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ind Narcissism

박종호展 / PARKJONGHO / 朴鍾皓 / painting   2008_1029 ▶ 2008_1104

박종호_Blind Narcissism_리넨에 유채_130×162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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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8_1029_수요일_05:00pm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관훈동 184번지) Tel. +82.(0)2.734.7555 www.topohaus.com

슬픔에 관한 철학 ● 지난 몇 년, 박종호의 회화작업들은 줄곧 슬픔에 관해 철학하는 과정이었다. 지친 모습의 돼지들이 우리 안에서 서로의 몸을 겹치고 엉긴 채 스러져 자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화면에는 진한 멜랑콜리의 감성이 배어있다. 철창 밖 세상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는 돼지의 핏기어린 눈동자 속에는 강렬한 열망과 외로움, 그리고 서글픔이 어려 있다. 드라마틱한 무대조명을 받으며 세트 위에 올라간 돼지들 역시 힘없이 서로의 몸을 기대고 포갠 채 애처로이 잠들어 있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돼지의 탈을 쓰고 애써 위장하고 있는 슬픈 인간의 모습이며, 작가 자신을 그린 자화상이다. ● 인간존재는 누구나 욕망과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들이 충족되지 못할 때, 인간은 슬퍼진다. 억눌려 있다고 느낀다. 삶이, 영혼이, 육체가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영혼을 지배하는 '슬픔'을 사유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쓰기보다 전면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세상과 가까워지려 했다. 곧, 갈등의 표출로서 드러나는 슬픔을 사유함으로써 무한이 자기 스스로를 인식해가며, 이 세상 안에 이상을 되살리고자 한 것이다. 유년기 시절 형성된 성격적 특성으로 허무주의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작가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성실히 자신을 상품화하는 데 익숙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아니, 그러한 시스템의 효율적인 작동과 처리를 위해 개개인의 존엄성을 박탈당하며 체제 속으로 길들여지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또 한편, 자본 숭배와 물신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의 현실이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는 사실 역시 인식하고 있는 작가는 그것과 어쩔 수 없이 타협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 이러한 자괴감은 자아에게 일격을 가하는 순수한 나르시시즘의 여파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박종호_Apple Juice_리넨에 유채_112×227cm_2008
박종호_Wrapped_캔버스에 유채_96×157cm_2006
박종호_Children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8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나르시시즘은 과대망상증과 외부세계(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외면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현실적 대상들과 관련해서 그가 애초부터 지니고 있던 어떤 목적을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외부 세계에 등을 돌린 리비도는 자아에게로 방향을 돌려 나르시시즘이라 불릴 수 있는 태도를 발생하게 한다. 그가 그린 돼지들의 무리 중 유독 색이 다른 검은 돼지는 극적인 조명아래 고단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으며, 돼지의 눈동자는 모든 세상사에 대해 체념한 듯 초점을 잃었다. 그렇게 그는 철저한 아웃사이더가 되어갔지만,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유일한 희망이자 최후의 도피처인 나르시시즘에 도달한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가 돼지를 지식인에 비유했듯, 시대의 오물 앞에서도 항상 깨끗하게 자신의 몸을 유지하는 돼지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한 박종호의 나르시시즘은 일견 아름답고도 슬프다. ● 또한 그는 맹자의 측은지심처럼 우리 속에 갇혀 사육되어지는 돼지를 바라보며 인간에 의해 사육의 대상으로 몰락해버린 서글픈 존재로서의 현대인을 동정하여 기꺼이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그의 작업은 우리를 구속하는 현실과 그곳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되어버린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트랑 베르줄리는 '삶 앞에서 슬픔을 느끼는 자는 이상으로부터 자신을 유리시키는 모든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다. 곧, 의미가 없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슬픔의 부재라는 것을 일깨운다. 결국 박종호의 슬픈 돼지는 자신의 값어치를 의식하고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소리 없이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 이제 그는 더 이상 개인의 무력감에 빠져있거나 자신의 내면세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 Narcissism-아이는 자라서 나를 닮겠지...」 와 같은 작품에서 보여 지듯, 본인에게 집중되어 있던 나르시시즘의 리비도를 자기 내부에서 점차 자신의 분신인 아들에게, 그리고 다시 사회로 쏟기 시작했다. 자신을 따라 위태롭게 경계선에 선 아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망설이게 된다. 이 작품은 박종호의 돼지 그림을 또 다른 맥락으로 전환시키는 데 기폭제가 되었다. 최근 제작된 그의 회화 작품에 등장하는 돼지들은 우리 사회가 양산하고 있는 몰개성적 획일화된 교육제도 속에 희생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개성이나 차별성을 존중받지 못한 채 기계적 시스템 속에 마치 대량 복제되듯 비슷한 모습으로 차곡차곡 포개어 잠든 아기 돼지들의 표정에는 연민의 감정이 담겨있다.

박종호_Love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8
박종호_Father_C 프린트_120×100cm_2008
박종호_Apple Juice_C 프린트_46×142cm_2008

박종호의 최근 작품들은 또한 이전의 작업들에서 볼 수 없었던 위트와 여유로움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apple juice」에서 돼지의 눈앞에 놓여있는 사과 주스 병은 현대적 의미의 선악과이다. 달콤한 물질문명의 유혹에서 자신의 잣대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돼지는 애써 주스 병을 외면하고 태연한 척 함으로써 심리적 거리두기를 고전 분투한다. 작가는 인간이 자본주의 경제 속에서 소비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 그 자체이며, 소비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부터 경계하고 있다. 외부의 타격으로 인해 찌그러진 채 꼿꼿이 서있는 깡통은 현대 문명이 찍어내는 인격에 대해 저항하는 개인의 모습을 위트 있게 표현한 것이다. 번드르르한 외관의 알루미늄 캔 옆에 아무렇지 않은 척 서있는 찌그러진 캔은 저절로 보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하며 쓴웃음을 감출 수 없게 만든다. ● 주지하다시피, 박종호는 슬픈 자화상을 그려오며 내면의 성찰과 내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는 분명 지독한 고통과 방황의 긴 터널을 지나 주변으로 시선을 옮길 수 있는 여유를 얻었으며, 극단적인 나르시시즘 대신 객관적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관찰자적 예술가로서 자신의 또 다른 역할을 발견한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감각은 동시대미술가로서 그의 행보에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박종호가 오랫동안 철학해 온 슬픔은 침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며, 기적 같은 연금술의 결과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초월을 경험할 수 있게 한 것이기에 그 무엇보다 값진 저항이 아니었을까. ■ 조주현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2008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전시장 임대료(500만원 이내), 도록, 엽서 등 인쇄물 제작, 온-오프라인 광고를 통한 홍보, 전시 컨설팅 및 도록 서문, 워크숍 개최 등 신진작가의 전시전반을 지원하는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Vol.20081028e | 박종호展 / PARKJONGHO / 朴鍾皓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