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개의 끓는점

2009_0114 ▶ 2009_0201

이혜인_Shelter-Boat_캔버스에 유채_145×29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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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114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이소_이현민_이혜인_정혜진_허남준

관람시간 / 10:30am~09:00pm

갤러리 쌈지_GALLERY SSAMZIE 서울 종로구 관훈동 38번지 쌈지길(아랫길 B1) Tel. +82.2.736.0900 www.ssamziegil.com

갤러리쌈지는 2009년 새해를 맞이하며 『다섯 개의 끓는점』展을 마련합니다. 본 전시는 마치 물질이 특성에 따라 저마다 다른 고유의 끓는점을 갖듯이 각자의 성향을 작품 속에 표현하는 각기 다른 작가들을 함께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본 전시에는 회화, 오브제, 관객참여 작품, 아카이브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다섯 명의 젊은 작가들이 참여합니다. 이들은 또한 소통과 단절, 지나간 것의 무게와 그것에 대한 외면, 일상을 낯설게 보는 관점, 한계와 그것을 초과하는 부분 그리고 행위로서의 미술 짓기라는 저마다 다른 주제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삶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소_Fortune Cookie_홈베이킹 쿠키재료_각 5cm_2008 이소_순환하는 이야기_뽑기 기계_114×53×53.5cm_2008

'물이 끓고 있다.' ● 일상의 반복이란 물이 끓어가는 상황과 식어가는 상황, 그것의 반복주기와 같을 것이다. 액체에서 기체 상태로 격렬히 탈바꿈하는 것은 삶에서 추구하던 목표가 현실화되는 순간과도 비교할 수 있다. 흔히 창작활동은 '제멋대로'라는 낙인으로 그 어떤 체계나 원리의 실마리도 캐낼 수 없는 요지경으로 치부되곤 한다. 이는 창작활동 내에서도 끓는점과 같은 목표점에 도달하는 고양의 순간을 일상에서의 흐름이나 자연적인 원리를 벗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작가들은 마치 물질이 저마다 다른 고유의 끓는점을 갖듯이, 자신들의 성향과 관심사에 따라 각기 다른 작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만의 끓는점에 도달하기 위해, 작업 안에서 연습과 실패를 거듭하며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편 높은 산에서는 낮은 온도에서도 물이 끓는 것과 같이 개성을 지닌 작가들 또한 외부의 환경적인 영향에 부딪히고 반응하는 자신들의 모습에서 정체성을 발견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들은 끓어오르기 위해 각자의 상황 속에서 최고지점을 향해 발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다섯 명의 작가들이 끓고 있다.'이 소는 서로 소통되는 것 같기도 하면서 단절되기도 한 사회 속에서 개인의 존재적 크기를 가늠해보는 작업을 한다. 그것은 어떤 문구에 대한 '리플'을 적는 쪽지가 들어있는 '뽑기 기계'를 통해서 단절된 듯한 독백이 모여 대화가 되는 사회적인 실험으로 드러난다.

이현민_두 사람_캔버스에 목탄과 유화_63×66cm_2008

이현민은 음식 찌꺼기가 놓인 쓰레기통 앞에서 악취에 고개를 돌리기보다는 그것이 놓여있는 형태 자체가 우주 속 같다고 느끼면서 한참을 바라본다. 일상 속에서 익숙한 장면들을 바라보는 시점을 조감도로 이동하여 타자의 관점으로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그는 순간적으로 외계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낯선 존재감에 천착하면서 시공간적 개연성에 대해 의문어린 시선으로 상황을 시각화한다. 이혜인은 아버지가 지으셨던 어린 시절의 집이 하루아침에 아파트 증축현장으로 변하면서 사라졌던 순간을 기억한다. 지나간 것들에 의해 일구어진 적층구조가 현실적인 당위를 이유로 표정 없이 파괴되는 순간을 표현하며 역사를 부정하는 경시적인 풍조와 냉혹한 현실들을 드러낸다.

정혜진_토끼풀꽃과 실패_석고, 밀랍, 철사_26×55×8cm_2008

정혜진은 한계와 그것을 '초과'하는 부분 혹은 막힘과 뚫림이 늘 공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패'라는 단어를 이루고 있는 피어난 토끼풀 송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일반화된 개념의 이면에 존재하는 현실의 다채로움을 보여주는 한편 미니멀한 입체작업을 통해 재질과 형태의 특성을 이용하여 공간과 또 다른 공간이 만나는 지점을 모색한다.

허남준_TEXTCUBE_비닐에 아크릴채색_6×6×6m_2008

허남준은 오랜 기간 부각되지 못한 작가로 살아가면서 계속 작업을 지속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지만 매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최근 들어 아카이브라는 형식으로 통해 관객에게 작업의 결과물 뿐 아니라, 그리는 행위자체를 보여주려 한다. 그는 갤러리에 상주하면서 관객에게 그림 그리는 모습을 노출하여 관객에게 화가라는 특수한 직업 자체를 예술적 행위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 작품 속에 드러난 삶에 대한 다섯 작가들의 관점은 비단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타들어가듯 살고 있는 우리네 일상에서 느껴봤던 순간들이기도 하다. 지난 한해 어떤 약속이나 자신의 목표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그것들이 한 해를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던 이유였다면 이제 또 새해의 문을 열며 다시 끓어오를 순간들을 맞이하기 위한 숨고르기를 해야 할지 모른다.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 속에서 관람객들은 삶과 인생에서 느끼는 체온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최하린

이소_기억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_영상_2008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행동, 의견들이 교환/순환되면서 자라나는 공감 혹은 단절과 같은 관계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사람들은 타인과 비밀이나 고민을 공유하며 친해진다.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행위는 자신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일차적인 방법이며 그만큼 많이 수행되며 이러한 대화를 통해 서로 위안하거나 다투면서 새로운 사회적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문득 이러한 '이야기하기'에 회의감이 들었다. '언어의 불명확성' 때문이나 '완벽한 소통의 불가능함'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사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왜곡해서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말하고 싶은 것을 숨겨두고 표피만을 말하고 있는 느낌, 편지를 쓴다는 것은 일상적인 말하기 행위와는 구별되는 무엇이다. 일대일의 사적인 말하기이며 따라서 일상적 말하기보다 감정적이고 비밀스럽다. 이러한 행위를 익명의, 한 방향의 소통 방식으로 만들면 어떨까. 상호교환적인 소통방식이 놓치는 다른 진실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 이소

이현민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8

나는 그림을 그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은 어떤 것의 전면 혹은 가시적인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들은 특정한 순간, 특정한 것들로부터 환기되는 물렁한 느낌, 정의하기 어려운 뒷면의 존재들에 관한 것이다. 간혹 이상한 기분이 드는 순간, 생경하며 이물스러운 느낌에 휩싸이거나 멍해지는 순간,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는 판단 불명의 시간, 착각과 환영의 순간들이 거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을 발견하고 포착하는 일, 그것을 작품의 형태로 제시함으로써 끊임없는 신호를 전송하고 또 다른 느낌들을 환기시키는 것이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이다. 자연 풍경은 종종 내가 흥미로운 신호들을 포착하는 경험적 공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착륙하지 못하고 떠도는 잔상들, 내몰린 욕망, 철 지난 사람과 온갖 쓰레기와 수상한 사람들과 아픈 역사들이 깃든 은유적인 공간으로 전유되기도 한다. 그림 뿐만이 아니라 여러 형식의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물이나 숲, 저조도의 배경이나 장치들은 그런 풍경의 변주라고 할 수 있다. ■ 이현민

이혜인_이웃과 지우기_캔버스에 유채, 연필_100×240cm_2008

나의 작업은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세상을 떠나 버린 것들을 소소하게 기억하는 가운데, 그것들을 무참히 짓밟고 마는 현재의 소비지향적 시스템 안에서의 개발의 행위, 길게는 자연의 시간을 함께 생각한다. 'Shelter-Boat'는 공사를 위해 파헤쳐진 땅의 모습이 배의 형태를 띠고 있는 모습을 보며, 움직이지 않는 땅이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았을 때 '우리 주변의 물리적 환경이라는 것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가라는 생각 속에서 그린 것이다. 배 안의 유기체 같이 보이는 붓의 흔적들은 땅을 파 내려가는 행위를 희화적 표현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러한 방법이 명확한 언어로 설명될 수는 없지만 그림 안에서 만큼은 필연적이며 명확한 언어로 고착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웃과 지우기' 또한 사라진 이웃을 기억하며 그들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어떤 흔적으로 남게 된 것이다. 나는 무엇을 그려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 않고 이 그림을 출발했고, 내가 무엇을 그리려고 하는가라는 생각의 과정을 따라가다가 멈추었다. 두루뭉수리 한 생각들을 '아니다'라는 부정을 반복하다가 남겨진 결과물이다. ■ 이혜인

정혜진_병_석고 과슈, 밀랍_120×80×3cm_2008

사무엘 베케트의 소설 '몰로이'에서, 숲에서는 똑바로 간다고 믿지만 사실은 돌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몰로이는 숲에서 돌게 될까봐 완전히 똑바로 걷지 않는다. 그렇다면 몰로이는 돌지는 않았고,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숲에서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한참 기억의 문제를 가지고 심적 공간, -마음의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는 듯-하는 일에 몰두해온 나의 작업시기에 그 공간을 숲으로 옮겨가게 했다. (중략)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경험들이 담아진 작업들은 삶을 이리저리 재보고, 망원해보고, 돌려보고, 써 내려가는 도구가 된다. 도구들은 다소 두루뭉술하고 막연한 감정상태, 삶을 바라보는 태도로 커지기도 한다. 두루 한데 뭉쳐서 나의 존재감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은 벗어나야 할 숲이기도 하다. 이것은 작가로서 개인적인 고민과 의식이 포개어진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재현한 물리적 작품들은 작가, 그리고 관람자의, '어떤 차원의 공간'을 제시하도록 의도하였다. 지극히 구체적인 것에서 막연한 범위로 커진 '어떤 문제'들은 숲을 이루고, 우리는 그 안팎에 있다. 전시의 제목은 숲을 돌지 않고 바로 나가기 위해 조금씩 똑바로 걷지 않는 것을 머리로 따라가며, 당시 상당히 복잡한 공간 감각을 경험하면서 메모해둔 것이다. ■ 정혜진

허남준_JET ECH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100cm_2008

다양한 이미지의 단편들을 재조립해 그려진 그림의 전체 형태를 추상의 목적으로 이끄는 것, 그러니까 반항의 제스처 속에서 무언가 긍정적인 것,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해 내려는 것, 의식의 환기이자 실천, 교시적인 약호의 집합체, 감성의 고고학적 낙서의 양식, 그린다는 것의 순수한 기쁨의 형태, 동물과 인물들의 변형체로 구성된 야릇한 세계, 유아적인 퇴행, 철부지의 분방함, 악취미의 숭배, 솜씨의 소홀함, 반복적인 양식에 리듬의 부여, 자전적 요소, 오락기구, 추억의 편린, 기억의 삽입과 혼합, 문화적 혼선, 공격적이지만 기본적으로 우스운, 다양한 형태의 왜곡, 원시적이고 관능적이며 유희적인 세계, 소녀 예술가, 야심만만, 강박관념이 된 취급의 자유로움과 유연성, 그것을 탐닉하는 취향, 비판적인 반작용, 그러나 친밀한, 단지 그린다는 즐거움만으로 자족하려는 그리기 위한 명목의 다름 아님, 이것이 그림이다. ■ 허남준 □ 허남준 아카이브 2009_0114 ▶ 2009_0201 / 11:00am~09:00pm / 04:00pm~05:00pm 제외

Vol.20090114b | 다섯 개의 끓는점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