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 Mandala

전인경展 / JEONINKYUNG / 全仁敬 / painting   2008_1008 ▶ 2008_1014

전인경_work 0801 (천수천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0×120cm_2008

초대일시 / 2008_1008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공아트스페이스 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62-5 5,6층 Tel. +82.(0)2.735.9938 www.gongartspace.com

담아의 이야기, 담아의 꿈 ● 예술은 독창성을 찾는 고투의 연속이며, 과학과 같은 체계보다는 방법을 존중하는가 하면 특수한 인식능력에 의해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법, 재료, 소재, 안료 등 많은 요소들이 창조자의 사유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를 만들어 내고 독자적인 예술영역을 구축했을 때 비로소 예술가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과거의 인식체험으로부터 현재를 해석하기 위한 고뇌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창조적 독자성을 투명하게 표출하면서 작가의 의상(意想)이 투영된다. ● 그러한 가운데, 대부분 화가들은 풍경화를 그린다든지 인물화를 그린다든지 또는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면서 조화를 파괴하고 무형태로부터 추상성을 강조하는 세태적 장르를 대두시키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다양한 어떠한 형태의 표현양식도 모두 자신의 개별인식에 따라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인경은 이야기와 꿈을 연결하면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회화로 완성해 내고 있다. ● 표제의 담아(譚峨)는 전인경의 아호(雅號)이다. 따라서 '담아의 이야기'는 자신의 인식체험을 표현하는 것이고 '담아의 꿈'은 결과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발언하는 미래 지향적인 희망이다. ● 전체적인 특성으로는 불교예술에 근간을 두고 있으면서 세부적으로는 문양, 기호, 색채, 프리즘과 같은 대칭효과, 병치, 연결, 분할, 결합 등 우주적 현상(現象)의 직접적 산물을 외적 요소로 하고, 인간의 행위, 고뇌, 감성, 의상, 상징, 의미와 같은 무형적 내적 요소들을 병합하여 물질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를 일체화하고 있다. 이것이 완성되었을 때 우리는 고등예술이라고 한다. 따라서 전인경은 물체의 모든 형상을 입체의 형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인간이 처음으로 자유롭게 창조해내었다는 영회(影繪)의 윤곽을 형상으로 도출시키면서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많은 내적 형상의 표상을 평면상에 그려 내고 그것을 하나의 증거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전인경의 작품을 범부(凡夫)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추상성과 사실성이 혼용되어 있고, 카테고리는 총체적인 심리적 표상으로 폭 넓게 화면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마음을 동요시킨다. "세계는 나의 표상(表象)이다" 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철학자들의 존재의식과 마주치게 한다는 점이다.

전인경_work 0802 (천수천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0×120cm_2008
전인경_work 080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cm_2008
전인경_work 0804 (비색비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0×120cm_2008

이미 고인이 된 인간문화재 만봉으로부터 불화(佛畵)를 전수받으면서 축적시킨 사유의 세계는 불교철학과 섬세한 불화, 그리고 정통한 역사성이었다. 작품에서 오방색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는 것도 정통성을 중시 여겼기 때문이고 보색은 인간에게 편안한 감성을 주지만 원색은 강렬한 자극 성질을 가졌다는 사실을 응용한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지난 날 겪어야 했던 시련의 시간들은 1차 보색이나 2차 보색 안에서는 안정을 줄지 모르지만 크게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원색을 사용하면서 정신적 충격으로 미술치료법과 같은 효과를 얻어내어 작품이나 생활의 모든 경향을 변화시킨다는 공통개념(Commonness concept)을 회화로 표출하고 있다. ● 그러한 공통성(common feature) 중에는 한 때의 시련이었던 정신적 통한의 적(跡)들을 극복하면서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또 하나의 메시지를 분석적 통일이 아닌 집약적 통일로 표상하고 있다. 첫째, 명제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에서 그 모티브가 선정되고 집약되었으며 둘째, 불화의 특징적인 선과 형이 집약되어 하나의 회화로 완성되고 있다. 셋째, 불화기법에서 응용된 섬세한 필치가 따뜻한 여성의 감성적 특성에 의해 조형화되고 있다. 이러한 집약적 모티브나 소재, 기법이 시련을 극복해 낸 인간의 정신적 강인함으로 표출되면서 미안(美顔)에는 파안의 미소로 화사한 꽃잎이 열리듯 밝게 빛나고 있다. ● 작품을 일례로 들자면, 불교에서의 상징적 새인 금시조는 아픔, 슬픔을 극복하고 한 번에 승화한다는 의미로써 그가 작품에 몰두하면서 인간의 아픔과 슬픔은 결국 예술에 의해서만 극복 가능하다는 생각을 의인화하고 있다. 또한 천수천안(千手千眼)은 천수보살을 말하는데, 과거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천의 손과 천의 눈을 얻으려고 기도하여 이루어진 보살로써 이 몸에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천수보살은 비색비심(非色非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색은 물질적인 존재를 말하며 심은 정신적 존재를 말한다. 그런데 천수보살은 물질적 존재도 아니고 정신적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색(물질)과 심(정신)의 세계에서 고뇌하는 많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존재일 뿐이다. 말하자면, 주관적으로 작용하는 주종적 심상의 근본과 의상에 의한 종속적 심상을 총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풀이하자면, 붉은 꽃을 보고 '붉다' 라고 하는 것은 주관적인 꽃에 대한 인식작용이 '붉다'라는 사실에 종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천수천안은 바로 비색비심으로써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고 어느 것도 작용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삼라만상을 보살피는 자비도량일 뿐이다. ● 이러한 천수천안이란 작품을 관자는 시각적인 것 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므로 해제를 달게 된 것이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원으로 표현하고 추상과 사실성을 혼용하여 정교하게 표현한 이 작품은 마치 테이프를 붙여 놓은 듯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전인경_work 080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0cm_2008
전인경_work 0805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16.7cm_2008
전인경_work 0809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46cm_2008

또 하나의 발견은 격자형 회화이다. 하나하나의 사각형 안에 담아의 이야기」를 담고 각기 다른 사각의 틀 안에 담은 이야기들은 총체적인 집합에 의해 「담아의 꿈」을 실현시키고 있다. '담아의 이야기'란 자신의 일생을 통해 느낀 통각(統覺), 고통, 고뇌, 슬픔에 의한 감각적 인식세계이며 '담아의 꿈'은 각고의 정신세계로부터 극복하고 열린 기쁨, 환희, 희망과 같은 새로운 세계의 표출이다. 그러니까 전인경은 담아의 이야기에서 선묘 또는 문양에서 자신의 기억들을 반추하기 때문에 평면상에 그려진 모든 것들을 직시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내재적인 내용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며 실현되어 가는 '담아의 꿈'을 단계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상징들은 인간의 고뇌를 없애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 고뇌는 운명 안에서 언제나 드라마틱한 조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징적인 문양이나 종교역사학적인 기호, 충격적인 직관의 진정한 원천인 상상력이 심리적 이미지들의 원형(原形)들로 방출되어 스스로 생명을 받아들이고 전하는 집단 무의식에 의해 타인과의 유사성을 발견하면서 안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담아 전인경의 회화에서는 상징적인 기호나 문양, 도형에서 소리로 전위되며 지각이 가능한 개념적 요소를 인지할 수 있게 한다. 작품의 과정에서는 종교성도 있었고 역사성도 있었으나 이제 완성단계에서는 종교성도 없고 도형적인 어떠한 형태도 없다. 다만 그의 심리작용에 의해 정신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시간 공간의 무한한 기억들의 영적인 형상들일 뿐이다. ● 흔히 예술에 있어서의 표현 영역은 외적 표현과 내적 표현으로 말하고 있다. 외적 표현이란 오관(五官)을 통해 느끼는 결과적인 인지라고 할 수 있지만 내적 표현이란 무한한 상상적 영역일 뿐 우리가 형태를 귀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이같은 내적 표현은 예술에서만 가능하다. ● 결국 '담아의 이야기'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이 고통을 수반하고 산다는 메시지이고 '담아의 꿈'은 고뇌의 시기를 극복한 인간의 참 모습을 아름답게 투영시켜 인간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 박명인

Vol.20081008j | 전인경展 / JEONINKYUNG / 全仁敬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