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08_0806_수요일_05:00pm
갤러리 룩스 2008 신진작가 지원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화요일_10:00am~12:00am / 공휴일_11:00am~07:00pm
갤러리 룩스 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0)2.720.8488 www.gallerylux.net
감각의 전이를 통한 존재의 울림 ● "사진에서, 우리는 시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환기할 따름이다. 그것은 끝도 없이, 미세한 모래처럼 흘러간다... 그리고 변화하는 풍경은 거기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사진가, Bernard Plossu) ● 우선, 정경자의 환기적 재능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아스팔트로 된 쭉 뻗은 길, 도로 표지판, 갈색 풀로 뒤덮힌 저 너머에 보이는 흐릿한 풍경, 기막힌 실루엣에 의해 처리된 선, 텅 빈 공간, 바닥에 고인 물 위로 반영된 도시풍경, 바다 앞에 우두커니 놓여있는 파라솔, 멀리 보이는 빈 벤치, 수족관 속 물고기, 잿빛 건물, 하늘너머로 보이는 구름들, 박제된 동물들, 손이나 발과 같은 신체의 단편들, 실루엣으로 또는 원경에 희미하게 보이는,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 ● 이 사진들은 우리의 감정적 층위를 건드린다. 그것은 브레히트(Brecht)식의 낯설게 하기, 거리두기 방식에서처럼, 어느 것 하나 친숙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아서 낯설고 불편하게 느끼게 하는 방식에 의해서이다. 이 사진들은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의 여러 곳에서 조우한 대상들을 통해 감각(sensation)을 되찾고 감정의 주관성(subjectivite)을 드러내는 면모를 보인다.
정경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초현실주의자들의 그것에 닮아있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 방문한 장소에서의 대상과의 우연적 만남을 긴장감 있게 포착하고 그와 동시에 시간의 끝자락에서 풍부한 감정을 이끌어내며 멀티플(multiple) 형식의 사진작업으로 표현해낸다. 이런 멀티플 형식은 달리(Salvadore Dali)의 초현실주의적 요소과 에로틱한 요소가 결부되어 나타났던 「extasie」 같은 작업, 그리고 현대 설치 미술가 중 한사람인 아네트 메사쥬(Annette Message)의 「Les Tortures volontaires」에서 나타난 방식과 유사한데, 여러 개의 이미지들이 그들 간의 이미지적 연쇄를 일으키며 새로운 소통을 위해 열려지는 양태를 취하게 되는 특성을 보인다. ● 내가 정경자의 사진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특성은 사진 이미지의 함축적이며 내러티브적 성격에서 온다. 1964년 바르트(Roland Barthes)는 『이미지의 수사학(Rhetorique de l' image)』에서 "사진은 영화와는 달리 순수한 관객적(spectatorielle) 인식에 결부되어야 하며 (...) 모든 이미지는 다의적이며 기의의 '유동적인 연쇄(chaine flottante)'로 관객은 어떤 것은 선택하고 어떤 것은 무시한다. 낯섬과 풍부함을 구성하는 기의의 '유동적인 연쇄'는 다의적"임을 지적했는데, 의미가 고착되지 않고 부유한다는 측면에서, 라캉(Jacques Lacan)의 『기표의 미끄러짐(signifiant flottante)』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간혹은 초점이 맞은 채로, 간혹은 흐릿하게 나타나는 정경자의 사진들은 현실의 단편들로 어떤 것도 증명하지 않으며, 선명함과 흐릿함의 긴장 속에서의 감각과 감정의 전이만이 거기에 있게 된다. 정경자의 작품을 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작가의 의도를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작품 앞에 마주선 채, 자치적인 내러티브를 구축할 임무를 부여받은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전 작업「spiegel im spiegel」에서 정경자는 현실 삶에서의 자국과 상처를, 살아있으나 생명을 이미 잃어버린 것 같은 현실 속에서 부유하는 대상들, 불완전한 존재들 그리고 데쟈뷰(deja-vu) 순간들을 통해 흑백 사진 세 장을 세로로 이어 붙인 이미지로 표현했다. 다시 말해, 작가는 자신의 내면을 투영시킬 수 있는 일상의 순간과 대상을 통해 또 다른 자아(alter ego)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고 궁극적으로 이 이미지들은 '죽음'에 맞닿아 있었다. 이전 작업과 달리, 현재의 작업은 감정의 음색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초록, 파랑, 잿빛 톤의 색채와 선명한 이미지와 흐릿한 이미지가 혼재된 멀티플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런 가운데, 정경자는 감정적 편재를 중재하며, 내면적 본질을 하나의 잔재로 남겨두는 실존적, 자전적 방식을 체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정경자는 자신의 방식대로 감정과 감각이 우선적인 삶의 질임을 상기하며 삶의 양태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이 사진들이 언제 어디서 찍혀졌는지는 중요치 않고 주체의 시각적 에너지를 특권화하는 하나의 에세이를 구성하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만이 중요하다. 정경자의 사진에서 우리가 인지하는 것은 작가 자신의 일상적 경험에 결부된 실존적 내밀함이 이미지의 시적 정취(poesie)에 덧붙여진다는 점이다. 이 사진들은 몽환적이며 내밀한 세계를 유도하는 문체를 통해, 우리에게 삶도 죽음도 말하지 않지만 그것들의 공유된 부분에 관해 역설하고 있다. ■ 손영실
미끈거리는 현실 속에서 부유하듯 다른 세계의 삶을 사는 것 같이 떠 있는 느낌, 있어야 할 자리를 잃어버린 물건들. 살아있으나 생명을 이미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인 것들. 불완전하고 영원하지 않은 존재들. 순간 뇌리를 스치는, 어디서 보았을 법한 현실의 순간들.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말로 할 수 없는 순간들. 잡으려고 하나 손에 잡히지 않고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현실. 침잠하여 바닥 없는 늪으로 가라앉아 있는 느낌들. 개미가 모래사막을 지나가는 것과 같은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들... 『reverie, somewhere』에서 나타나는 피사체들은 현실에서 오는 억압의 순간들과 암울한 심연의 기억적인 파편들이다. 얽히고 꼬여 다시 돌아갈 수 없고, 풀 수 없고, 지울 수 없는 현실의 삶의 자국과 상처를 표현하고 싶었다. 일상의 순간과 대상 속에서 나 자신의 내면을 투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물을 선택했고, 그 속에서 나의 다른 자아(alter ego)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는 스스로가 내 안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행위이며, 그 결과는 내 자의식의 초상이다. 『reverie, somewhere』은 내 과거의 경험과 꿈 그리고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내가 생각하는 '죽음'과 이어져 있다. 사진을 여러 장 조합하여 보여준 것은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일상의 파편적인 이미지가 서로 고리를 물고 예측할 수 없는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게끔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정경자
Vol.20080725f | 정경자展 / JEONGKYUNGJA / 鄭京子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