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9_0109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30pm / 백화점 휴무시 휴관
롯데갤러리 본점 LOTTE GALLERY 서울 중구 남대문로2가 130번지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9층 Tel. +82.2.726.4428 www.avenuel.co.kr/guide/guide_project.jsp
고도의 자본주의, 물질주의 시대에 종교도, 예술도 예전의 그 찬란한 광명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아마도 지금처럼 인간의 정신이 노골적으로 가벼워진 시대는 없었을 듯도 하다. 이제 '가벼움'과 '유머'는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패러다임이 되었다. 이는 미술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점차 미술의 '담론'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래 이른바 "현대미술의 풍경"은 애초에 쓴맛 없이 그저 달기만 한 초콜릿처럼 공허함이 적지 않다. 즉 시장만 있고, 예술로서 미술 자체에 대한 고민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은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 곁에 있어 왔고, 또 그래야 한다. 이런 시대상 자체가 예술의 무용론과 직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래서 더욱 그 존재가치가 빛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자연이건 종교건 예술이건 또는 사랑이건 여전히 사람들은 의지할 무엇인가와 함께 할 때 비로소 숨 가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지 않는가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 롯데갤러리의 신년특별기획 『현대미술의 풍경:마음의 표정』전은 현대미술을 보는 관점의 차원에서 미술이 담아내는 내면의 목소리에 보다 귀 기울여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착안되었다. 하지만 여러 미술가들이 그들만의 화법으로 풀어내는 속 깊은 이야기가 분명 편하게 다가오지만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충만과 행복 보다는 부재, 고독, 아픔, 그리움 그리고 이루지 못한 열망들이 더 난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내면을 감싸고 있는 날 것 그대로의 표정이기도 하다. 때로 편안함은 어설픈 가장이나 자기은폐가 아닌 솔직함에서 온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수긍하고 담담히 대처해 나갈 때 우리의 입가에도 시지프의 미소가 번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좀더 나은 삶을 위한 플레이메이커로서 예술, 즉 미술이 추구해나가야 할 하나의 유의미한 역할이다.
김시연은 집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 안에서 작가의 내면적 심리를 주로 소금과 비누를 사용해 설치작업으로 표현하고 이를 다시 사진으로 담아낸다. 이와 더불어 가위, 화분, 실, 유리컵, 양파, 두루마리 휴지 등 집안의 온갖 소소하고도 잡다한 오브제들이 그의 작업에 동원된다. 소재적 측면 외에 그의 전체적인 작업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있다면 흰색을 중심으로 한 강박적 반복과 긴장의 극대화다. 마치 아무리 작은 빈틈이라도 결코 허용하지 않을 듯 완벽하게 짜인 패턴 혹은 구축된 상황에의 집착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사적 공간이라는 바리케이트 너머 자아가 안고 있는 불완전성을 극대화시킨다.
김윤수는 오랫동안 비닐이나 골판지 등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선 보여왔다. 그는 사람들의 발바닥 모양을 본 뜨고 이를 집적시키거나, 어떤 형상을 따라 골판지를 끝없이 감아가는 등의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통해 구체적인 대상을 관념적 사유의 대상으로 이끈다. 이는 무한 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시공간의 경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으로부터 비롯된다. 나아가 적막, 반짝이는 고독, 바람의 흔적 등의 작품제목들에서 알 수 있듯이 무형의 관념을 형상화하고자 하는 그의 작업들은 구도적이기까지 하다. 다른 한 편으로 그런 일련의 작업들은 형상성에 갇힌 사유의 해방이자 자유의 심원에로의 손짓이다.
서상익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작가 자신이 영위해 나가고 있는 일상적 삶의 공간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가 속해 있으며, 또 매료되어 있는 영화, 만화, 락 음악 등과 같은 대중문화의 다양한 양상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다른 한 편으로 사자, 미어켓. 양, 하이에나 등 의인화된 동물들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차용과 우화적 화법은 서상익의 주요 전략이자, 동시대 미술의 주요 경향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런 미술행위가 단순한 자기 위안의 수단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외려 스스로의 현실 그리고 그 속의 결핍과 열망에 대한 냉정한 자기인식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은 차라리 무대 위의 광대에게 바치는 한 편의 애수 어린 희극이다.
원성원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울러 일상과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 혹은 이야기들은 그대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만의 공상에 의해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진 채 특별한 무엇으로 제시된다. 그 공간에서 집 잃은 개들은 자신들만의 안식처를 얻는다. 또 지금은 각각의 공간으로 흩어져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을 고양미술스튜디오 작가들도 다시 조우할 뿐 아니라 무릉도원으로 변화한 스튜디오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긴다. 그리고 작품 전반에서 느껴지는 사람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곧 이런 공상의 원동력이다.
이진주는 꿈의 형식을 빌어 자기 내면의 상처들을 끄집어내고 또 반복적으로 순환시킨다. 누구에게나 마음에 유폐시킨 채 켜켜이 쌓아 놓은 묵은 상처들이 있다. 혹 무슨 계기로 그 근처에라도 다가갈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황급히 발길을 돌리게 되는 기억들 말이다. 작가는 그 불편한 과거의 진실들 앞에서 발길을 돌리지 않고 되려 똑바로 응시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치유의 몸짓이 아니라 그것 자체를 자신의 일부로서 포용하고자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이유로 동양화적 형식에 담아낸 초현실적 화폭에는 담담한 슬픔이 배어난다.
허윤희는 목탄을 주요 매체로 선택하여 스스로의 내적 감정들을 담아낸다. 종이, 벽, 캔버스 그리고 일기장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남겨진 그의 드로잉들에는 존재에 대한 소박하고도 애틋한 시선이 담겨있다. 이런 이유로 목탄의 검고도, 거친 질감에는 인간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어떤 원형적이며 보편적인 상실이나 고독이 담겨 있으면서도 동시에 삶의 생동하는 뜨거움이 배어있다. 그곳에서 자연, 생명, 모성, 갈망, 외로움, 상처 등은 한데 어우러지고, 그럼으로써 포용된다. 『현대미술의 풍경:마음의 표정』전은 결국 동시대 우리의 이야기이며, 이로써 힘찬 내일을 위한 '희망' 혹은 '기원'의 편지이기도 하다. 물론 그들이 담아내는 이야기가 때로 슬프고 아픈 것이더라도, 그렇기에 예술은 또 삶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므로... ■ 윤두현
Vol.20090102d | 현대미술의 풍경:마음의 표정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