현의 작품에는 대지의 기운이 어려 있다. 대지가 수많은 생명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침묵하며 자신을 드러내듯, 대지가 품고 있는 창조적 생성의 가능성을 수많은 형상의 싹을 잉태한 조형언어로 환치시켜 작업하고 있는 작가가 하종현인 것이다.
이강소의 화면은 거의가 단색조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흰색이나 회색 바탕으로 이루어진 그의 화면엔 마치 아무렇게나 스케치 한 듯한 오리 형상이나 나룻배나 사슴 등이 그려져 있다. 선의 움직임과 그 기운을 중요시하는 그의 그림은 한국의 오랜 남종문인화 전통과도 그 맥락이 닿아있다. 그는 때때로 수묵화나 서예의 붓놀림을 연상하게 하는 선묘를 구사하면서 대상을 드러내되 그 의미를 감추는 듯한 독특한 화법을 구사한다. 단색의 바탕은 조용한 선의 움직임으로 채워 질 때도 있고, 부드럽거나 거칠고 역동적인 선의 흐름으로 채워질 때도 있다. 이렇게 채워진 선의 흐름 속에서 수수께끼처럼 조용히 형상이 등장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형상은 구체적인 설명을 박탈당한 채 마치 잠언처럼 불쑥 던져졌다가 스스로 입을 다물고 침묵 속에서 물끄러미 감상자를 바라보고 있다.
김태호의 작품은 우주를 상징하는 색채 추상화이다. 기하학적 구조의 틀은 자로 그린 듯한 예리한 선을 거부하고 오히려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수많은 색과 빛을 잠재하고 있다. 김태호는 화면에 20번 이상 다양한 원색의 물감을 층층이 격자무늬로 칠해 올려 말린 후, 딱딱하고 두툼한 물감 층을 조각도로 조금씩 깍아내며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깍아내는 과정을 통해 안에 숨어있던 색색의 물감 층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화면에 독특한 빛의 울림을 조성하는 것이다. 김태호의 화면은 그가 만든 소우주이다. 수없이 화면에 물감을 칠하면서 그는 우주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칠하고 다시 덮는 수십 번의 행위는 은폐된 우주의 실상에 대한 회화적(繪?的) 은유이다. 그는 덮어버린 물감 층을 조심조심 깍아내면서 숨겨진 색의 단면들을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드러내게 한다. 은폐된 우주가 조금씩 조금씩 작가의 행위에 의해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수많은 색의 단면들은 조명을 받아 눈부신 별들의 광휘가 되어 화면을 감싼다.
정보원의 작업은 전통적인 기하학적 색채추상화에 그 맥락이 닿아 있다. 그가 그린 다양한 길이와 폭의 직사각형들이나 원이 이루는 추상화들은 칸딘스키의 작업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은 칸딘스키와는 다르다. 칸딘스키는 대상들이 무게를 버리고 화면에 부유하는 듯 하는 데 비해, 정보원의 대상들은 오히려 무게 있게 가라앉으며 건축적인 단단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 중 어떤 것은 그대로 건축으로 옮겨 놓아도 될 정도로 건축적 미감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기묘하게 공간을 구성한 예상 밖의 시각적 울림을 보여주는 기하학적 색채 구성 작품이다. 화면을 과감하게 나누며 등장하는 변형된 다양한 기하학적 색면 공간과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원색과 무채색의 조화, 그리고 간간히 보여지는 유기적이고 환상적인 색채 효과는 그의 작품을 주목하게 하는 중요한 힘이 되고 있다.
안정숙의 화면은 수많은 꽃 그림들이 모여서 이루어져 있다. 가는 선으로 그려진 장미 형상들... 끊임없이 꽃잎들이 겹쳐지면서 그리는 자유로운 와선형(渦線形)은 마치 보는 이에게 하나의 질문처럼 놓여져 있기도 하다. 하나하나 꽃이 그려진 64개의 정사각형 화폭이 모여서 이루어진 작품은 운명의 다양한 표정에 대한 시각적 은유이다. 그려진 꽃들은 다양한 것 같으면서도 모두가 다른 표정을 지니고 있다. 겹겹이 그려진 꽃잎들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중심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의 본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안정숙의 작품은 마치 주역의 64괘를 상징하듯 다양한 표정의 울림을 지닌 꽃들을 보여주고 있다. ■ 임두빈
Vol.20090307h | 맥脈-한국현대회화 8人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