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빛

권순왕展 / QWONSUNWANG / 權純旺 / painting.photography   2008_0709 ▶ 2008_0715

권순왕_히로시마 리틀보이-Hiroshima Little Boy_사진, 한지_30×21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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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8_070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공휴일_11:00am~07:00pm

갤러리 룩스 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0)2.720.8488 www.gallerylux.net

역사와 맞부딪치는 예술 ●『시스템의 빛』이라는 부제로 열리는 권순왕의 전시는 사회와 역사의 구조에 대한 관심을 판화와 영상설치작업을 통해 보여준다. 작가는 얼마 전 일본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한일 간에 착종된 근현대사의 장면들을 작품 소재로 들여온다. 불탄 남대문 사진이나 일본 우에노(Ueno) 공원에 남아있는 원자폭탄 흔적, 현재 한국에서 진행 중인 촛불집회 등의 장면이 개별적으로 또는 중첩되어 나타나는데, 작가가 수집한 얼마 전 과거와 진행 중인 현재의 사건 장면들이 불, 또는 빛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역사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전시 작품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사진 등의 역사적 자료를 종이 틀 속에 배치한 것이 있다. 여러 겹으로 배열된 종이 틀은 삽, 인간, 쌀알, 모자, 표지판 등 다양한 외곽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실루엣이 바탕면의 사진과 만나면서 의미를 발생시킨다. 자료 사진은 종이 틀 실루엣에 가려져 부분만이 드러나며, 관객은 파편적 자료와 또 다른 이미지(틀)와의 부딪힘에서 발생하는 간격을 상상으로 채울 것을 요구받는다.

권순왕_숟가락의 형태로 정원을 바라보다-Looking at the garden in the shape of a spoon_ 사진, 한지_30×21cm_2008
권순왕_삽의 형태로 사원을 바라보다-Looking at the shrine in the shape of a shovel_ C 프린트에 드로잉_30×21cm_2008

층지어진 종이 틀은 대상을 사진기의 렌즈로 클로즈업하는 효과를, 그리고 구상적인 형태가 남아있는 실루엣과 사진의 교차는 장면과 장면이 만나는 몽타주 효과를 준다. 중첩된 종이 틀은 지층처럼 촘촘히 쌓아올려진 시간을 공시적으로 배열하며, 그 위에 그어진 가는 선들은 시간의 흐름을 통시적으로 연결한다. 두 번째로, 사진에다 스텐실 작업을 한 작품들이 10여점 전시된다. 스텐실 작업 역시 종이 틀 작업처럼, 역사적 내용을 결정짓는 중층적 구조를 상징하면서 그 자체로는 명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역사의 파편을 드러내거나 은폐한다. 스텐실 작품에서 스탬프로 찍힌 단어들이나 덧붙여진 드로잉 등은 알레고리를 함축하고 있다. 우에노공원, 원자폭탄, 일장기, 가미가제 등 우리 근대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일본 근대사의 자료들이 등장하고 그 위에 여러 실루엣의 색판들이 얹혀 진다. 색판들은 비극적 역사의 내용을 중화시키거나 또는 확장한다. 가령 원자폭탄을 정물화의 사과처럼 배치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얼마 전 불탄 남대문 사진위에 비눗방울 이미지를 띄워놓기도 한다.

권순왕_Some balloon_C 프린트_75×106cm_2008
권순왕_Playing with soap bubble_C 프린트_75×106cm_2008

노란 서치라이트와 붉은 피, 찢어진 가림 막 등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황후를 찾아서」나 껍질이 벗겨진 악어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창경원」은 명성왕후 시해사건이나 동물원으로 전락한 궁궐이라는 식민지 잔재에 비극적 색채를 덧씌운다. 권순왕의 작품에서 역사는 중성적으로 다루어졌든 드라마틱하게 가공을 했든 간에, 그 자체의 모습과 의미가 아니라 다양한 틀과 색으로 걸러진다. 세 번째로, 여러 층으로 배열된 시간의 스크린에 영상이 투사되는 설치작품이다. 작품 「불꽃」은 원폭 흔적이 남아있는 우에노공원과 남대문 화재, 촛불집회의 불꽃을 클로즈업과 롱샷을 교차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편집한다. 영상은 추상화된 패턴으로 흩어지며, 불꽃이라는 모티브 외에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의미의 인과성이 모호한 장면들이다. 여기에는 아무리 사소한 역사의 흔적이라도 소중하게 보존하는 일본과, 열화처럼 달아올랐다가도 금방 역사를 잊어버리곤 하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비판적 대조가 있다. 작품 속에서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은 수없이 전환되는 국면들을 거친다.

권순왕_시간속의 거울-Mirror of the time_사진에 스텐실_75×106cm_2008

권순왕의 작품에서 사진이든 영상이든 실제에서 추출된 자료가 활용되는 것은 중요하다. 사진이나 영상 자체가 현실의 시공간을 순간적으로 잘라낸 것이지만, 그것이 몽타주식으로 재편집될 때, 자료들은 복합적인 의미의 그물망 속으로 편입된다. 미술사 속에서 몽타주는 베를린 다다이스트나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처럼, 사회역사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아방가르드에 의해 시작되었다. 몽타주는 구조에 의해서 결정되고 변형되며 해체되는 현대 산업사회의 질서와 혼란을 표현하는데 적합한 매체이다. 시공간의 압축이 일어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순적인 장면들이 마주치는 것은 흔히 일어나는 경험이다. 작가는 이 모순적인 부딪힘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길어 올리려고 한다. 그가 활용하는 판화의 다양한 기법들은 추상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수집된 사료들이 자연적 기원을 가지기 보다는 추상화된 인공적 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에 양자는 이물감 없이 섞여들곤 한다. 그러나 대체로 서로 관련이 없는 행위와 사건들을 병렬시키는 몽타주 기법은 형태나 의미의 차원에서 부딪힘을 낳는다.

권순왕_히로시마 리틀보이의 꽃-The flower of Hiroshima Little Boy_ 스텐실_106×75cm_2008

우리의 근현대사 자체가 모순이 격돌하는 역동적인 변화의 현장이었다. 사진이나 영화에서의 몽타주기법을 탄생하고 발전한 곳은 급격한 역사적 전환기의 사회였다. 돈 애즈는 『포토몽타주_Photomontage』에서 혁명기의 러시아 구성주의에서 행해졌던 사진과 영상 실험의 예를 든다. 이 시기에 아방가르드는 격렬하고 재빠른 인터커팅의 사용, 시간과 공간의 분리적 통합, 비교와 조건 만들기, 교체되는 클로즈업의 사용, 원거리촬영, 주제겹치기, 이중노출과 분할스크린법 등을 실험했던 것이다. 권순왕은 기존의 사료를 활용하기도 하고 직접 현장에 가서 수집해 오기도 한다. 그것이 재료가 되고, 그가 전공했던 판화와 판화의 확장된 형식이 만난다. 몽타주는 재료와 그것의 재조직이라는 방식을 가진다. 작품의 재료는 현실이며, 그 구조는 현실이 어떻게 인식되어지느냐를 결정한다. 몽타주이론을 발전시킨 러시아 영화제작자 쿨레쇼프는 분리된 몽타주 조각들, 그것들이 자리하는 위치 그리고 리듬있는 구성상의 간격과 그 상호작용은 바로 그 예술가의 세계관과 생산하는 작품의 내용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 권순왕의 작품에서 사진이라는 텍스트는 작가가 부여한 컨텍스트에 놓여지며 이를 통해 어떤 사회적, 역사적 경향이 드러난다. 그것은 자명한 의미를 모호하게 하는 과정일 수도 있고, 모호한 장면에 확실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역사적 사료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인과관계의 씨줄과 날줄로부터 놓여난 역사적 파편을 앞에 놓고 질문을 하는 자에 의해 의미가 비로소 형성된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에 의해 변화되는 것이며, 그 의미는 구성되고 조직되는 것이다. 작가는 그 과정에 가속도를 붙일 뿐이다. 그의 작품에서 사료의 변형과 재맥락화는 적극적이어서 그자체가 온전하게 활용되는 것은 없다. 그것은 사료의 재현을 넘어서 추상적인 무늬로까지 해체되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골동품 수집가처럼 자료들을 모아놓고 다만 검증하고 기술하는 것은 그의 관심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인과론적 설명은 현실에 대한 적응을 강조한다. 그러나 짜여져 있는 기존의 구조들을 헐겁게 하고 다시 구조화하는 것은 적응이 아니라, 활동을 강조하는 것이다. ● 역사를 세계에 대한 이해의 방식이라고 본다면, 예술가들이 이해하는 역사는 보다 은유적이다. 예술가적인 관점에서 과학과 역사의 건조한 실증주의를 비판했던 니체가 강조했듯이, 역사의 장은 개념화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이미지를 창조하는 무대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객관성이란 최고의 형식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결과 그 구성물은 역사적으로가 아니라, 예술적으로 진정한 그림이 된다.' 그것은 역사가 일종의 예술형식이 됨으로써 삶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미적 관점에서 역사를 예술로 전환하는 것은 현재를 과거의 기계론적 결과물로 보는 방식, 현재가 유기체적인 통일성이나 단일구조의 산물이라는 방식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권순왕은 객관적인 자료를 주관적으로 재구성한다. 형식과 운동, 구조와 과정이 종합되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창조하는 몽타주기법은 역사에 대한 예술가적 관점, 즉 심미적 태도가 역사적 객관성과 배치되는 것도 아님을 알려준다. ■ 이선영

Vol.20080711d | 권순왕展 / QWONSUNWANG / 權純旺 / painting.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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