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ltramarine-바다 저편

김윤수展 / KIMYUNSOO / 金潤秀 / installation   2008_0423 ▶ 2008_0523

김윤수_Horizon_비닐에 아크릴채색_240×90cm_2006 김윤수_네 개의 구멍_종이에 파스텔, 합판, 각목, 안료_220×156×70cm_2006

초대일시 / 2008_0423_수요일_06:00pm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_이전 PROJECT SPACE SARUBIA_Moved 서울 종로구 관훈동 74번지 Tel. +82.(0)2.733.0440 www.sarubia.org www.facebook.com/pssarubia www.twitter.com/sarubiadabang www.instagram.com/pssarubia

김윤수는 거의 10년 동안 현실너머의 無限 세계(공간)에 대한 그리움과 시공간의 경계에 대한 끝없는 물음을 작업의 모티프로 삼아왔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엄청난 집약적 노동을 자기 수행의 방식으로 취하여 물성과 언어의 명확성을 무화시키고 자신의 몸의 행위까지도 그 화두에 일체화시키는 작업들을 해왔다. 그러니까 자신의 발과 일상 오브제를 골판지 띠로 감아가거나 주변 사람들의 발 모양을 따라 비닐로 오려서 켜켜이 쌓아 원래의 形象에서 전혀 다른 形態로 전이되는(행위에 의해 애초의 형상이 무화되는) 양상을 보여 준다. 여기서 態(인문학적 태도)의 움직임에 따라 외형의 비주얼이 자연스레 만들어지는데, 이 지점이 김윤수의 조형성을 드러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조각이나 설치 등의 장르적 의미가 중요치 않으며, 이는 곧 행위에 따라 조각, 설치, 드로잉, 그림, 영상 등의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김윤수_적막_골판지_가변설치_2008
김윤수_적막_골판지_가변설치_2008_부분

그런 특성을 지닌 김윤수는 이번 사루비아다방에서 전의 작업('고요하다는 것의 깊이', '무심함을 그리워할 戀', '바람의 砂原')보다는 포괄적이고 텍스트적인 의미로서 시공간을 가로질러 무한으로 향하는 '마법의 정원'을 제시한다. 정원 이름은 '바다 저편 Ultramarine' ("'울트라 마린Ultramarine'은 '바다 저편'이란 어원을 가지고 있다. 신비스러운 청색을 띄는 이 안료는 단순히 색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공간인 것이다. 보여지는 네 개의 색면은 모두 '울트라 마린'이라는 안료(deep부터 light사이에 여러 단계로 나뉜다)로 칠해진 색면으로 이 작업은 2차원을 넘어서 초월적인 시공간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이 그저 하나의 추상적인 관념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신비를 향한 순수한 정신은 마법처럼 다른 차원으로의 통로를 열어준다. 그것은 현세의 색이 아니라 초월적인 색이다. 나는 '울트라 마린'에 열광한다. 공간은 깊어지고 넓어진다."(김윤수))이다. 이 정원에는 시공간의 법칙을 넘어서는 풍경들, 즉 「네 개의 구멍」, 「Horizon」, 「적막」, 「반짝이는 고독」, 「그녀의 바다에서 그의 하늘까지 ; 그녀의 산과 그의 구름사이」, 「하늘의 표면」이 존재하며 제각기 위치하고 있다. 6개의 시공간의 풍경(세계)이 열리기 위해서는 빛의 조건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작가가 제시한 "공간은 밝은 빛보다 옅은 어둠속에서 그 깊이를 드러낸다."는 공간의 원리가 최대한 적용되었다. 그리하여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낮이 밤으로 바뀌고 밤이 낮으로 바뀌는 찰나의 수평적인 빛(수평적 공간을 이루는 옅은 어두운 빛의 시간은 보이지 않았던 모든 사물들을 드러나게 한다.)을 이루어 6개의 서로 다른 풍경이 순환적 흐름을 타고 이어진다.

김윤수_반짝이는 고독_아크릴에 금박_150×285×1cm_2007

이 정원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Ultramarine 풍경을 담은 '네 개의 구멍'(네 개의 구멍은 한 폭 병풍의 구조를 이룬다. 병풍의 특성으로 뒤편의 공간(벽)이 사라지고 바라보는 이는 새로운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또한 작가의 마음의 눈이며 자화상이다. 개인의 공간이며 구멍만 드러내고 멍한 상태다. 이 자화상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내게는 말할 줄 아는 혀가 없다. 내게는 안을 줄 아는 팔이 없다. 내게는 움직일 줄 하는 다리가 없다. 내게는 볼 수 없는 두 개의 귀와 소리 내지 못해 슬픈 두 개의 눈이 있다.")을 마주해야 한다. 벽은 사라지고 시선은 무한 풍경이 펼쳐진 잡을 수 없는 깊이의 바다와 닿을 수 없는 아득한 하늘, 흘러가는 구름과 머언 산의 푸른빛으로 향해진다. 이 세계의 발을 내딛는 순간 한 켠에는 천정에서 펼쳐지는 비닐족자에 울트라마린으로 그려진 거대하게 솟구쳐 떨어지는 '마음의 폭포'('Horizon')("투명한 비닐위에 'Ultramarine'을 사용하여 그린 족자형식의 그림이다. 분수와 폭포의 거대한 수직구조는 수평으로의 회기를 전제로 한다. 한없이 수평을 향하여 흘러가는 물처럼 그리움은 흘러간다. 이 이미지들은 초현실적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공간 저편을 배경으로 삼아 펼쳐져 있다. 구조자체는 공간을 가르지만 외부와 내부를 비추이게 하는 유연함을 지니고 있고, 그 위를 부유하는 이미지들은 지금 현실의 공간과 다른 시공간을 공유한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의 시간과 공간의 법칙이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김윤수))가 공간을 수직(수평을 향한 의지의 수직)으로 가른다. 세차게 떨어진 폭포수 같은 마음들은 수평을 찾아 흘러가며 아득한 수평선을 만들어 낸다.

김윤수_그녀의 바다에서 그의 하늘까지:그녀의 산과 그의 구름사이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7

아득한 수평선을 따라 가다보면 바닥 공간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지평선과 마주하게 된다. 지평의 중심부에는 작가의 발이 이루어낸 여섯 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적막'(작가의 발을 초기의 틀로 삼아 골판지를 띠를 수직·수평적으로 무한하게 감아 나가는 작업이다. 발의 형태로부터 확장되어가는 반복적인 감기작업으로 한쪽으로는 여섯 개의 봉우리로 솟은 산을 이루고, 반대쪽으로는 무한한 지평을 이루며 수평을 펼쳐놓는 작업이다. 이 작품의 특성상 설치될 공간에 따라 크기가 가변적으로 조절된다. 이 '적막'은 고요함 속에 하늘을 이고 있는 산의 적막함이다. 마음의 적막함이며, 닮고 싶은 적막함이다. 안에는 바람도 있고 산도 있고 구름도 있고 자연이 있는데, 이들은 작가가 노동하면서 만나게 된다. 그 행위 속에 바다를 느끼고 산을 거닐게 된다.))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진 공간 저어기에서 '반짝이는 고독'(황금빛의 아름다움 또한 옅은 어둠속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빛을 흡수하고 반사시켜 스스로 빛을 뿜어낸다.)이 빛을 밝히고 있다. 저 멀리 희미한 어둠속에 있는 세 폭 투명병풍의 구조를 가지며 현실적 영역과 초월적 영역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금빛사자'의 황금빛은 옅은 빛을 흡수하고 반사시켜 은은한 빛을 스스로 뿜어내며 공간에서 빛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김윤수_꽃꽂이_주워온 오브제, 철사, 모래_2007

이리 저리 거닐다 문득 시공간의 경계에서 길을 헤매다 보면 '그녀의 바다에서 그의 하늘까지 ; 그녀의 산과 그의 구름사이'('그녀', '그'라는 지시대명사가 여기서 막연한 3인칭을 의미하듯, 이곳은 특정한 시공간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고, 수많은 세계들이 혼재되어 명확하지도 않고 초점이 흐려져 있는 상황 자체를 지시한다. 바다와 하늘, 산과 구름 그 사이 어느 즈음에 부표처럼 둥둥 떠다니는 상황이며, 망망한 바다처럼 명확치 않은 지점들이다.)(작은 방에 위치)를 만나게 된다. 잠시 바다와 하늘과 산과 구름 사이에서 표류하다 '하늘의 표면'(이 그림은 하늘의 표면을 옮기기 위해 시도 되었다. 바다 저편의 색인 울트라마린으로 칠하다 내키는 곳을 군데군데 비워둔 것이다. 완성된 그림은 마치 하늘과 그 하늘의 표면에 있는 구름 같아 보일 것이다. 나는 하늘의 표면을 그리지 않고서 그림의 표면으로 옮겨오는데 성공한 것 같기도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건데 이 모든 것이 그저 하나의 말장난인 듯도 싶다."(김윤수))을 응시하게 된다.

김윤수_하늘의 표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벽에 글씨_16×22×2cm_2006

이렇게 산책한 마법의 정원은 '네 개의 구멍'으로부터 시작되어 '하늘의 표면'에서 끝을 맺는다. 무한으로 펼쳐지는 이 부드러운 마당(field)에서 시공간의 마법으로 피고 지는 풍경들을 만나며 허허로이 노니는 일은 타자로 하여금 여행이라는 물리적 거리의 이동 없이 지금 이곳(현실의 영역)과 또 다른 저곳(초월적 영역)에 동시에 머물게 한다. 순간 이동, 이는 상상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텔레비전 화면, 이미지 책, 자동차 창밖의 풍경 등 시간 저편의 기억 혹은 상상으로 순간의 이동을 경험하듯, 작가의 현실적/비현실적 경험으로 만들어진 마법의 정원에서 울트라마린 풍경 속으로 들어가 투시체계를 이용한 일루저니즘의 마법을 통해 시공간의 차원이동이 가능한 움직임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여하튼 마법의 정원은 공간의 가변성에 대한 주체를 보는 이가 되게 하기 위함을 의도한다. 관람자는 공간의 물결 가운데 서있으며, 이미지는 서로 다른 공간과 공간의 통로에 존재한다. 수평적 이동을 통해 시간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공간은 물결치고, 사고는 미끄러진다. ■ 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Vol.20080523b | 김윤수展 / KIMYUNSOO / 金潤秀 / installation

2025/01/01-03/30