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130_금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풀_ALTERNATIVE SPACE POOL 서울 종로구 구기동 56-13번지 Tel. +82.2.396.4805 www.altpool.org
쉬... ● 이십 일세기가 시작된 지 이미 8년이 지났건만 우리 사회가 터부를 주제로 다루는 작가에게, 특히 그 사람이 여성이라면 그 여성에게 보내는 눈길은 더더욱 껄끄럽기만 하다. 과거 이은실 작가 작업의 소재들 또한 자극적이어서 그의 그림을 보고 야하다며 눈살을 찌푸리고 눈을 돌릴지 아니면 예술이니 해석을 해보리라 마음을 굳힐지 고민 하게한다. 갓을 쓴 조선시대 양반이 홀딱 벗은 아랫도리를 보이며 노상방뇨를 하거나 사정이 끝나고 성기를 늘어뜨린 모습, 머리가 풀어헤쳐진 알몸으로 물위를 떠다니는 여(자시)체, 썩은 듯 보이는 징그러운 내장, 페티시적으로 한 올, 한 올 자세히 그려진 털, 피를 흘리거나 발기되어 핏발이 선 붉은 동물의 성기 등이 주를 이룬다. 그녀의 2005년 작 「정말! 다들 화끈하게 일어나고 있잖아!」의 화면 여기저기에서는 부둥켜안고 있는 여러 쌍의 남녀들이 그려져 있으며 2006년 작 「대치」에서는 발기된 남성의 성기를 가진 여자와 남자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작가는 성행위가 일어났고 성욕이 분출되는 장면을 대면해야 한다는 불편한 상황에 대하여 우리에게 탈출구를 주고 있다. 화면의 맨 앞쪽에 전통가옥의 열린 문과 문지방을 그려주어 관객이 그림 안에 참여한다기 보다는 그 장면을 훔쳐보는 관음적인 위치에 놓아두고 그림에서 벌어지는 상황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도록 허락한다. 이 거리 두기의 배려는 작가에게도 해당되는 듯하다. 「대치」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모두 남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어 무슨 행위가 일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이며 더구나 이들의 얼굴 모습 또한 그려져 있지 않아 벌거벗은 두 남녀의 상황이 어떻다는 작가의 주장보다는 부각시키려는 부분이란 맞아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불편함이라는 의도가 보인다. 그리고 거리 두기가 있기에 우리는 그의 그림을 춘화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성욕너머의 이야깃거리를 주는 즉, 남녀간의 성 역할을 논하는 페미니즘 예술로 분류하고, 동물과 인간들의 속성을 가르는 구조화된 전통건축공간의 역할을 논하며 이를 위해 채택된 동양화 기법들이 동시대적 전략이라는 담론을 시작할 수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젊은 모색』전과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신작들은 작가가 이제 성, 욕구의 분출과 이를 터부시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반항적인 입장의 직접적 표현에서 떠나 자신의 정체성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그녀의 여정에는 예의 거리 두기를 위해 위치했던 문지방과 전통가옥 등 건축적인 요소들이 발견된다. 그 건축물들은 터부로부터 우리를 가르는 장치며 동물이 아닌 인간이 이상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온 사고의 결과물인 사회규범을 은유 한다. 그리고 규범은 구조적으로 맞물려진 관습의 현현일 수밖에 없으므로 전통가옥의 형태를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보는 이들의 심정을 불편 하게하는 미학은 한동안 이은실의 작업세계와 함께할 듯하다. 이번 연작에서도 전통가옥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동물의 형상이 등장한다. 무슨 동물인지 알 길이 없는 이 동물은 항문을 하늘높이 뻗쳐 들고 있으며 항문과 그 안쪽으로는 내장이 들여다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통가옥이 동물의 뱃속에 연결되어 들어앉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전 작업과는 달리 이러한 동물이나 내장의 형태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안료를 종이에 흡수시키는 붓 터치를 여러 번 겹쳐 표현하였기 때문에 내장의 디테일한 표현이라는 것이 감이 잡히지만 그 정확한 모양새가 쉽게 드러나지는 않고 음습한 분위기가 강조된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연작에는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도 엉덩이를 치켜들고 반쯤 투명해진 자신의 뱃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상황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진실을 들춰내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으로 사용돼왔다. 어느 정도 관객공격적인 이 전략은 폴 매카시와 마이크 켈리 등 미술사에서 대를 이어 채용되어온 접근방법이다. 폴 매카시의 충격적인 이미지 중 하나인 「Cultural Gothic」(1992)을 예로 들면 이 작업은 아버지가 밥투정을 하는 아들에게 억지로 음식을 깔때기로 먹이는 행위를 담은 비디오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가학적인 관계를 폭로하고 있다. 「Heidi」(1992) 작업에서는 우리의 천진난만 소녀 하이디가 할아버지와 함께 변태적 배설행위의 일원이 된다. 폴 매카시는 하이디라는 너무나도 친숙한 동화 속 여주인공을 우리에게 알려진 이미지와는 정반대되는 더럽고 천박하며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인물로 설정하였고 따라서 『알프스소녀 하이디』를 통해 서술되어온 권선징악과 같은 사회규범이 재 각인되는 cultural conditioning과정에 역류하고자 한다. 이은실에게 이 역류는 자신이 꾹꾹 눌러오다가 한 순간에 게워낼 수밖에 없다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동물적 행각의 표현이며 그리고 부분적으로나마 이대범이 말하는 '소문'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터부이고 이번 작업에서도 우리를 또다시 공격하는 불편함이다.
건축물이 전통과 사회규범을 상징한다면 건축공간, 특히 사회에 자리매김을 하는 정체성 찾기 중인 작가에게 건축 공간은 작업의 주요 동기가 된다. 건축물이 화면상에서 다루어지는 방법은 작가 자신의 입장이 될 것이고 화면 위에서 건축물이 존재하는 공간은 자기 포지셔닝의 현장이 된다. 그러므로 작가의 이전과 최근 작업의 공간처리를 비교했을 때 발견되는 차이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이전 2005년을 전후로 하는 기간의 작업을 살펴보면 건축물은 화면이 전달하는 터부와 관객 사이에 위치하는 경계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었다. 그러다가 「Stuck」과 「Take Off」에 소개된 공간은 전통 건축물은 좀더 입체적인 구조로 변하지만 희미해져 사라져가는 존재로 진화하였다. 반면에 이번 「Neutral Space」연작을 구성하는 각각의 화면에는 조각난 한옥의 부분들이 다시 견고한 형태와 윤곽을 유지하고 있으며 구조를 보면 닫히지도 혹은 열리지도 않은 초현실적인 조합으로 이루어져있다. 전체적 화면에서도 초현실적인 경향으로의 전환이 발견되는데 이전의 화면이 이미 완료된 사건의 현장을 스냅샷으로 기록한 듯한 찰나적 성격을 가졌다면 최근의 작업에서는 초현실적 시간성이 더해지고 있다. 동물로 보이는 형상이 포함된 방안 공간과 복부의 이미지로 표면 처리된 마루공간, 자물쇠가 굳게 잠긴 대문 등 여러 개의 공간이 한 화면을 나누어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공간끼리의 관계가 두 번째 세 번째의 화면으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 「In to the…」작업에서는 털이 무성한 풍경이미지의 한 부분을 줌 인으로 확대하여 바라보는 두 번째 화면으로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변화들이 야기하는 바는 관객들은 화면의 전경과 근경, 원경을 넘나들며 감상 하는 구조를 가진다는 것이다. 화면 안에 등장하는 인물 또한 가만히 서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몸 속을 바라보거나 허물을 벗어가는 등 화면을 바라보는 이나 화면 속에 위치하는 형상이나 이 모두 시간의 경과를 포함한다. 이것을 영화적으로 해석하고 동시대성과 연결할 수도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지점은 작가가 시간성을 부여함으로써 화면에 초현실적인, 내러티브를 확립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러티브는 액션을 포함하는 진행형임에 틀림없다. ■ 신현진
Vol.20090123b | 이은실展 / LEEEUNSIL / 李銀實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