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DOW BOX

장원실展 / CHANGONESIL / 張原實 / painting   2008_0618 ▶ 2008_0624

장원실_Shadow box_캔버스에 혼합재료_60.5×132cm_2007

초대일시 / 2008_061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5층 Tel. +82.(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자연으로부터의 삶과 시간의 흔적 ● 장원실은 1990년대 부산 형상미술과 관련해서 주요작가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당시 부산의 형상미술은 당대의 지배적 경향성인 현실참여미술(엄밀하게는 1980년대를 중심으로 한)과 그 이념을 같이하면서도, 형식면에서 여타의 경우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차별성을 견지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이를테면 환상적인 요소와 현실적인 요소를 날실과 씨실로써 긴밀하게 직조해내는 식의 지역적 양식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장원실_Shadow box_캔버스에 혼합재료_80.5×53cm_2007

작가의 당시 작업을 보면, 순수하게 회화적인 방법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일부 형상이 화면 위로 돌출돼 보이는 저부조 형식을 도입하는 등 화면을 만들고 축조하는 식의 건축적이고 공작성이 강한 작업에 진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후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특징적인 요소들, 이를테면 재료의 물성이나 마티에르 그리고 미세 요철효과를 강조하는 등의 형식실험이 강한 화면효과가 이때 이미 그 단초가 마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형식적인 특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서, 작가의 그림은 특정의 이념이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환기시키는 방식보다는 이를 상당정도 형식화하고 조형화하는, 상대적으로 더 간접적이고 우회적이고 암시적인 방식에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장원실_Shadow box_캔버스에 혼합재료_53×106cm_2007

이후 시대가 변하고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작가의 작업 역시 처음의 이념 지향적이었던 것에서 점차 일상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고, 특히 자연 소재로 관심이 기울어지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헐벗은 산이나 유적지를 연상시키는 폐허 이미지로써 피폐한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더 심플한 화면에 담아낸 상징적이고 암시적이고 목가적인 이미지를 거쳐, 일종의 자연주의라고 부를 만한 현재의 자연친화적인 양식과 태도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장원실_Shadow box_캔버스에 혼합재료_72.5×150cm_2007

장원실의 근작은 현저하게 도자기(이를테면 도판 같은)의 표면질감을 닮아 있다. 그러나 그 기법을 그대로 차용한 것은 아니며, 그와는 다른 방법으로 그 표면질감을 재현한 것이다. 이를테면 도자기와 관련한 전통적인 기법 중 하나인 상감기법을 전용하고 재해석하는 식이다. 그 표면질감을 얻기 위해 작가는 가마에서 구워낸 코발트유약 덩어리를 곱게 빻아 미세한 가루를 만든 연후에 일정기간 동안 물에다 침전시킨다.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친 침전물을 건조시켜 그 덩어리를 재차 분말 형태로 분쇄하면 최종적인 청화가루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청화가루로 그려진 이미지 위에다 백색에폭시를 도포하고, 이것이 완전히 건조된 연후에 그 표면을 미세한 사포로 갈아낸다. 이로써 그 이면에 그려져 있던 나무 이미지(청화)가 드러나 보이게 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나무 이미지), 그 그림을 지우고(백색 에폭시로 도포하는), 재차 그 숨겨진 그림을 찾아내는(화면을 사포로 갈아내는) 일련의 유기적인 과정을 거쳐 화면에 일정정도 중첩된 지층을 조성하고, 그 지층과 더불어 최종적인 이미지가 생산되는 것이다.

장원실_Shadow box_캔버스에 혼합재료_41×77cm_2007

이러한 과정 중 화면을 사포로 갈아냄으로써 이면의 나무 이미지와 그 위에 도포된 백색안료의 지층이 균일해진다. 말하자면 상감기법과 흡사한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로써 청색 계열의 나무 이미지와 그 주변의 하얀 여백이 어우러진 흡사 청화백자와도 같은 은근한 색감과 표면질감이 조성된다. 허나 이 공정은 생각만큼 간단치가 않다. 특히 구워낸 코발트 유약 덩어리를 분쇄하고 침전시키는, 그리고 그 침전물을 소성한 덩어리를 재차 갈아 최종적으로 청색의 분말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힘겨운 노동이 요구된다. 이 일련의 과정이 일일이 수공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도외시한다면, 일견 기계적인 과정과 생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로 인해 자칫 그림이 정형화되거나 경직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타개하기 위해 작가는 화면에 변화를 주게 되는데, 이를테면 사포로 그림의 표면을 갈아낼 때 강도를 조절해서 질감에 변화를 준다든가 하는 식의 일종의 감각적 과정을 개입시킨다. 특히 청색으로 그려진 이면의 나무 이미지가 일부는 드러나게끔, 그리고 일부는 여전히 백색안료의 이면에 가려지게끔 조율함으로써 짙은 청색으로부터 순백색에 이르는 색채의 스펙트럼을 형성시킨다. 이로써 실제의 청화백자에서처럼 반드시 어떤 청색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볼 때마다 약간씩 달라져 보이는 것 같은, 심지어는 투명해 보이기조차 하는 미묘한 청색이 조성되는 것이다. 여기에 에폭시를 도포할 때 생기는 미세 기포가 사포질에 의한 비정형의 스크래치와 어우러져 풍부한 화면효과를 연출해낸다. 나아가 작가는 부분적으로 투명 에폭시를 화면 위에 덧발라 자기표면의 유약 효과를 꾀하기도 한다.

장원실_Shadow box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324cm_2007

장원실은 이처럼 나무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실제 나무의 표면질감 그대로를 떠내기도 한다. 송판의 표면에다 나무와 유사한 적갈색 메디움(Medium)을 발라 나이테나 옹이 그리고 비정형의 스크래치 등 자연스레 생긴 흔적 그대로를 떠내는 것이다. 이렇게 떠낸 메디움(Medium)만으로는 힘이 없으므로 그 이면에 천으로 배접해서 보강한다. 이로써 일종의 유사 무늬목이 만들어지면, 그 조각을 자르고 잇대어 붙여 원하는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재구성된 형태는 영락없이 마루나 문짝 등의 나무 수공품을 연상시키고,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형태가 미니멀리즘을 떠올리게 한다. 이와 함께 그 표면에 특정의 색채(대개는 녹색계열이나 회색 그리고 흰색과 같은 모노톤의 색채)를 덧칠한 후 드로잉을 하듯 사포로 갈아낸다. 이때 비정형의 스크래치와 함께 이면의 적갈색이 부분적으로 드러나며, 그 흔적(그 자체 자연스런 낙서나 크랙을 가장한)이 표면에 덧칠된 색채와 어우러져 풍부한 색감과 질감효과를 연출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단순히 실제를 재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제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도 아닌 일종의 유사 오브제(그 자체 사물의 껍질로 정의할 만한)로 부를 만한 한 가능성을 예시해준다. 그 이면에 오랜 풍화의 흔적과 시간의 지층을 머금고 있는 이 유사 오브제가 어떤 정서를 환기시켜주는가 하면, 실제와 이미테이션, 모본과 이로부터 유래한 사본과의 관계를 재고하게 한다. ● 한편, 작가는 스크래치로써 단순히 낙서나 크랙과 같은 우연한 흔적만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는 닭이나 사슴과 같은 자연요소를 화면 속에 끌어들이기도 한다. 허나 그 형상은 재현의 대상으로서보다는 최소한의 흔적만으로 암시돼 있다. 시간의 지층 속으로 사라질 듯한, 혹은 시간의 틈을 헤집고 이제 막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 듯한 그 형상이 기억의 잔상과 잔영을 그리고 그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장원실_Shadow box_캔버스에 혼합재료_53×106cm_2007

이외에도 작가는 일종의 이중화면이나 다중화면을 꾀한다. 그러니까 나무를 소재로 한 청화백자의 표면질감을 연상시키는 화면과 함께 일종의 유사 무늬목을 재현한 화면을 나란히 병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서로 다른 색감이나 표면질감이 대비되는 식의 조형적인 효과는 물론이거니와, 재현된 나무의 이미지와 실제의 나무로부터 유래한 유사 오브제가 대비된다. 이를 통해 나무가 존재하는 다양한 현상과 더불어 나무를 재현하는 다양한 방식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 장원실은 근작의 주제를 세도박스(shadow box)라고 칭한다. 이 말은 그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거나, 어떤 현상에 의해 그림자를 연출하게 해주는 박스처럼 물리적이고 실질적인 의미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은유적 표현일 것이다. 그림자에 해당하는 어떤 것이 담겨진 박스, 기억의 희미한 흔적들이 머무는 박스, 시간 속에 함몰된 회한의 편린들이 웅성대는 박스와 같은. 기억의 상자나 시간의 상자로 부를 만한 그 박스는 우호적이고 유기적이며 따스한 작가의 마음을 건네준다. 그대로 흙의 심성과 나무의 질감을 닮은. ■ 고충환

Vol.20080618g | 장원실展 / CHANGONESIL / 張原實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