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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228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요기가 표현 갤러리 EXPRESSION GALLERY YOGIGA 서울 마포구 합정동 412-1번지 세원빌딩 B1 Tel. +82.2.3141.2603 www.yogiga.com
연수의 첫 번째 개인전, 『흐르는 정원』展은 식물성, 혹은 식물형이라 규정할 수 있다. 작품의 외형이전에 우선 작품의 탄생에서 식물의 모습을 띄고 있다. 그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근원적인 태생을 의미한다. 각각의 작품들은 자연의 것,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동경에서 출발하여, 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는 자연 자체를 그대로 옮기거나, 자연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외심이 아니라, 자연의 뿌리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순수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의 과정 속에서 작가는 자연의 본질, 혹은 원초적인 요소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 시도의 결과가 무엇이든,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작가의 작업을 들여다보면, 동물의 뼈, 원시 물고기, 혹은 달팽이처럼 인간의 시간경계를 넘어선 것들이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근원성과 초월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작업의 대상은 동물이나 식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항아리 역시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아주 오래된 기억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확장된다. 그리고 발레리나에 도착해서는 그 형태나 의미를 과감히 벗어버린다. 즉, 작업의 형상에 대한 집착은 마치 반전을 기한 스릴러처럼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초월한 기저로 다가간다. 이것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나무형 사유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나무형 즉, 중심성과 초월성을 지닌 하나의 체계인 것이다. 하지만, 나무형 만으로는 연수의 작업을 설명하기가 부족하다. ● 연수의 작품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요소는, 대상의 실물적인 존재를 넘어서서 직접적인 표현 방식에 있다. 작품의 재료가 되는 우레탄 본연의 색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며, 우레탄의 특성상 경화시간이 짧아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자연현상 자체가 작품 속에 녹아있다. 게다가 달팽이의 껍질로 활용된 나뭇잎은 탈색 과정을 통해 잎맥만 남은 강제적인 본연의 것들이다. 결국, 물고기라는 하나의 형체와 물고기를 이루는 재료의 접속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나무형과는 상반되는 리좀형 사유로 통한다. 그것은 바로 작품의 형상과 외형의 탈색으로 빚어지는 이질적인 접속이다.
그러나 앞서 그녀의 작업을 식물형이라 명명한 이유는, 더욱 넓은 의미의 식물적 가치에서 비롯된다. 나무가 뿌리, 줄기, 잎의 정확한 구분을 의미하고, 리좀이 뿌리, 줄기, 잎의 동등한 접목을 의미한다면, 식물은 체계적인 구분이나 접목을 모두 포함하는 그 자체의 생명을 의미한다. 가지, 잎, 뿌리, 껍질, 꽃, 풀 등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몽상적 식물학은 어느 새 독특한 규칙성의 이미지를 심게 된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식물적 가치가 작가의 무의식 밑바닥에 깔린 내적 식물도감을 통해, 그 속에서 부드럽고 완만한 힘이 연속성과 끈질김으로 탄생하는 것이다.(가스통 바슐라르 「풍경 역학」) ● 뼈밖에 남지 않은 동물과 심해에 떠있는 물고기, 세대를 넘어 제 자리를 지키는 항아리 역시 식물적 가치의 정적인 움직임을 내포하지만, 무색 자체에서 서서히 시작되는 색의 변화야 말로 (우레탄의 흰색 역시 더 이상 흰색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느린 운동을 하는 식물적 가치의 발현인 것이다. 즉, 자연의 섭리대로 본래의 무색에서 또 다른 색으로 변해가는 정적인 진행 과정이 작가가 명명한 '흐르는 정원'의 의미와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마치 식물처럼, 우리가 즉각적으로 느끼는 시간을 넘어서는 그녀의 정원은 아주 천천히, 마치 태고 적부터 살아온 생명체처럼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작업은 무언가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수집이며 정리라는 작가의 주장대로라면, 이번 작업의 의미는 더욱 분명하다. ■ 斜月
Vol.20090228a | 연수展 / YEONSU / 蓮樹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