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216_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자인제노_GALLERY ZEINXENO 서울 종로구 창성동 130-5번지 Tel. +82.2.737.5751 zeinxeno.mbillust.co.kr
사진과 그림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 민병길의 그림 같은 풍경사진은 생략과 절제의 미학이 담긴 한 폭의 수묵 담채화를 연상시킨다. 그의 작품은 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화면의 하단에는 앞뒤로 중첩된 산, 나무, 새 등과 같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자연이 어우러져 있다. 이십년이 넘도록 작가가 이토록 집요하게 자연풍경에 몰두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는 자연의 겸손함을 사진에 담아내고 싶기 때문이리라.
민병길은 특히 '안개'라는 자연의 변수를 활용하여 평범한 사물들을 한 순간에 새로운 존재로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다. 빛과 원근이 무시된 그의 사진 속에 드러나는 낯설어 보이는 하얀 풍경. 안개에게 색을 빼앗긴 무색무취의 자연에는 오직 작가가 만든 감각의 '숨'만이 존재 하는듯하다. 그러나 하얀 안개 뒤에는 숨과 숨이 이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작가는 바로 숨어있는 숨의 존재를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다. 물리적인 현상으로서의 안개는 카메라의 앵글에 잡힌 대상의 기표들을 무효화시켜 버린다. 마치 그것들이 태초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존재 그 자체로서 사유의 대상으로 되살려낸다. 그래서인지 그의 풍경은 서술적이라기보다는 아주 짧은 역사의 시간을 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사진 속의 안개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 본 안개가 아니라 안개 그 자체로서의 존재일 뿐이다'라고 고백한다. 즉 풍경도 그자체가 스스로 나타났을 뿐 작가의 주관적 사유의 결과는 아니라는 뜻이다.
민병길은 자연을 대상으로 보지 않고 스스로 자연이 되어 자연의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그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하여 자연과 일체감을 꿈꾸지만 이러한 의도적이며 의식적인 시도는 결국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자연과의 괴리를 없애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은 산, 나무, 하늘과 같은 자연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줌으로써 이들이 다시 사진 프레임 속으로 들어와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만들고 있다. 이는 자연 속으로 작품을 되돌리려는 작가의 오랜 내공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먹물의 농담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동양화의 전통적 여백의 미를 민병길은 현대적 예술매체인 사진을 통해 재현하고자 한다. 자연이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도록 원거리에서 카메라의 렌즈를 고정시키면 사진과 그림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그림보다 더 그림 같고, 수묵화 같이 숨을 쉴 수 있는 사진이 탄생한다. ■ 이지호
Vol.20090216a | 민병길展 / MINBYEONGKIL / 閔丙吉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