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211_수요일_06:00pm
갤러리 가이아 2009 우수청년작가 기획전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0:00am~06:00pm
갤러리 가이아_GALERIE GAIA 서울 종로구 관훈동 145번지 Tel. +82.2.733.3373 www.galerie-gaia.net
전통에 대한 해석과 번안을 통한 현대성의 획득 ● 현대 한국화의 향후 추이를 가늠해 봄에 있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바로 부조화의 경향이라 여겨진다. 주지하듯이 동양회화는 전통적 가치를 대단히 중시하며, 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어진 법칙과 규율의 조화를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 한국화에 있어서도 이러한 가치가 존숭(尊崇)되고 있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른바 동양화에서 한국화로, 또 현대 한국화로의 명칭 변경은 바로 전통적 가치에 대한 판단과 그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바로 전통적인 가치와 현대적인 가치의 충돌이자 융합이며 절충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국 서로 다른 조형관과 심미관은 물론 감상체계까지 융합, 절충하며 전에 없던 부조화의 화면을 창출해 내었다. 이는 전통시대의 획일적인 심미관이나 경직된 전통 관념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경향들로, 현대 한국화의 생생한 표정을 구성하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들이기도 하다.
작가 박소영의 작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그 시발과 전개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전통적인 수묵을 매재로 하고 사군자에서 채집되어진 특정한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조형화하고 있다. 재료와 소재로만 본다면 작가의 작업은 극히 전통적인 것으로 구분되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재료는 물론 소재와 표현에 이르기까지 고식적인 심미관이나 감상체계로는 수용되기 어려운 또 다른 조형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전통과 현대가 맞닥뜨리는 충돌의 접점이자 융합의 시발점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접점의 매개체는 바로 전통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과 번안이다. 작가는 비록 전통적인 재료와 소재를 작업의 기저로 삼고 있지만, 그것을 주관과 현대라는 또 다른 눈으로 포착하고 표현함으로써 전통이라는 기성의 틀과 꼴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일탈의 지향점은 건강한 현대회화로서의 당위성 획득에 있음이 자명하다. 작가가 차용한 재료와 소재는 조화를 지향하는 전통적 표현방식이 아님이 여실하다. 그것은 전통적인 것들 중 어떠한 것들은 이러한 당위성의 획득에 여전히 유용하고 효과적인 재료와 방식이라는 작가의 판단이 작용한 소이인 셈이다.
마치 포도송이처럼 군집을 이룬 일정한 크기의 원들과 이들을 배경삼아 표현되어진 대나무, 혹은 매화와 같은 상징적 이미지의 화면은 단출하다. 금욕적인 수묵의 표현도 그러하지만, 사군자들의 이미지들 역시 익히 익숙한 것들이다. 작은 원형의 구조들은 농담을 달리하며 무수한 변화의 양태를 내재하고 있다. 번지고 스며드는 수묵 특유의 물성을 십분 살린 이러한 설정은 작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무작위적인 것이고, 기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우연적인 성질이 강한 것이다. 물론 이는 철저하게 작가의 작업의지를 반영하며 설정되어진 것이겠지만, 작가는 스스로의 작의와 재료의 물성을 구분하며 그 특성을 조형으로 수렴해 내고 있다. 이는 재료를 단순한 표현의 방편이나 매개의 수단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니고 있는 물성 자체에 대한 용인이자 인정이라 할 것이다. 이질적인 재료를 차용하여 수묵의 물성을 십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이러한 사유의 반영이자 강조라 할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수묵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사군자라는 극히 오랜 형식의 차용을 통해 전통과의 일정한 연계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고 반복적인 작은 입자들은 제각기 다른 양태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이를 소우주라 풀이한다. 당연히 소우주의 집합은 대우주가 될 것이며, 그것이 이루어낸 형상은 공교롭게도 포도송이와 매우 흡사하다. 화면의 작은 입자들은 유사한 모양을 띠고 있지만 제각기 다른 수묵의 표정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전체의 부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표출되어진 수묵의 심미는 유현(幽玄)함만을 추구하는 전통의 고루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목적과 의미를 지닌 보다 적극적인 조형 요소로 해석함이 옳을 것이다. 이는 결국 전통적 수묵관과의 부조화를 통한 새로운 가치의 발현이라 할 것이다. ● 사군자는 동양회화의 표현방식 중 비덕(比德), 즉 사물의 형상을 빌어 특정한 의미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예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자의 덕목을 상징하는 사군자는 그만큼 전통적 상징성이 강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작가의 화면에 등장하는 사군자는 일정 부분 전통적인 운필과 조형성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군자의 덕목을 상징하는 대나무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자연(自然)을 은유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는 상투적인 읽힘의 사군자가 아니라 또 다른 은유와 상징으로서의 이미지인 셈이다. 결국 작가는 기성의 사군자라는 상징성 강한 소재에 대한 의미의 재해석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번안의 내용들이 조형의 요소로서 작용할 때 그것은 이미 사군자라는 도식적 해석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또 다른 상징과 은유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는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보여 지는 것으로, 기성의 이미지에 대한 의미의 부조화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수묵이라는 전통적인 재료가 지니고 있는 정신적 가치의 강조에서 벗어나 물성을 십분 살린 조형 매재로서의 수묵과, 정형화된 상징으로 읽혀지는 사군자가 아닌 자연으로 해석되는 이미지의 번안은 작가의 설정에 따라 또 하나의 질서를 구축해 낸다. 그것은 삼라만상의 변환을 내재하고 있는 대우주의 형상화일 수도 있으며, 작가가 말한 바와 같이 자연의 또 다른 조형적 양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전통에 대한 일종의 재해석, 혹은 재발견인 셈이다. 이러한 노력과 실험은 결국 현대 한국화의 보다 다양한 표정을 연출해 낼 것이며, 이는 한국화의 전통을 더욱 풍부히 하는 가치 있는 실험이자 모색이 될 것이다. 작가 역시 전통과의 긴밀한 연대를 바탕으로 점진적이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변환을 도모하고 있다 여겨진다. 이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작가는 근본과 말단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지향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것은 전통에 대한 경직된 이해나 고착화된 해석이 아닌, 현대미술로서의 생명력을 지닌 건강한 한국화에 대한 신념이 전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파괴적인 조형이 난무하고 개성의 무제한적인 발산이 용인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화는 점차 미망의 늪으로 빠져 들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염두에 둔다면 작가가 지향하고 있는 점진적이며 안정적인 실험과 모색은 분명 오늘의 세태에 일정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이제 점차 보다 치열한 것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그 성과와 추이가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조형적 성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 한국화가 처한 민감한 접점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김상철
Vol.20090203d | 박소영展 / PARKSOYOUNG / 朴昭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