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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21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2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풍경조각, 조각으로 표현한 마음의 풍경 ● 정광식의 작품에는 화면공간을 가로지르며 유유하게 흐르는 강, 넓게 펼쳐진 들판, 굽이치는 산맥이 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 속에 조밀한 건축이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나는 새가 세상을 내려다본 시점인 조감법(鳥瞰法)으로 그려놓은 풍경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려는 듯 그는 전시장에 환조로 만든 새를 매달 계획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깎아 만든 것, 즉 회화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조각이다. 두께가 얇은 오석 판석의 표면을 그라인더를 비스듬하게 뉘어 켜고 잘라낸 틈과 요철을 활용한 그의 작품은 그 텍스추어 자체만으로도 대지의 결을 떠올리게 만든다. 비록 기계로 긁어낸 것이라 할지라도 오랜 세월의 지각변동, 융기와 침식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과 같은 흔적은 대지에 난 상처이자 자연이 만들어낸 웅장하면서 오밀조밀한 대지의 피부와도 닮아있다. 혹은 바람에 출렁이는 바다의 수면과도 같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자연현상이 만들어낸 풍경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작품 자체가 풍경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판석의 표면을 채색하지 않았다면 사람이 만들어놓은 도시의 풍경이 아니라 자연에 생성된 태초의 풍경을 떠올리게 만들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라인더로 긁어낸 판석은 비록 패인 곳의 깊이가 조금씩 다르다 하더라도 두께가 일정하기 때문에 마티에르가 풍부한 추상회화, 즉 추상표현주의나 앵포르멜 회화와도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작업은 돌의 표면을 긁어낸 자국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추상으로부터 풍경으로 발전했다. 추상작업의 경우 가장자리가 뾰족하게 튀어나온 무수하게 많은 부분들로 구성된 입방체이지만 텍스추어가 덩어리를 압도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추상작업을 추구하던 그가 풍경이 있는 조각으로 방향을 선회함으로써 그는 회화적 조각이란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표면에 입체감은 살아있지만 일정한 두께를 지닌 판석을 연결하여 거대한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부조에 속한다. 특히 긁어낸 흔적에 머무르지 않고 채색을 하였기 때문에 더욱 회화에 가까운 부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그라인더로 갈아낼 때 운동의 방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판석의 표면에 남아있는 형태는 작은 입방체인 경우가 많다.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이 작은 입방체의 표면을 채색하여 수많은 건축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 도시, 마을, 도로가 나타난다. 이런 점은 작품의 회화성을 더욱 고양시킨다. 강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들은 왠지 한국적 풍경이라기보다 유럽의 어떤 도시를 연상시킨다. 혹은 황량한 고원지대에 세워진 건축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풍경은 특정한 지역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서의 풍경이자 그가 추구하는 방법에 의해 산출된 마음의 풍경이기도 하다. 그것도 멀리서 바라본 풍경, 즉 대상과 상당한 거리를 둔 풍경이다. 여기에서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관조하려는 그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이런 풍경조각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을까. 그 단서를 이 회화적 조각이 지닌 무대성에서 찾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그는 이탈리아로 유학 가서 무대미술을 전공했다. 귀국 후 다시 조각으로 돌아왔지만 이 경험은 그에게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는 시점에 영향을 미쳤음에 분명하다. 한동안 추상조각을 하면서도 건물이나 건축이 있는 도시풍경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어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특히 그가 조각에 채색을 도입한 것은 무대미술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무수한 그라인더 작업으로 생긴 표면을 채색함으로써 산과 강이 형성되고, 그 속에 마을을 집어넣음으로써 작품은 무대의 거대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그 자체 자기완결성을 지닌 독립된 조각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자연과 도시가 조밀하게 집합해 있는 그의 풍경조각에서 인간의 모습은 나타나고 있지 않으나 빼곡한 건물들을 통해 그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마치 구글 어스(google earth)를 통해 미세한 지형지물을 관찰할 수 있듯이 우리는 멀리서 그의 작품을 거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줌인하듯 그의 작품 속으로 다가가 그 표면과 접촉할 수 있다. 이때 조밀한 구조가 자칫 보는 사람의 시선을 답답하게 할 수도 있으나 화면을 가로지르는 강줄기는 우리의 시선을 사각의 틀 속에 가둬놓지 않고 개방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음의 고저, 강약이 주는 심미적 효과처럼 그의 작품 역시 밀집과 분산, 응축과 확산에 의한 시각적 긴장과 이완이란 심미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화면을 분할하는 강줄기나 넓은 강물의 흐름은 바로 우리의 시선이 따라 흘러갈 수 있는 길이자 그라인더가 만들어낸 조밀한 터치에 활력을 불어넣는 숨통이다. 만약 이 흐르는 강물이 없었더라면 넓은 화면이 불러일으키는 '공간공포(horror vacuum)', 즉 빈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구성 때문에 개방적인 공간감은 결여되었을 것이다. 닫힌 구조 속의 열린 틈, 그의 작품은 이 틈 사이에 실재하는 작은 풍경을 보는 재미도 있다. 결론적으로 촉각을 통해 재료의 질감을 경험하도록 유혹하는 미세한 균열 사이에 펼쳐지는 작은 풍경과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려진 대경산수(大景山水)와도 같은 거대풍경이 공존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텍스추어와 마티에르가 풍부한 올 오버 릴리프(all-over-relief)이자 회화성을 지닌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 최태만
Vol.20090202f | 정광식展 / JUNGKWANGSIK / 鄭光植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