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멜로디 달콤한 뽀뽀

이아영展 / LEEAYOUNG / 李妸 泳 / painting   2009_0225 ▶ 2009_0303

이아영_저 손님들은 언제쯤 가실까?_장지에 채색, 나무_80×84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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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225_수요일_05:30pm

신진작가 창작지원전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 라메르_GALLERY LAMER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홍익빌딩 1층 Tel. +82.2.730.5454 www.gallerylamer.com

1. 나는 그다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카카오가 72% 함유된 초콜릿의 맛은 왠지 모르게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달콤함 속에 느껴지는 쌉쌀한 맛에 묘한 매력을 느끼며 한조각 한조각 계속 입으로 들어간다. 눈물 나게 매우면서도 멈출 수 없는 낙지볶음처럼 초콜릿의 달콤함과 쌉쌀함에 난 은근히 중독성을 보인다. ● 몇 년 전 새 구두를 샀다. 사기 전 잠깐 신어 봤을 때는 괜찮았는데 신고 다녀보니 발볼이 조금 조이는 듯 했다. 그래도 며칠 참으며 신었더니 내 발을 조여 왔던 가죽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발에 맞게 길들여져 이제는 나에게 제일 편한 구두가 되었다. 그 뒤로도 새로 산 구두가 몇 켤레 되지만 이 구두만 찾게 된다. 제일 편하니까. ● 길들여짐이라는 것은 저 초콜릿과 새 구두 같다. 편안함 속에서 달콤함을 느끼지만 그 편안하고 익숙함에 중독되어 결국 그것을 벗어나기 두려워하는 씁쓸함을 함께 준다.

이아영_어머나! 여기가 아닌가?_장지에 채색, 종이죽_97×76cm_2008
이아영_어제 씹던 껌이 어디 갔지?_장지에 채색, 종이상자, 리본끈_97×130cm_2008

2. 멜로디는 자기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없나 보다. 몇 번 과자 맛을 보고, 과일 맛을 보고, 고기 맛을 보더니 웬만해서는 자기 밥에는 입도 대지 않는다. 그 달콤함을 못 잊는지 계속 내가 뭘 먹을 때마다 나를 빤히 처다 보는데 그 눈빛을 피하지 못하고 또 조금 떼어 내주고 만다. 아이에게 사탕이 나쁜 것을 알면서도 마지못해 주는 엄마처럼 멜로디의 애절한 눈망울에 나는 결국 손을 든다. 이제 사료만 가지고 멜로디는 배부를 수 없게 되었고, 나 역시 나도 모르게 내 손에 음식이 쥐어진 채 멜로디의 입을 향하고 있다.

이아영_뽀뽀_장지에 채색, 천, 지퍼_50×37cm_2009

지금 기르고 있는 뽀뽀는 매일 아침 내 방으로 와 침대를 긁어대며 밥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나의 하루의 첫 일과는 뽀뽀에게 밥을 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물그릇이 비어있는지 확인하게 되고 좀 더 예뻐 보이게 하기 위해 자주 빗질을 해준다. 내가 길들이고 있는 멜로디와 뽀뽀에게 나 역시 길들여졌나 보다. 내가 강아지들을 길들이려고 하면 할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 나 역시 이 녀석들에게 점점 더 길들여져 간다. 하지만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이기 때문에 그 길들여짐 조차 달콤하다. 이제 이 녀석들은 내가 가장 편안해 하는 구두와 같아졌고, 초콜릿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 달콤함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그 씁쓸함을 느끼고 싶지 않기에.

이아영_영차-!_장지에 채색, 천_80×180cm_2006

3. 「앗! 큰일 났다」 아무데나 오줌 싼 뽀뽀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 밑에 숨어있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안타까워 보인다. 뽀뽀를 불안하게 만든 건 저 아무데나 싸버린 오줌. 그래서 그림 속 오줌이 진짜 같아 보이게 만들었다. '반성해, 뽀뽀!' 「어제 씹던 껌이 어디 갔지?」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뽀뽀가 또 자기 장난감통을 뒤지며 무언가를 찾는다. 이제 자기 것이 그 상자 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뽀뽀는 심심하면 그 속에서 장난감들을 하나 둘 꺼내서 논다. 그림 속에도 뽀뽀의 장난감통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뽀뽀는 그 속에 머리를 넣은 채 껌을 찾고 있다. '뽀뽀야, 언니가 찾아줄까?' 「이번엔 잡고 말꺼야-!」 장난감 공을 잡으려고 오늘도 멜로디는 열심히 뛰어다닌다. 헥헥 거리면서도 저리 신나게 뛰어다니는걸 보니 저 공을 또 한 번 던져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미 화판에서 뛰쳐나온 그림 속 멜로디는 공을 잡기 일보직전. '멜로디,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아영_언제쯤 오시려나~_장지에 채색, 나무_55×131cm_2009

「언제쯤 오시려나~」 강아지 두 마리가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주인을 기다리나보다. 집에 혼자 있는 우리 강아지도 저렇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하는 생각에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얘들아, 너희 주인 곧 오실거야~' 멜로디와 뽀뽀 그리고 사랑스러운 여러 강아지들은 내 그림 속에 들어왔고 나는 그 안에서 다시 한 번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는 그 속에서 달콤함과 씁쓸함을 느낀다. 이 녀석들의 모습이 내 모습 같기도 하고 우리의 모습 같기도 해서.

이아영_이번엔 잡고 말꺼야-!_장지에 채색, 종이죽_170×130cm_2009

4.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다. 나를 구속 하는 무언가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져 이젠 그것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온 날, 특별히 전화 올 때도 없으면서 하루 종일 불안했던 적이 있다. 그날 하루는 문자가 왔는지, 수업 중 진동으로 바꿔놨는지, 가방 속에 넣었는지 확인하려고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 작은 휴대폰 하나 없다고 왜 이리 불안하고 불편한 건지.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자유 보다는 길들여진 틀 안에서의 안락함을 찾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자유가 두려워 진다. 나에게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해줄 그 자유가. ■ 이아영

Vol.20090225d | 이아영展 / LEEAYOUNG / 李妸泳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