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107_수요일_06:00pm
2009 갤러리 쿤스트라움 기획전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쿤스트라움 KUNSTRAUM GALLERY 서울 종로구 팔판동 61-1번지 Tel. +82.2.730.2884 www.kunstraum.co.kr
닫혀있는 공간, 사물함이나 닫힌 문 뒤, 막혀있는 벽 뒤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이 생길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공간을 들어내 보이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공간의 경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건물이라는 '드러나지 않음'의 속성을 가진 대상에 주목하여 작업한다. 건물을 짓는다. 벽을 만들며 공간을 형성한다. 그 벽들은 유리처럼 투명하진 않지만 벽 뒤 공간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유리벽처럼 확실하게 안 과 밖을 구분 짓지 못하고 모호한 경계를 형성한다. 이런 모호한 벽들이 만들어낸 안과 밖으로 구분되지 않는 또 다른 공간들이 서로 충돌하고 중첩되어 건물의 구조를 쉽게 알 수 없게 한다. 이런 벽들에 빛이 투영됨 으로 공간의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그림자가 다른 건물에 맺히고 서로 다른 건물의 그림자들이 뒤섞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마치 격자의 모눈종이에 그려진 평면도가 고층빌딩의 거대하고 복잡한 공간을 종이 한 장에 담고 있듯이 전시장 안의 모든 공간들은 경계가 허물어져 그림자로 응축되어 벽면에 그려진다. ■ 김병주
확장된 장에서의 모호한 경계_Ambiguous Wall in the Expanded Field ● 작가 김병주의 작업은 일견 근대 건축가들의 고민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예컨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제창한 '자유로운 평면(Plan Libre)',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제시한 '보편적 공간(Universal Space)'과 함께 근대 건축사상 중요한 공간 이미지를 창시한 아돌프 로스(Adolf Loos)는, 건축이 시각 매체의 영향 아래 대상화되고 시각적 경험으로만 전락하는 것을 염려하며 실재 건축과 사진 이미지 사이의 혼동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표명하였다. 이를테면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의 실내가 사진으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점을 강조하며 '라움플란(Raumplan)'이란 개념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평면을 기능적으로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3차원의 공간에서 각 방의 공간을 추출해가는 접근방법이었다. '라움플란'은 평면, 입면, 단면 등의 설계도상 공간이라기보다 신체적 체험의 공간에 가깝기 때문에 자연히 2차원의 도면과 사진으론 잘 포착되지 않았던 것이다. ● 한편 공교롭게도 작가 김병주의 궁금증은 이렇듯 닫혀있는 공간 너머의 숨겨진 공간성에 관한 것이었다. 사물함 같은 작고 일상적인 공간의 닫힘에서부터 실내의 문 뒤나 막혀있는 벽 뒤의 드러나지 않는 공간성에 주목하였고, 급기야 이러한 감성적 호기심은 '집', '건물', '건축' 등의 견고한 물질적 구축성을 갖고 있는 대상의 속성을 파악해보려는 시도에 이르렀다. 근대 건축가들의 지난한 여정과 마찬가지로 작가 김병주는 '평면', '공간성', '시각성' 등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최근의 작업적 화두로 삼아 자신만의 언어로 진솔하고 분명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근작들은 그에 대한 일단의 증명으로 기능하며, 작품의 제작방법에서도 이전의 조각적 전통인 석재, 목재, 금속 등의 전통적 매체의 연장선상에다 다양한 매체를 덧입히는 식으로 지위를 확장하였고, 역시 그간 조각에서 자주 다루어졌던 '선', '면', '공간' 등의 문제를 새롭고 도전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 김병주의 근작을 자세히 살펴보면, 건축의 내외부에 숨겨져 드러나지 않았던 물질성을 환기시키려는 답변과 함께 보다 높은 층위의 질문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의 작업을 외부에서부터 접근할 경우, 건축현장에서 건물을 시공하기 전 모듈러를 활용하여 가로세로로 엮어놓는 이른바 '아시바(scaffold)', 즉 '가설비계' 묶음의 표현처럼 보여진다. 반대로 내부에서부터 접근할 경우에는 건물의 '덕트(duct)', 즉 전기나 기계 등의 '설비배관'을 노출한 것처럼 볼 수 있다. 아울러 작품에서는 입면상 창문의 위치와 크기를 확인할 수 있으며, 작품 내부의 계단과 가벽의 표시는 건물의 단면을 드러내는 중요요소로 기능한다. 물론 이것은 그가 말하는 '모호한 경계'를 기준으로 단순 적용해 본 판단이며 그의 작업에 대한 표면적 접근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작가 김병주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안과 밖의 모호한 경계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이미지의 재현에 관한 상황인식이기 때문이다.
작가 김병주의 작업은 단순히 '건물을 짓고 벽을 만들며 공간을 형성하는' 것과 그것에서 연유하는 모호한 경계를 짓는 벽들이 관계하며 만들어내는 시각적 교란만이 전부가 아니다. 작가는 '모호한 벽들이 만들어낸 안팎이 구분되지 않는 공간들이 서로 충돌하고 중첩되어 건물의 구조를 쉽게 알 수 없게' 함으로서, 건축의 강력한 구축성을 해체시킨다. 더불어 '벽들에 빛이 투영됨으로 공간의 그림자를 만들고 그림자가 다른 건물에 맺히고 그림자들을 뒤섞어' 건축 고유의 응축된 평면적 공간감을 표피적이고 은유적인 입면 이미지 정보로 전달한다. 실제 건물의 가상 투시도처럼 보이는 그림자는 새로운 이미지로 재현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건축 본래의 물질적이고 실제적인 본질이 지워지고 사용되는 용도와 방법에 의해 재맥락화되는 의미의 생산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의 모호한 경계는 오히려 경계 자체를 흔들고 있으므로, 흔들림이 멈춘 뒤에 어떠한 형상으로 재구축 혹은 재맥락화될 지, 그의 선택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진실이 경계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 김회철
Vol.20090103b | 김병주展 / KIMBYUNGJOO / 金昞周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