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08_1119_수요일_05:00pm
신진작가공모선정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삼청로 87(팔판동 27-6번지) 2층 Tel. +82.(0)2.739.1405~6 www.gallerydoll.com
바느질로 쌓아올린 동반자적 풍경 ● 작은 나뭇잎의 끊어질 듯 이어져 얽혀있는 섬세한 잎맥들. 작가는 섬세한 바느질로 이 같은 나뭇잎의 잎맥을 드러낸다. 섬세한 잎맥을 제외한 나뭇잎의 살갗을 바느질로 메워나가는 방식으로 하나의 나뭇잎 형상을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것이다. 나뭇잎은 하나의 나무에서 존재하는 것들이라도 그 각각의 생김새는 다르다. 마치 사람의 손금처럼 자신의 서로 다른 존재를 드러내는 듯, 잎맥들의 구조는 비슷한 듯 다르고, 각기 다른 구조의 잎맥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나뭇잎 형상들도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며 모양을 달리한다. 유기적으로 얽히고설킨 잎맥들을 따라 작가는 이렇듯 한 땀 한 땀 꿰매는 지리한 수공과정을 거쳐 다양한 표정의 나뭇잎과 같은 새로운 개체를 완성해 나간다.
이러한 작업의 가장 첫 단계가 되는 것은 특정 대상과의 만남이다. 특별히 독특하거나 튀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지닌 채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들과의 만남이 작업의 시작점이 된다. 작업의 대상은 대부분 부스러지기 쉬운 연약한 것들이다. 그녀는 대상이 되는 존재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 보다는 행위를 위해 대상을 선택한다. 무심히 지나가는 삶의 편린들은 작가의 반복된 행위를 위해 선택되는 것이다. 뾰족한 바늘로 뚫려진 구멍들을 집적해 형태를 드러내거나, 바느질을 반복하는 식이다. 그녀는 이같이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어떤 정서적 평형상태를 유지한다. 이같은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결국, 각기 다른 존재의 미묘한 차이들이다. 즉, 작가의 정서적 평형을 가져오는 반복행위는 자위의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작은 존재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바느질의 뚫는 행위는 공격성을 지니며, 한편으로 이어붙이는 행위는 치유와 결속의 의미를 담고 있다. 행위 자체가 지닌 양면성은 대상으로 삼는 자연물들의 섬세하고 연약한 속성과 결합해 긴장감을 형성한다. 사라지고 변해가는 자연을, 특히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연의 개체들을 꿰매는 행위는 사물에 새로운 속성을 부여한다. 그것은 자연과 대상을 정복자적 시각이 아닌 동반자적 시각, 즉 미세한 시선으로 다루며 단지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적 '행위' 그 자체를 통해 구현된다. 떨어지는 비와 세찬 바람 등 주변 환경을 견뎌낸 세월을 내포한 자연의 모습에서 지난한 반복을 연속해 새로운 결속을 구축하는 바느질의 가치와의 접점을 발견케 한다. 지리한 인내를 요구하는 바느질의 가치와 변화무쌍한 기후를 견뎌낸 자연물을 직조해 미세한 가치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전 작업에서 보인 반복적 타공 행위는 공격성을 지닌 뚫는 행위들의 집적임에도 표면적으로는 부드러워 보이는 한편 뭔가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것은 대상이 지닌 유한한 속성에 대한 덧없음에서 기인한다. 작가가 만들어낸 풍경은 생동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으로 인해 차분하게 가라앉은 상태로 바스라질 것만 같다. 그것은 따스한 온기가 빠져나가고 남은 표면처럼 덧없어 보인다.
조재영의 또 다른 작업은 광활한 대지인 산을 작게 축소한 것이다. 마치 가루를 쌓아올린 것처럼 금방 쓰러지거나 흩어질듯 보이는 산은 높고 얇은 좌대위에 살짝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너무 부드러워 오히려 다루기 어려운 거즈천을 바닥으로 삼아, 바느질로 횡단하기를 반복하며 쌓아올린 야트막한 산은 매우 작다. 광대한 대지이자 변화무쌍한 기운을 지닌 산을 멀리서 바라본 시점으로 작게 만든 것이다. 이 같은 시점의 이동은 직립하려는 덧없는 인간의 욕망을 수평적 바느질의 반복을 통해 천천히 축조된 미세한 시간으로 변환하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마치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잠시 머무는 미물처럼 보인다. 여기서 수행적 행위는 똑바로 곧추 세우는 태도가 아니라, 대상이 지닌 유연한 특성에 따르는 자율적이고 부드러운 표현을 의미한다. 한편, 산이 바닥과 맞닿은 부분은 또 다른 긴장감을 형성한다. 쌓아올려진 산이 당기는 힘으로 인해 좌대를 감싼 거즈천이 당겨지며 미묘한 긴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즉물적인 직립성이 아닌, 수평의 꿰매진 선들이 중첩되어 쌓아올려진 느릿하고 다분히 수행적인 행위들이 중첩되었기에 동반자적인 느낌을 준다.
지난한 과정을 요하는 노동집약적이고 수행적인 작업을 지속하는 작가는 삶속에서 서서히 발견되는 작은 가치들에 주목하게 한다. 무심히 스쳐 지나는 자연 개체와의 만남을 반복된 행위를 통해 나지막이 읊조리며 되뇌는 작가는 주변의 빈 공간과 단절된 가치를 조심스럽게, 하지만 촘촘히 메워 나가고 있다. ■ 김우임
Vol.20081117e | 조재영展 / CHOJAIYOUNG / 曺宰榮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