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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2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_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공허하고 고독하고 낯선 현대인의 초상 ● What' your plan B? 문정화는 근작에서 당신의 제 2안은 무엇이냐고 물어온다. 여기서 안은 다른 말로 계획이나 욕망으로 고쳐 읽을 수 있다. 즉 당신은 무엇을 계획하고 욕망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욕망하는 인간이란 정의는 프로이드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인간이 여전히 이성적인 동물(데카르트의 근대적 인간)인 것은 맞지만, 그 존재조건으로서 이보다 먼저 욕망이 전제되어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 그런데 인간을 욕망하는 동물로 정의한 것은 실상 결여와 결핍을 인간의 존재조건으로 본 것이다. 우리는 없는 것을 욕망하지, 있는 것을 욕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있는 것을 욕망한다는 것 자체는 모순이다. 해서, 무엇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 인간존재가 부재하는 것, 불가능한 것, 비가시적인 것, 인식할 수 없는 것과 강하게 연동돼 있음을 말해주며, 이는 예술의 존재이유와도 관련이 깊다. 한편으로 이처럼 부재하는 것을 욕망한다는 것은 욕망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기획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욕망하기를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다. 해서, 모든 욕망은 기본적으로 허구적 욕망이다. 작은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불러들이기 위한 구실이나 계기로서 작용할 뿐, 욕망 자체는 끝내 채워지지가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자크 라캉은 오브제 a라고 부른다. 여기서 오브제란 우리가 객관화하고 사물화하는 유형무형의 대상 일체를 일컬으며, a는 그 대상에 붙어있는 개념으로 환원할 수도 인식할 수도 없는 부분을 말한다. 모든 사물에는 이처럼 그 자체로는 결코 알 수 없는(쥘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욕망이다. 이로써 욕망은 인간의 부조리한 존재조건을 드러낸다. 문정화는 이처럼 욕망을 매개로 하여 인간의 부조리한 존재조건을 드러낸 것이다. ● 그런가하면 제도는 욕망의 부재하는(알맹이 없는) 기표와 관련이 깊다. 허구적 이데올로기(신이나 이상국가처럼 순수한 관념의 형태로나 존재하는 것들)를 내세워 사람들을 현혹하고 강제하고 지배하는 것이다. 작가의 그림은 특히 바로 이 지점(그 자체 사회학적인 맥락과 강하게 연동된)을 향한다. 이를테면 그림에서의 흑인소년이나 어린아이들의 책망하거나 최소한 무표정한 듯한 눈빛은 이처럼 제도가 제안한 욕망의 프로젝트를 의심하는 것 같다. 그 이면에서 문명화의 기획이나 범 세계주의의 기획을 의심하는 후기식민주의에 대한 자의식이 묻어난다. ● 이와 함께 아마도 각종 대중매체들로부터 차용하고 각색했었을 그림 속 인물들은 친근하기보다는 낯설고 이질적이고 생경한 느낌을 준다. 무슨 외국인 같고 외계인 같고 이방인 같고 타자(타자는 단순히 어떤 사람임을 넘어 일종의 무의식적 자아를, 낯설고 이질적이고 생경한 존재론적 조건을, 그리고 금기시된 관습이 투사된 표상 일체를 아우른다) 같다. 나아가 생명을 결여한 기계 생명체나 마네킹 같기도 하다. 이질감은 특히 인공눈과 같은 눈의 표정에 의해 더 강조되는데, 심지어 작가는 유사 큐빅이나 비즈와 같은 오브제를 차용해 인공적인 느낌을 강화하기조차 한다. ● 이로써 문정화는 도박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통해 현대인의 공허한 일상을 그려내고, 칠흑 같은 물속을 부유하는 나체를 통해 고립된 섬처럼 서로 소통할 수 없는 현대인의 고독을 드러내며, 마침내 근작에서는 흡사 마네킹을 연상시키리만치 낯설고 이질적이고 생경한 타자와 대면케 한 것이다. ■ 고충환
어긋난 풍경에 대한 물음 ● 자유로운 엄지와 뇌의 신피질을 동시에 가진 인간종의 특징이 과연 이 행성에 어울리는가. (Johann Hari) ● 머리가 굵어지고 해가 갈수록 나는 이 말에 더더욱 부정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은 세상을 재배열하고 새로운 싸이클을 만들며 지나치게 찬란한 꽃을 피워왔다. 내게 있어 그 꽃은 너무도 파괴적으로 다가온다. 지나치게 즐거운 것은 슬픔이 깊으며, 지나치게 찬란한 것은 어두운 그림자를 동반하듯이 말이다. ● 우리가 웃고 떠들고 즐기는 사이, 앞으로 일어날 많은 것들의 부재(不在)들은 '풍요로운 미래, 혹은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낳게 되는 결과물들이며 그것들은 특정한 동물, 안전한 음식, 평화로움, 아름다운 풍경, 맑은 공기, 해맑은 웃음, 그리고 우리네 인간들의 2세일 수도 있다. ● 그리고 이러한 암울한 미래에 대한 원인의 기저(基底)에는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에 대한 인간의 정치적 욕망이 흐르고 있음을 나는 깨닫는다. 그 결과에 대해 나는 불특정인(-그들은 제3의 종, 우리네의 후세, 우주인, 그리고 우리 이면의 얼굴일 수도 있다.-)의 근심어린, 혹은 질책하는 눈빛으로 이를 그리고자 했다. ● 어느 시인이 말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고...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서 벗어나려는 아니, 벗어나게끔 하는 이 현상에 대해 우리는 제2안(plan B)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을 던져보고 그곳에 희망이 존재하길 바란다. ■ 문정화
An Empty, Lonely, and Unfamiliar Portrait of the Contemporary Man ● In What's Your Plan B? Moon literally asks what our second idea is. The idea here can be replaced with the term 'plan' or 'desire'. In other words, she asks what we plan and desire. As is wieldy known, the definition of the desiring man originates from Sigmund Freud. Freud asserted that man is still a rational animal (Rene Descarte's modern man), but desire should be presupposed as a precondition of being. ● Freud's definition of man as a desiring animal indicates that he actually saw deficiency or lack as the condition of human existence because we humans desire what we don't possess and do not desire what we possess. To desire what we have is itself a contradiction. What we desire is closely associated with what we don't have, what's impossible, what's invisible, and what we cannot perceive, namely, it is closely linked to reason for art. ● To desire what's absent means that desire is fundamentally based on an impossible plan. Even though that is true, we cannot give up an act of desiring. All desires are basically fictitious and in no way met. Jacques Lacan calls it 'object a'. The 'object' here refers to all tangible and intangible objects we often project and reify while 'a' is a conception attached to these objects that can never be reducible and perceptible. Like this, all objects have some parts impossible to grasp for us that are none other than desires. As desire unveils human's condition of absurd existence, Moon Jung-hwa reveals it through the medium of desire. ● Any institution is like a signifier with no desire (or with no core). This is to deceive, force, or control the people by presenting fictitious ideologies (such as gods, ideal states, or the things existing in a form of ideals). Moon's painting is particularly associated with this context or the context of sociology. For instance, in her paintings a black boy or the deadpan faces of children seem to represent doubts about such institutions or projects their desires present. They also represent self-consciousness of post-colonialism suspicious of the project of civilization and globalism. ● The figures of her painting that were probably appropriated from a wide variety of mass media feel unfamiliar, idiosyncratic, and awkward rather than amicable. They seem like expats, aliens, strangers, or others. They also look like machines or mannequins with no life. Heterogeneity is reinforced by an artificial eye. The artist strengthens this artificial feel by using similar cubic and beads. Through the diction of those addicted to gambling, Moon portrays the emptiness of contemporary man's daily life. Through the nudes floating in the darkness of water, the artist reveals their solitude and makes viewers face strange, heterogeneous, and awkward figures reminiscent of mannequins. ■ KHOCHUNGHWAN
Vol.20090205a | 문정화展 / MOONJUNGHWA / 文靜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