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ban landscape-HABITAT

박진식展 / PARKJINSIK / 朴眞植 / photography   2009_0304 ▶ 2009_0310

박진식_Habitat 05_디지털 C프린트_120×150cm_2008

초대일시_2009_03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하절기) / 10:00am~06:00pm(동절기)

갤러리 나우_GALLERY NOW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3층 Tel. +82.2.725.2930 www.gallery-now.com

이번「urban landscape-habitat」series는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낯익은 생활주변을 묘사한 공간에 관한 작업이다. 창조적 상상력조차 이미 고갈된 시대에 급속한 현대화의 과정 속에서 도시인들의 삶의 무게를 주변에서의 익숙한 공간들을 통하여 왜곡을 절제한 다큐멘터리적인 사진으로 다가가 구도적 균형감을 유지하며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 생존경쟁에서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해야하는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공간의 관계를 현대사회에서 피해갈수 없는 인공적인 선과 오브제들로 표현하였고, 여기에서 만들어진 기하학적인 구조로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과 반응하여 경직성 또는 안정감 등 다른 해석으로 접근할 수 있다. ■ 박진식

박진식_Habitat 01_디지털 C프린트_100×125cm_2003

규격화된 공간 ●「Urban landscape-habitat」series에서 박진식은 도시공간의 규격화된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도심의 주차장과 아파트, 한강변에 설치된 임시 가옥, 면허시험장 등의 생활공간을 작가는 딱딱하고 무미건조하여 물성만 남아있는 상태로 제시한다. 인간의 삶이 공간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이상 그 공간의 성격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이 공간을 필요에 따라 인공적으로 가공하는 것은 맞지만 주어진 공간에 맞추어 가공하는 것과 공간 자체를 가공해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가 최소한의 변형이라면 후자는 질적인 변화를 낳는 것이다. 도시공간은 자연과 달리 인공적으로 축조한 것이다. 반면 시골의 주거공간은 보통 공간에 인간을 맞춘 경우가 많다. 그 또한 인공이지만 거기에는 자연과의 조화가 있다. 한편 도시는 자연 위에 축조해낸 순수한 인공 덩어리의 공간에 가깝다. 처음부터 그렇게 탄생한 탓에 도시에서 자연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비록 도심에 자연을 갖다놓으려는, 자연에 대한 회귀본능이 현대의 도시건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더라도 말이다. ● 도시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놀라우리만큼 차갑다.

박진식_Habitat 03_디지털 C프린트_120×150cm_2008

도시에도 인공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 있을 터인데 그런 것들은 작가의 관심 밖에 있는 것 같다. 요컨대 작가에게 도시공간은 심미적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쾌적한 공간이 아니라 단지 규범과 절제만을 요구하는 효율성 위주의 공간이다. 효율성이 도시공간의 구성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하는 탓에 공간을 잘게 나누어 여럿이 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수가 함께 써야 하므로 규범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규범의 핵심에는 기계의 논리가 있다. 명령을 주면 작동하고 주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것, 명령을 받은 만큼만 반응하고 그 이상, 혹은 이하의 반응은 없는 것 등이 가장 간단한 기계의 작동원리이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처럼 반응하지 않는다. 명령이 없어도 작동할 수 있고, 반대로 명령이 있어도 작동하지 않을 수 있으며, 받은 것보다 더 많이, 혹은 적게 반응할 수도 있다. 그러한 작동 방식은 규범을 해친다.

박진식_Habitat 06_디지털 C프린트_80×100cm_2008

그래서 인간은 본래 규범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어렵다. 하지만 규범과 효율성의 원칙에 따라 건설된 도시공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거기에 익숙해 있다. 과장하자면 기계처럼 반응하고, 기계처럼 작동하고, 요컨대 기계처럼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규범이 싫다고 해서 따르지 않을 수는 없다. 파란불이 들어와야만 길을 건널 수 있다는 규범이 기계적이며 사람을 규격화시킨다고 해서 부정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이러한 강제적 규범이 지배하는 도시의 모습을 삭막하고 답답한 공간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데 만족한다. ● 주차장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불과 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에도 불구하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도로 전면에 새겨진 화살표를 따라 우측으로 하염없이 돌아야만 한다. 입구는 여럿이어도 차단막대기에 가로막혀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여럿이 사용하는 공간의 논리이다.

박진식_Habitat 08_디지털 C프린트_100×80cm_2009

고속버스 터미널의 주차장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일렬로 가지런히 정돈하듯 주차된 버스와 승용차들의 모습은 시각적으로는 정갈해 보인다. 그것이 훌륭한 주차질서임에는 맞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로가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질서의 저변에는 기계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인간 본능에 대한 무의식적 억압이 깔려있다. 그 본능이 정당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 억압의 기제가 도시공간의 지탱원리라는 것이다. 주차장 뒤편에 거대한 자태로 건설 중인 헐벗은 회색빛 아파트와 그 위에 놓인 거대한 기계들 또한 쉼 없이 생산만 해대는 도시의 숨 가쁜 일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강변에 자리 잡은 면허시험장의 모습 역시 규칙에 따라서 생활해야만 하는 도시적 생활방식에 대한 명료한 상징이다. 바닥에 어지럽게 그려진 화살표와 도로의 턱이 만들어낸 경계에 따라 정확하게 움직여야만 통과할 수 있는 미로와도 같은 길, 군데군데 설치된 교통표지판을 숙지하고 있지 못하면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난해한 공간이다. ● 한편 규범만이 도시공간을 답답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자로 잰 듯 반듯하고 규격화된 상품처럼 단조로운 건축물들이 도시공간의 삭막함과 무미건조함을 가중시킨다.

박진식_Habitat 09_디지털 C프린트_100×80cm_2009

필요한 것만 있고 필요치 않는 요소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효율성의 원리가 거기에도 스며있는 것이다. 한강변에 임시로 들어선 가건물들이 그 예이다. 어차피 효용성이 다하면 철거될 가건물들은 규모나 디자인, 색상 등 모든 면에서 심미적 요소란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다. 문제는 가건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파트 옥상에서도 작가는 효율성의 원리에서 배제된 공간의 초라함을 본다. 사람들의 시선을 타는 건물의 외관과 달리 건물 옥상은 버려진 장소에 불과하여 삐죽삐죽 튀어나온 TV수신용 안테나처럼 시선을 어지럽히는 요소들만 들어차 있는 것이다. 학교처럼 보이는 건물의 주변에 설치된 방음벽이나 학교건물의 규격화된 형태 역시 도시 공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각 층이 동일한 높이, 동일한 창문, 동일한 무늬로 구성된 이 건물에서 생활해 온 학생들이 규칙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기란 힘들지 않겠는가.

박진식_Habitat 11_디지털 C프린트_80×100cm_2008

작가가 제시하는 도시공간을 보면 삭막하기 그지없어 과연 이 곳이 진정 사람들이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공간인가 하는 놀라움을 갖게 된다. 실제로 그의 사진에는 사람들이 배제되어 있어 삭막함을 가중시킨다. 규칙과 규범은 윤리적인 문제에 해당하지만 그것이 자발적으로 따라야 할 당위가 아니라 효율성을 추구하는 도시의 작동원리에 따라 강요된 것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다른 길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가 보여주는 생활공간이 이처럼 규격화되어 있다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의 삶 또한 규격화되어 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규격화된 공간 속에서 규격화된 삶을 사는 인간은 규격화된 인간 아닌가. 그런 점에서 작가의 연작은 도시공간의 규격화된 모습을 통해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들의 삶을 반추해보도록 하는 반성적 힘을 갖고 있다. ■ 박평종

Vol.20090304d | 박진식展 / PARKJINSIK / 朴眞植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