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을 그려줘요

2009_0223 ▶ 2009_0425

김미나_배반당한 애인들_종이에 드로잉_29.7×42cm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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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미나_박하늘_이은정_야은_한경희

기획_진행_Art and Archive Management

1차_2009_0223 ▶ 2009_0306 관람시간 / 08:00am~05:30pm / 주말 휴관

굿모닝 신한갤러리 GOOD MORNING SHINHAN SECURITIES GALLERY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23-2번지 굿모닝신한증권 본관 1층 Tel. +82.2.3772.3227

2차_2009_0403 ▶ 2009_0425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충무갤러리_CHUNGMU GALLERY 서울 중구 흥인동 131번지 충무아트홀 Tel. +82.2.2230.6629 www.cmah.or.kr

당신의 마음을 그려줘요 배반당한 애인들 나는 램프를 가지고 있었고 너는 빛을 가지고 이었는데 누가 심지를 팔아버렸는가? (J. Prevert) 조금은 과묵해져도 되는 순간, 몇 줄의 문장이 구구절절한 서사보다 가슴을 두드릴 때가 있다. 행간에 감춰진 의미와 침묵이 시각화 될 때 우리는 시각언어를 읽는다고 한다. 시와 비교하자면 드로잉은 그 절제된 언어와 여백이 주는 미덕, 때로는 자동기술법에 가까운 원초적 표현력이 닮아있다. 창작행위는 표현하는 것이고 표현은 소통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그려줘요.'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전시는 '드로잉'을 새롭게 정의내리거나 확장된 영역에 대한 기획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이 최소한의 매개로서 직접적인 소통을 도모하는 수단임을 전제로 한다. ● 각기 다른 매체를 쓰는 다섯 작가에게 드로잉은 그려내지 않으면 안 되었을 순간 던져져 나온 언어이며, 솔직한 심상에서 각자의 시각언어로 완성되는 과정이다. 이들에게 드로잉은 산재해 있는 감각을 가장 익숙하게 수집할 수 있는 수단이며 자신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제어하기 이전에 아이디어를 잡아두는 방식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드로잉은 특정 매체를 찾아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지만 하이쿠 같이 압축된 표현으로 감정을 실은 것으라 할 수 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장인적 기예로 빚은 작품으로 표현되기 이전의 가공되지 않은 감각은 예술의 개념에서 벗어나 소통을 돕는다. 이런 드로잉의 특성을 공통적으로 지닌 다섯 작가는 정제되거나 직접적이거나 즉각적인 표현들로 그 화법(話法)에 차이를 드러낸다.

한경희_알수없는그림알수있는그림꽃이좋아꽃이싫어_50×70cm_2007

소곤거리며 입을 떼는 한경희는 휘발하는 이미지를 순간적으로 포착한다. 작가는 포착한 풍경을 즉각적으로 그리지만 장지와 먹이 갖는 재료적 특성이 '발견한 이미지'의 무게만큼 밀도 있게 표현된다. '발견한 이미지'란 소멸되고 이미 폐허가 된 후에 작가의 눈에 띈 것들 -죽어있는 새, 폐가, 무덤-인데 작가는 이미 숨을 잃은 그것들을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을 넘어 영원한 것으로 기록한다. 자신과 오늘 관계 맺은 사라지는 대상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의 마음은 글보다 그림으로 앞서 표현된다. 한경희의 전시 제목 '말하지 않는 말의 그림수첩'처럼 작가는 언어를 대신하는 소통의 방법으로 그림을 택하고 있다.

야은_안심덩어리_충무갤러리

야은은 오브제를 메타포로 기원과 고백을 담는다. 덩그러니 놓인 고깃덩어리('안심덩어리')들은 '덩어리'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만큼 '안심(安心)'을 바라고 있다. 제목과 함께 읽히는 그림은 보는 이에게 왠지 모를 안정감을 준다.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감싼 쥔 다리 옆에는 불안함만큼 핏기 없고 무게감 없어 보이는 안심덩어리가 그 형상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오랜 시간 공들인 야은의 드로잉에 절절함이 묻어나는 건 볼펜, 바느질로 더한 수공예적 힘에 기인할 것이다. 광목에 볼펜으로 촘촘히 드로잉 한 '처리하기 어려운' 시리즈는 감당할 수 없이 큰 그물에 낚인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그린 것이다. 욕심으로 인해 처리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이 반복 된 손의 흔적만큼 가득해 보인다.

박하늘_히가와쿄오코체 부쳐 drawing-57_종이에 드로잉_19×14cm_2008
박하늘_굿모닝신한갤러리

매 순간 직관적으로 그린 드로잉을 축적하면 작은 연대기가 만들어지듯 시차 순으로 번호 매긴 박하늘의 드로잉은 수수께끼같은 내러티브를 갖는다. 마음의 문제는 추상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말은 감각에 순순히 따르는 자기표현으로 이해된다. 이런 감각에 충실한 스타일은 그림에 등장하는 형상을 벗어난 비재현적 형태의 신체와 최소한의 색을 사용했다는데서 찾아 볼 수 있다. '비밀일기'에서 다양한 색으로 생각을 재현했던 작가는 'drawing'에서는 쏟아져 나오는 감정을 덩어리 진 신체와 힘의 흔적으로 풀어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을 가득 메운 축적 된 드로잉은 감각의 연대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미나_배반당한 애인들_종이에 연필_43×31cm_2007 김미나_배반당한애인들_종이에 연필_42×29.7cm_2007

한편, 김미나의 선묘드로잉은 시적이다. 간결한 문체처럼 정제 된 드로잉은 작가에게 상상을 위한 여백과 같아 하나의 이미지가 새로운 의미로 연장되곤 한다. 그래픽 렌더링(rendering)과 연필드로잉을 통해 작가는 드로잉이 갖는 시각효과 이상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작가는 정형화된 오브제(크레용, 물병)를 드로잉하며 일상에서 인식하지 못했던 작은 차이를 발견하고 다르게 바라본다. 김미나의 비대해진 허상, 무기력, 그로인한 자기정당화의 수단으로 코끼리를 상징하는데 'DUMBO'의 코끼리가 갖는 의미도 코끼리의 주름을 만들어가며 파생된다. 땅에 발 딛은 거대한 코끼리 속 알록달록한 모자를 얹고 날아오르는 또 한 마리의 코끼리 덤보는 운명적 음울함을 비틀어 드로잉적 상상의 유쾌함을 보게 한다. 단편적이기 때문에 해석과 상상의 여지를 제공하는 김미나의 드로잉은 일상성의 '환기'이자 '해소'의 수단이 된다.

이은정_Something About Us_32.5×30cm_2009

이은정은 옷걸이에 걸린 기성복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모습을 하루에 통과하는 문과 하루에 소비하는 일회용 종이컵으로 가볍게 그려낸다. 특별한 차이 없이 재단 된 사물 드로잉은 병적으로 보이는 소비 지향적이고 틀에 박힌 삶의 기록이다. '딱 떨어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의 드로잉은 도시적인 장치들을 통해 일상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한편 소담한 딸기를 충동적으로 으깨고 고장 난 시계를 돌려놓지 않아도 되는 세상('Strawberry fields forever')을 꿈꾸기도 한다. 현실에 넘쳐나는 종이컵 뒤로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과 딸기밭을 향한 호기심어린 일탈 사이에 선 몽롱함은 우리의 익숙한 감정일 것이다. ● 마음을 그려 보이는 다섯 작가의 그림 앞에서 '소통'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본다. 눈치껏 조율하고 아니면 다른 이와 필요한 부분만 맞춰보는 것이 소통이었던가. 한 장의 마음 앞에서 당신 역시 회답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그것이 소통이 아닐까. 낯선 이의 그림에 마음이 열리는 소통의 순간이 오래 머무른다면 그것이 미술이 주는 감동일 것이다. ■ 김이정

Vol.20090223b | 당신의 마음을 그려줘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