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핑 돌스 Sleeping Dolls

권자연展 / KWONJAYEON / 權慈燕 / photography.video   2008_0605 ▶ 2008_0615 / 월요일 휴관

권자연_잠자는 인형들 Sleeping Dolls_디지털 프린트_85×120cm_1998/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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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8_0605_목요일_06:00pm

후원 / 진선출판사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_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진선 GALLERY JINSUN 서울 종로구 삼청로 59 1,2층 전시장 Tel. +82.(0)2.723.3340 www.galleryjinsun.com

권자연은 브레인 팩토리에서의 지난 개인전에서 뉴욕에 거주했던 레지던시 스튜디오에 남겨진 흔적들을 모티프로 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특정한 장소들에 사람들이 남겨놓은 '흔적'과 그것을 바라보는 객관적 방식으로서의 '기록'에 대한 관심은 권자연의 작업을 이루는 주요한 축이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연작들 역시 그러한 맥락의 연장선 상에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의 작업 속에서 늘상 발견되던 흔적들이 주로 스쳐 지나가는 익명적 존재들과의 만남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 작업의 모티프가 된 흔적들의 주체가 작가의 딸들이라는 점이다. 주로 공공적인 장소를 주된 영역으로 다루었던 과거의 작품과 다르게 집안이라는 사적 공간을 대상으로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작업들은 작가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 곳곳에 인형을 잠재워놓은 아이들의 흔적을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시작되었다. 인형들에게 곱게 이불을 덮어 준 모습이나 여기 저기 서툰 글씨로 써 놓은 글들을 보면서 그는 모성적 주체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작가로서 아이들이 구축해놓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작가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아이들의 세계와는 달리 귀엽고 예쁜 것만은 아니라 어떤 섬뜩함을 내포한 세계였다고 한다.

권자연_잠자는 인형들 Sleeping Dolls_디지털 프린트_85×120cm_1998/2008

남겨진 흔적들을 통해서 흔적의 주체를 다시금 바라보는 것은 스튜디오에 남겨진 바닥칠이나 벽의 구멍들을 활용했던 권자연의 지난 드로잉 작업에서도 견지되던 특성이다. 일정한 시간 동안 그곳에 있다가 지금은 부재한 존재의 흔적들은 강하게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 존재의 특성을 조용한 부동의 상태 속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남겨진 물건들이나 그것과 연관된 흔적들은 마치 벗어놓은 옷가지에 남겨진 몸의 형태와도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그것은 흔적의 주체가 주변 공간과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 나가는지를 말해주기 마련이다. 권자연이 주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형상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배경을 바라보며 그 형상을 추정해보는 것과도 같은 태도는 권자연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이다. 영역 안에 개입하거나 점유하지 않고 경계에 서서 그 내부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이다. 흔적의 주체와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권자연의 작업에는 언제나 객관적인 제3자의 시선이 드러난다. 그러나 지금은 부재하고 있는 것을 더듬어가는 방식이기에, 여기에는 본질적으로 과거의 시간과 인간의 흔적들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깔려있다. 그것은 권자연의 시선이 견지하고 있는 객관성을 흔들지 않을 정도의 아주 미미한 것으로, 제3자의 시선이 가지는 기록적 속성에 약간의 서정성을 덧입힌다.

권자연_잠자는 인형들 Sleeping Dolls_디지털 프린트_85×120cm_1998/2008
권자연_잠자는 인형들 Sleeping Dolls_디지털 프린트_85×120cm_1998/2008

그간 드로잉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권자연의 작업 방식을 보면, 언제나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중시해왔었다. 재료 자체의 유기적 속성이나 그것이 놓여진 장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작업은 작가를 작업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두면서, 작업에 끼어드는 우발적인 요인들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연작에서 작가의 역할은 보다 더 주변과 경계에 머물러 있다. 10여년간 아이들이 집에 남겨놓은 특정한 흔적들을 사진으로 포착해온 이 작업들은 타자로서 자신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찰자 시점의 기록이다. 그 기록을 통해서 관람자 역시 작가의 시선대로 인형들이 잠자고 있는 이 고요하고 낯선 세계를 함께 들여다보는 기분을 갖게 된다. 외부와 단절된 집안, 어른이 부재한 공간 속에서 아이들이 주인이 되어 점유한 영역들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경험은 사물, 공간, 시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며, 경험의 흔적들이 그 상호작용을 다시금 반추하게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들이 공간에 남겨놓은 흔적들에서 일종의 패턴을 읽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권자연에게 있어서 공간이란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의 시간과 그동안 되풀이 되었던 특정한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장이다. 즉 고정된 장소라기 보다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인간과 더불어 호흡하는 유기체와 같은 것이다. 권자연은 이 공간 곳곳에 누적된 파편들의 채집과 기록, 나열이라는 방식으로 흔적을 남긴 행위자들의 행동유형을 객관적으로 부각시킨다.

권자연_1998-2008_단채널 영상_00:04:00_1998/2008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인형들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인격적인 대리물, 알터-에고(alter-ego)의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집안 곳곳에 인형들의 잠자리를 마련하여 침대를 만들어주고 이불을 덮어주는 행동으로써 자신들의 위치가 지닌 나약함에 대한 불안감을 보상받는다. 사진 연작들과 함께 전시되는 텍스트들은 아이들이 쓴 메모와 글들을 있는 그대로 타이핑한 것이다. 들쑥날쑥한 문장들 가운데 튀어나오는 의외성이나 기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측면들은 어린 아이가 바라본 세계의 즐거움 뿐 아니라 부조리함과 그에 대한 두려움까지 읽을 수 있게 한다. 아이가 캠코더로 직접 찍은 동영상은 그들의 눈높이로 바라본 세계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상기시키면서 그들이 엄연히 주체적 시각을 가진 인간 존재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한다. 비논리적으로 뒤섞여 있는 삶의 양극적 측면을 어린 아이의 세계를 통해 바라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권자연이 유지하고 있는 비판적이지도 센티멘탈하지도 않은 거리는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만의 세계를 수평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작가가 관찰자로서 발견한 기록물들의 아카이브들을 통해서 우리는 어린 아이들이 구축한 세계, 한 때는 우리 자신의 세계였지만 지금은 타자가 된 낯선 시공간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작지만 나름의 체계가 있는 세계, 나약하게 보이지만 질서와 폭력이 공존하고 애정과 잔혹함이 뒤섞인 살아있는 어린 존재들의 세계인 것이다. ■ 이은주

Vol.20080606e | 권자연展 / KWONJAYEON / 權慈燕 / photography.video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