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307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명동갤러리 MYEONGDONG GALLERY 서울 중구 충무로 2가 12-16번지 4층 Tel. +82.2.771.2026
명동갤러리는 2009년 새봄을 맞아 봄을 입은 미술관-이철수, 이영수 2인전을 준비하였다. 얼었던 땅이 풀리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은 그 이름만 들어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임으로 부풀게 한다. 숨겨둔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는 많은 봄의 심상은 인간과 그들의 삶에 무수한 비유와 상징들로 빗대어지며 노래되었다. 이번 명동갤러리가 준비한 이철수, 이영수 2인전은 서로 다른 시선으로 힘차게 약동하는 땅, 그 땅위의 생명들을 관조하는 작가들의 서사적이면서도 다정한 이야기들이다. 이 전시를 통해 생명을 잉태하는 땅과 그 땅위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진지하게 관조하기를 기대한다.
이철수는 21세기의 고구려벽화를 그리고 있다. 고구려 벽화는 인물, 풍경, 사신이 주된 주제가 되는데 이철수가 그린 고구려 벽화는 사신도, 인물도 없는 산으로 가득찬 21세기 新 벽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동양화의 수묵작업을 통해 동양화 산수표현의 모든 발전단계를 흡수하고 발전시켜 독특한 우리강산의 향기시리즈를 완성했다. 광목을 삶아 정재된 바탕을 만들고 먹과 여러 번의 석분(금강사)의 덧입힘을 반복하면서 전통적인 부감법으로 구도를 만들고 여러 겹의 선으로 중첩해 그은 산과 해와 달,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의 겹쳐진 간략화 된 산의 차용, 그 위로 흩날리며 날아오르는 때론 떨어지는 분홍의 꽃이 있는 신비한 서사적인 산하를 구현했다. 이철수가 그리는 산하는 동양의 기(氣)와 민족에 기반을 둔 신화적이며 역사적인 한반도에 천착한다. 화면을 가득매운 산은 단군이 죽어 산신이 되었듯이 인간이 죽어 단연코 되돌아가야 할 곳임과 동시에, 제사를 올리고 복을 비는 산신할아버지가 거하는 신성한 민족의 성지일 것이며, 들은 동이족이 신화와 역사속의 땅에서 동쪽으로 끊임없이 이동해온 우리의 한반도일 것이다.
색의 겹침이 미묘한 경계를 보이는 공간은 매우 아른하고 몽환적인데, 이는 현실의 공간이 아님을 색을 섞은 석분을 여러 겹의 덧칠 행위를 통한 수행자적인 태도로 조용하지만 매우 적극적으로 전한다. 이는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음에서 더욱 강하게 제시되는데 『시경』 천보에서 성군의 출현을 달이 밝아지는 듯 하며 해가 뜨는 듯하며... 당신의 일은 끊임없이 이어지네(如月之恒, 如日之升... 無不爾或承)처럼 작가가 꿈꾸는 이상향의 현대적 재해석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강산의 향기 시리즈에 보이는 날리는 꽃은 작가가 고민했던 우리 땅을 완성시키는 하나의 사유하는 상징물이다. 꽃은 기의 변화한 모습(應身)일 수도, 바리공주가 모란을 든 것처럼 천상을 연결하는 신적, 영적 매개체일수도, 석가의 출현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찬탄의 상징물일 수도(散花落)도 있다. 꽃을 통해 진리(體)에 대한 움직임(用)에서 영원하지 않은 시간성과 윤회를 작가는 마지막으로 다짐하듯 화면을 잔잔하게 꽃으로 마무리 한다. 이처럼 이철수는 동이족과 태양상징, 영산(靈山)을 역동적이며 드라마틱하게 매우 감동적으로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화면은 수묵과 색이 바탕에 아련히 스며나와 푸르스름한 서기를 화면곳곳에 만들어 내고, 이는 미묘하고 고요하지만 무섭게 변화하는 폭발하기 직전의 응집된 기의 덩어리를 감지할 수 있다. 이철수가 만들어낸 석분의 견고하고 고정된 화면은 고구려벽화의 연구에서 시작된 동이족이 걸어온 역사적이며 성스러운 땅을 표현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서복이 불로초를 얻기 위해 찾아왔다는 신선이 사는 땅, 도화가 만발한 불노장생의 아찔하게 정신을 놓을 꿈속의 몽유도원의 새로운 탄생일지도 모르겠다.
이영수는 어릴 적 행복한 동심의 추억들을 정제된 자잘한 수묵점을 찍은 꼬마영수를 등장시켜, 들리지 않으나 그 잔잔한 여운이 커다란 자연과의 소박한 대화를 나누는 절지(折枝)된 풍경을 그린다. 이철수가 다큐멘터리의 민족의 서사적 시간과 기운을 그려낸다면 이영수는 순간적이고 한정된 시간의 한 토막을 오려내어 주인공과 그의 시선에 머문 스냅사진이라 할 수 있다. 동양화는 선으로 형태를 묘사하거나 다양한 준법(峻法)을 사용하여 돌과 나무와 산을 그리지만 이영수는 농담이 다른 수묵점을 수 없이 찍어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색을 덧칠하는 고난한 작업과정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방식은 오래전 기억속의 조각들을 끄집어내어 조각 맞추어진 그의 잘려진 곳곳의 화면 속에서 빛바랜 사진처럼 조응한다.
이영수의 기억 속에 머문 조각들은 잠자리, 달팽이, 꽃과 나비, 벌 등 자연이 잉태한 작지만, 간직된 순수를 잠에서 깨우는 마음의 고향에 살고 있는 정겨운 것들이다. 그의 화면은 화석화된 영수의 일부분과 한 두개의 자연물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머니와 아기의 말없는 강한 끌어당김과 같이 손에 졸리운 작은 달팽이를 올리고 꽃을 향해 '훅' 바람을 부는 꼬마 영수, 꽃을 만지려다 벌이 도망가는 재미있는 장면, 꽃이 핀 들에 발만 내놓은 아가, 기다리다 지쳐 잠든 벗어놓은 아가 신발 등 작은 행위를 통해 위대한 자연과 생명을 이어나가는 여린 순정이 유기적으로 서로 교유하고 있다. 화면속의 영수는 캐릭터화 된 점으로 만들어낸 우의적이고 단순하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특유의 몸짓들을 통해 작가가 응시하는 시선들은 다분히 자연과 인간, 시간에 대한 깊은 관조와 그리움을 내포한다.
한 가지 그의 그림에서 상징화된 이야기가 숨어 있다. 꼬마영수가 신발을 신고 있지 않다는 것인데. 예배당에 참배할 때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들어가듯이 많은 신화와 상징들처럼 맨발은 이영수가 그린 땅이 성역화된 오염되지 않은 성스러운 땅이라는 것이리라. 이영수의 작품의 내용은 소박하고 다정한, 도시가 이루어지기 전의 개천과 들에서 자라난 작가의 개인적 추억으로의 회고일 수 있으나 이미 작가의 영역은 태초의 원형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흐릿하지만 뚜렷한 기억을 간직한 이야기들은 비단 이영수 작가만의 개인적인 관심이 아니라 어릴 적 동요속의 아가야 달맞이가자며 풍금을 울리고 돌담 밑에서 친구를 부르던 우리의 가슴 뭉클한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과거이며, 주름진 자신의 모습을 진한 화장으로 감추어 버린 도시, 모던시티의 보이지 않는 뒷모습의 아련한 기억일 것이다. ■ 박옥생
Vol.20090307g | 봄을 입은 미술관-이철수_이영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