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204_수요일_05:30pm
주최_micropop69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_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www.ganaart.com
프랑스의 동부 도시 낭시 (Nancy)의 마지노 (Maginot) 광장, 14살의 모리스는 처음으로 데생을 5프랑에 팔았다. 빅토 위고 (Victor Hugo)가 인쇄된 푸른색의 지폐였다. "곧바로 물감을 사러 갔지요" 브르죠아지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주 일찍 쫓겨났다. '미운 오리 새끼'가 그랬던 것처럼...
1971년에 뚤르즈 (Toulouse) 보자르 (Beaux-Arts)에 입학했지만 별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훈장 중의 훈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서 독학을 한다. 바르샤바(Warszawa)학파의 색채학(chromatology)과 정신색채학(psycho-chromatology)연구에 이끌린다. 그는 광학 효과, 색채의 리듬과 역동성 등 빛에 관하여 작업하여 심리학자와 정신분석가들의 호응을 받았다. 이러한 이론들을 단순하게 적용하기로 한다. 마치 화제(畵題)가 기계를 통한 자동적이고 획일화 된 방법이 아니라, 인간에 의하여 파쇄(破碎)되어 버린 것과 같은 '형태의 무작위적 분해'를 추구한다.
1973-1974에는 전산적 방법을 활용하여 파쇄된 화제의 합성능력을 제고하지만, 컴퓨터에 의한 방법보다는 인간의 섬세한 방법을 더 애호한다. 그의 정밀한 연구는 자신을 수양하고 앞으로의 발전을 향한 바탕을 마련한다. 그 결과, 그는 안정을 찾고, 미적 추구보다는 생동감을 더 추구하게 된다. 1973년에는 라 호쉘 (La Rochelle)에서 처음으로 그 동안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추상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아직 크뤼즈 디에즈 (Cruz Diez), 소또 (Soto), 바자렐리 (Vasarely)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아직 자신만의 스타일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추상이라는 분야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분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활동을 연구실에서 연구 활동하는 것과 비교한다. 끊임없이 자신이 파쇄시킬 인물에 대한 그림보다도 정확한 이미지를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화제 [人物]는 캔버스 전체에 파열되어 나간다. 파열은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대를 이룰 때까지 여러 단계의 순서를 거쳐서 펼쳐져 나간다. 그는 자기가 방황하지 않도록 자기의 작업에 집착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지를 여행하며 지성인들로부터 물질적 또는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으나, 발병으로 인하여 작품활동과 연구를 그만 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80년대에는 병으로부터 회복하여 영화, 발레, 오페라 분야에 기여하고, 음악 조명에 관심을 가졌다. 1990년에 병의 재발로 인한 치료를 위하여 약 10년간 은둔생활을 하였지만, 그는 이 기간 동안 자기 주위와 자기의 화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다. 이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상상력과 통찰력의 표현이 탄생하였다. 정화된 화면과 감성적 표현이 강화된 인물의 역동성... 등 작가의 한층 더 성숙한 면을 보여준다. 여러 나라로부터 전시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드와(Douard)의 언어'는 문화에 관계없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35년간 그는 작업과 전시에 몰두하고 있으며, 그림 외에도 장식, 음악 조명 및 대형 벽화를 실현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빛에 대한 열정을 가진 두와는 광학효과에 관하여 작업을 해왔으며, 이를 통하여 '시각예술적 분해'를 이룩하였다. 입체감은 해체되고 재구성되어 주제로부터 역동성과 감성적 반응을 느끼게 한다. 이를 통해 그는 그림의 주제들의 육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 그들의 광채, 그들의 공간이동을 표출하는 것이다. 물질의 실체적 형상의 장막을 지난 저편, 즉 형이상학적 시공을 표현하는 것이다." ■ 안-마리 베르저레(Anne Marie Bergeret)
Vol.20090112d | 모리스 드와展 / Maurice Douard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