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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8_102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목인갤러리 MOKIN GALLERY 서울 종로구 견지동 82번지 Tel. +82.(0)2.722.5066 www.mokinmuseum.com
내가 그림 그리는 법, 한가지 ● 두 번째 지리산을 찾아갔을 때 지독한 안개를 만났었다. 바로 앞에 있던 사람과 나무와 길이 손에 닿을 거리에서 쓸려 다니며 지워졌다 나타났다 하는 광경에 나조차 지워질까 어찌할 줄 몰랐다. 그러나 안개 속에서 장님처럼 사물을 더듬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단 한 순간도 나를 분실하지 않았다. 주변이 지워질수록 나만이 또렷해져 내 숨소리, 땅을 더듬는 발의 촉감, 밖으로 열려진 피부의 구멍까지 점점 더 또렷해졌다. 그러므로, 나는 안심하고 길을 잃어도 좋았던 것이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 중 하나이다. 바라보는 동시에 생성되어가는 존재인 화가에겐 선행된 외부와의 만남과 감각을 통한 사유, 그것을 표현하고 유지시켜줄 재료와의 부단한 싸움으로 생의 좌표가 드러난다. 그렇다면. 도래할 사물들의 표정, 그 사건을 탐색하는 것, 그 속에서 부단히 무용한 지도를 그리는 것(점치지 않고)이 내가 그림 그리는 법 한 가지라고 말해볼 수 있겠다.
장자는 순수직관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物자체가 되라는 말로 작가의 상상력과 정신의 문제를 다룬다. 한편 주자는 격물치지格物致知로 외부 대상과 긴장된 만남을 가지는 의지와 태도에 대해 말해준다. 物에 나아가 앎을 지극히 한다는 것은 '음식을 먹으면 배가 부른 것과 같아'서 앎에 이르기 위한 목적으로 格物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창작자에게 수양론과 같은 이 말은 관계의 유기성으로 짜여진 세계 안에서 조응하는 폭력적이지 않은 시선을 불러들인다. 타자에게 물들어가고 사물들 속에서 길을 잃는 것으로 흐릿한 내 걸음을 되짚어 보는 방식을 이제 막 배워나가고 있다. 아마 지웠다 그었다하는 모든 순간들이 새로운 종이 없이 하나의 지면 위로 부끄럽게 쌓여갈 것이다. ■ 백진숙
Vol.20081022h | 백진숙展 / BAEKJINSOOK / 白珍淑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