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08_0618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pm~07:00pm / 화요일 휴관
통인옥션갤러리 TONG-IN Aucti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2 (관훈동 16번지) 통인빌딩 5층 Tel. +82.(0)2.733.4867 www.tongingallery.com
독일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전시기획자 박믿음 선생님의 소개를 받고 송기창 작가를 만났다. 작가의 작업실은 벽면이 모두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림을 보면서 작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작가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뚜렷한 표정과 맑은 눈빛을 가지고 그림과 전시에 대해서 말했다. 독일에서 있었던 송기창 작가의 지난 전시 도록을 보면서 그림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전시는 밖으로 드러내는 행위이다. 자신의 속내를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 보인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작가라면 그 결정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송기창 작가가 이번에 작업한 그림들은 다리와 발이 주요 소재이다. 바지와 구두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상체와 팔 그리고 머리는 보이지 않는다. 얼굴과 표정은 볼 수 없지만, 바지와 구두 뒤에 감추어진 다리와 발의 형태와 움직임만 가지고도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마치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가 그린 빈 의자를 보면서 그 의자에 앉을 주인공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점에서 송기창 작가의 그림은 풍부한 메타포와 유비를 함축한다.
형태와 움직임은 모방을 추구하는 조형미술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다. 사물의 형태를 포착하고 재현하는 작업은 대상에 대한 이해와 인식 그리고 지배를 의미한다고 여겨졌다. 예술가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재현적 가능성의 경계를 넓혀왔다. 음악가가 사랑이나 질투 따위의 감정을 음표로 표기한다거나, 화가가 기괴한 상상의 동물을 떠올려서 붓으로 그려내는 전통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편, 움직임에 대한 연구는 자연의 생명을 훔치려는 예술적 요구와 연관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의 화가와 조각가들이 모래밭에서 땀 흘리면서 연습하는 운동선수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는 크세노폰의 기록이나, 인체의 움직임을 여섯 가지 또는 여덟 가지 기본 유형으로 구분하여 이론적 체계를 부여하려고 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알베르티와 레오나르도의 기록은 생명의 실체와 본질을 탐구하려던 예술가들의 열정과 방법론을 증언하는 사례들이다.
송기창 작가의 그림은 밝으면서 무겁다. 경쾌한 색채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터운 마티에르가 그의 작업에서 자주 발견된다. 또 시간과 공간이 탈색된 것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그의 그림에서 보도블럭, 가로수, 간판, 신호등, 입간판, 거리의 소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지형학적 익명성이 그림의 주인공들의 어깨를 짓누르지는 않는다. 그들은 아무 상관없이 서성이고, 지나치고, 기다릴 뿐이다. 또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구분되지 않는다. 이런 시공간의 탈색이 의도적인 배제인지, 또는 무수한 겹침으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두 가지가 다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송기창 작가는 흔적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일러주었다. 흔적은 변화의 끄트머리, 기억의 잔류물, 변태한 곤충의 껍데기 같은 것이다. 생성과 소멸이 한 호흡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의 그림은 우리가 숨 쉬는 의식과 시간의 지극히 수면 위에 잠시 부유했다 가라앉는 사물들에 대한 위로이다. 그의 그림을 보는 동안 소녀들의 웃음소리처럼 밝고 따뜻한 색채와 형태들이 일상에 지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나의 몸도 흐르는 강물에 오래 씻긴 차돌맹이처럼 맑고 투명해지는 느낌이었다. ■ 노성두
Vol.20080618f | 송기창展 / SONGKICHANG / 宋基彰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