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플렛 메이저 Bb Major

채수임展 / CHAESOOIM / 蔡洙任 / photography   2008_1115 ▶ 2008_1122 / 월요일 휴관

채수임_Bb Major_디지털 프린트_80×120cm_2008

초대일시 / 2008_1115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공근혜갤러리_이전 GALLERY K.O.N.G_Moved 서울 종로구 팔판길 5(팔판동 137번지) Tel. +82.(0)2.738.7776 konggallery.com @kong_gallery

손톱을 깎고 발톱을 깎았다. 펄이 섞인 초록빛 페디큐어도 지웠다. 머리를 포니테일로 올려 묶었다. 그러고도 끝자락이 어깻죽지를 한참 지난다. 너무 길구나, 오늘은 정말로 머리를 하러 가야겠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꽈당이 내게도 왔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넘어져 이미 나는 작살이 나버렸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났지만 일어서지 못한다. 의미의 논리는 한 달이 다 되도록 같은 곳을 돌고 있으니 차라리 무진 기행이나 다시 읽어볼까. 혼자 힘으로는 앞으로 갈 수가 없다. 이러리라 상상도 못했지만 가지지 않는다. 살아본 이래 처음 같은 굉장한 슬럼프다. 그러나 나는 감정의 순간이동으로 잘 웃을 줄도 아니 천만 다행이다. 바하가 흐르는 겨울 아침. 느리고 조용하게 당신과 커피 한잔을. 건배. 2007.2.2. 요하네스버그행 비행기에 몸을 싣다. 2007.4.23

채수임_가장 상처받기 쉬운 상태_디지털 프린트_54×80cm_2008

사진을 찍기 위해 떠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들고 간 카메라로 거창한 프로젝트를 끝마치고 오리라는 대단한 각오도 아니었고, 늘 마음으로 아끼던 친구를 내버려두고 갈 수 없는 심정이랄까 말하자면 미안해서 함께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뭘 해야 하는지 같은 구체적인 계획보다, 한 번도 그 아래 서본 적 없는 어떤 하늘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을 뿐이므로 어디가 됐든 상관없었습니다. 절박한 물음 없이 떠나는 여행은 단지 값비싼 레저를 즐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질문보다도 나에겐 떠나는 일이 더 급했는지 모릅니다. 사랑은 왜 늘 뻔하고, 우정은 언제나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었는지.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들을 왜 나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는지. 여기도 저기도 아닌 어디쯤에도 무어라 이름 붙여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 이름 할 수 없는 것들의 존귀함을 기억해 내면서 우리는 누구도 타인에게 그토록 잔인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채수임_너 말고는 모든게 지루해_디지털 프린트_80×120cm_2008

서울만 아니면 살 것 같다고 생각하던 그 오랜 길 위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이유도 알 수 없이 서성거리게 하던, 더 이상 달리 보일 것도 없을 케이프타운의 평원 위에서 나는 한참이나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습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들판을 걷고 걸어 그렇게 원하던 자연의 길 위에 놓이던 순간. 저 광활한 땅에 홀로 남겨지기라도 할 것처럼 두려워합니다. 온 몸으로 마주하지 못한 채 부여잡을 것을 찾느라 헤매고 맙니다.

채수임_요한 세바스찬 바하_디지털 프린트_54×80cm_2008

나미비아에 도착 하자마자 조그만 라이카 카메라가 고장이 났습니다. 수도 빈트훅을 이틀 동안 돌았지만 카메라 가게는 고작 네 개였고, 라이카를 아는 곳은 단 한군데였습니다. 수리를 하려면 독일로 직접 보내야 하며, 두 달이 걸릴지 세 달이 걸릴지 자기들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카메라가 귀한 동네여서 살 만한 것도 마땅치 않았고, 이것을 고치든 새로 구입하든 케이프타운으로 다시 가야만 했습니다. 차라리 거기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겼더라면. 스무 시간이 넘게 덜컹대는 버스에 실려 와, 세 달의 아프리카 여정 중 가장 보고 싶었던 나미브 사막을 목전에 두고 그냥 돌아서야 한다니. 그게 아니라면, 카메라 없이 나머지 두 달을 보내야 하는데 역시 그것 또한 막막했습니다.

채수임_일요일 저녁을 먹고 월요일이 오기까지의 시간_디지털 프린트_54×80cm_2008

그렇게 빈 손 으로 무기력했던 7일간의 빈트훅에서, 끝까지 버리지 못했던 욕심은 무엇이었는지 깨닫습니다. 마지막 남은 하나까지 내려놓던 순간 찾아온 평안함과, 그 일주일 동안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마음속에 묻어 두겠습니다. 이번 전시에 걸린 대부분의 사진들은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 모든 계획을 버리고 얻은 것들 입니다.

채수임_눈이_빠지도록_기다렸었네_디지털 프린트_80×54cm_2008 채수임_사랑하게_될_줄_알았지_디지털 프린트_80×54cm_2008

가장 단순한 감정인 기쁨과 슬픔조차 마주 하는 행위 속에 있으며, 여전히 인간은 혼자인 채로는 불완전한 것인가 생각합니다. 척박했지만 치열하게 숨 쉬던 모잠비크의 모래밭길 위, 뜨거운 태양과 끝없는 바람의 모래 먼지 안에서 마침내 모든 것이 분명해 졌습니다. 힘들어도 견뎌야 했으며 내가 있을 곳은 그곳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할 것들은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내게로 들어가 나를 만나는 것은 부대끼는 삶 속에서라는 평범한 진리를 온 몸으로 느끼며 돌아섭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리거나 취하지 않고, 당신이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모두 안은 채 살아내겠다는 마음이 이번 여행길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상대의 잃어버린 기억력을 위해 매 순간 반복의 노고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의 주인공들처럼 당신을, 또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지루한 일상과 지나온 상처를 모두 품을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채수임_Thank_you_디지털 프린트_54×80cm_2008 채수임_Yes_디지털 프린트_54×80cm_2008

아홉 살 꼬마시절 피아노를 배울 때부터 이유도 없이 Bb음을 유난히 좋아했었습니다. 그 음을 근음으로 하는 Bb Major는 C Major의 경쾌함, A Major의 씩씩함과는 또 다른, 겨울을 이겨낸 이른 봄 따스한 아지랑이 같은 느낌입니다. 더 잃을 것도, 얻고 싶은 것도 없다 생각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던 길 위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야 새로운 길을 발견하던 희열의 순간. "버릴수록 가벼워지면서 깊어지는 것 같아. 너의 눈빛도." 삶으로부터의 작업에 고통스럽던 어느 오후, 친구의 문자 한통에 울컥 뜨겁습니다.

Vol.20081115b | 채수임展 / CHAESOOIM / 蔡洙任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